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이 나왔답니다. 실천문학사에서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란 제목으로 책이 나올 거라는 전화를 받았지요. 아침에 일하러 갔다가 비가 많이 내려 허탕치고 돌아와 비내리는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시집이 잘 안 팔려서 조금밖에 찍지 않았다네요. 장사꺼리가 안 된다는 이야기지요. 전화를 받고 비가 내리는 순천만에 갔습니다. 작년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재요양 판정을 받고 병원을 옮겨 온 곳이 순천이었습니다.
아침나절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면 갈곳이 없어서 순천만으로 가곤 했지요. 하루종일, 배가 고플 때까지 개펄 가에 쪼그리고 앉아 멀리 물러가버린 바다를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그 바닷가에 차를 세워놓고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날이 저물때까지- 뚝 위에 한 무더기 싸리나무가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드만요. 새 몇 마리가 낮게 날으다가 갈대밭으로 가라앉았고 비를 놉으로 맞은 짱뚱어 낚시꾼들이 서둘러 널판을 밀며 개펄을 빠져 나왔습니다.
돌아와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슬그머니 빠져나가 밤늦도록 소주를 마셨습니다. 끝끝내 술이 취하지 않아 빗속을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또 한 권의 시집을 내고 이렇게 한 세상을 살아버렸습니다.
시집에 실린 시 한 편 올립니다. 가을 꽃들이 피겠지요? 금마타리, 쑥부쟁이, 꿩의 다리, 물봉선, 며누리밥풀꽃, 고마리… 꽃을 찾아가서 꽃이름을 불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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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찔레 넝쿨처럼 여름 한철 누워서 보낸 창원 한마음병원 삼백 팔 호실은 창문 앞에 높은 집이 버티고 서서 가로막힌 창문 한 귀퉁이 여관 간판 위에 겨우 깃발 만한 하늘이 걸려 있는데 바람 부는 날은 펄럭이다가 비오는 날은 비에 젖고 개인 날은 눈부십니다
고맙습니다
끈질긴 꿈을 엮어 바닥을 깔고 궂은 날 개인 날 바람 부는 날 징검다리 딛듯 하루하루를 건너온 나 이렇게 누워있어도 개인 날은 하늘 푸르고 궂은 날은 비내리고 바람 부는 날은 펄럭이는 세상 참 고맙습니다
잠깐 목발 짚고 복도에 나와 작은 창문으로 세상을 봅니다
마주보는 산 푸르고 길가 은행나무 무성하고 즈그들 키대로 자란 풀 나무들 꽃 피우고 열매맺고 누구 집 마당인지 담 아래 호박넝쿨 배롱나무 뒤엉켜 꽃피었어도 이쁘기만하고 고추잠자리 떼지어 빙빙빙 더 크게 더 크게 동그라미 그리며 날아오르고 자동차들 바쁘게 달려가고 사람들 오고갑니다
고맙습니다
젊음이 다 가도록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내 몸뚱이 빠져 나왔어도 어긋나지 않고 돌아가는 세상 참 고맙습니다
사람들 많이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침대에 누워 눈감으면 지난 이들 얼굴 떠올라 가슴 미어지고 만나서도 못 다한 말 되살아나 목이 메입니다
보고 싶어도 나 걷지 못해 찾아갈 수 없으니 사람만 기다립니다
사람들 여럿 찾아와 함께 걱정하다 돌아가고 찾아오지 못한 벗들의 가슴앓이 많이 전해져옵니다
고맙습니다
성한 몸으로 잊고 살았던 사람들 불편한 몸이 되어서야 떠올려 몸 나으면 찾아갈 사람들 이렇게 많으니 눈 젖어오는 이 그리움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