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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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모두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다시 꺼내 읽는다. 이 시를 읽다보면 세상 일로 혼란스럽던 그런 마음이 어느새 사라지고, 마치 인생을 끝까지 살아본 사람처럼 이 세상에 대한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저에게 주어진 하루 일을 마치고 저물어가는 하루를 맞는다. 그리고 그렇게 저물어가는 어스름 속에 그날 있었던 온갖 희노애락을 모두 내다 버린다. 하지만 버려도 버려도 버릴 것이 아직 남아 있을 때면, 나이테만 남기고 잘려나간 고목처럼 웅크리고 앉아 담배 한 모금을 피워 문다. 이윽고 담배 연기 속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본다.

집... 그래 그곳은 우리가 늘 안식을 취하는 곳이다. 하지만 하루가 저문 그 집으로 돌아가면 과거도 미래도 오늘도 없다. 그러므로 희망도 없다. 과거도 미래도 오늘도 없으므로 모든 것이 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렇게 저절로 흐른다.

그래. "흐르는 것이 물 뿐"만은 아니다. 세월도 흐르고, 우리도 세월따라 늙어서 어느 순간이 다가오면 그 흐르는 물처럼 삼라만상 속으로 흘러가 버릴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못 견디게 가슴을 치는 그 서러움도 모두 귀밑에 반짝이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처럼 그렇게 새고 또 새다가 마침내 망각의 늪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니, 다시 이 세상을 바라보면 흐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도 흐르는 것이 아니다. 세월도 흐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정지된 그 속에서 사람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사람도 원래는 흐르지 않는 것을 사람이 나서서 스스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그래.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다. "흐르는 물에 삽을 씻"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바라보며 나를 씻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씻은 뒤 사람이 사는 마을을 생각하면 그 마을에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끝없이 흘러다니고 있다.

다시 마음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시인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시인의 마음처럼 날은 점점 더 어두워오고 있다. 돌아가야 한다. 설령 그곳이 너무나 때가 많이 묻어 버림받은 땅일지라도 돌아가야 한다. 가서 같이 때를 묻혀야 한다. 저문 강에 씻은 삽이 다시 더러워질지라도 다시 삽을 들어야 한다.

정희성 시인은 평소에는 너무나 따스하고 부드러워, 만지면 흙처럼 이내 바스러질 것만 같은 그런 성품을 지닌 시인이다. 하지만 시 앞에만 서면 늘 대쪽 같은 선비가 된다.

시에 묻은 군더더기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꼬장꼬장하다. 이는 시를 그만큼 아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들처럼 그리 많은 시집을 가지고 있지 못한 시인이 정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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