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을 든 자는 삽으로 검은 눈을 치우자
삽을 든 자는 삽으로 검은 눈을 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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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시대(似而非時代)를 위하여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온통 비정상인들이 판을 치는 사이비들의 천국으로 바뀌고 말았다. 사이비천국의 대표적인 주자가 정치사기꾼들의 집단인 국회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 돋보이는 예가 정부가 앞장서서 대국민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로또복권 판매일 것이다.

소주 한 잔 값으로 기분 좋게 사서 당선이 되면 돼지꿈을 꾸었다고 몇 천 만원의 돈다발을 받으며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정말 서민들의 삶에 활력소가 되고 꿈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들은 물 건너가고, 최소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의 돈을 내걸고 복권은 인생역전이니 일확천금의 주인공이 되느니 하면서 정부를 등에 업은 사기집단의 달콤한 미사여구(美辭麗句)의 사기행각에 속아 구입해봤자 길어야 일 주일 간만의 헛꿈으로 끝낼 수밖에 없는 불쌍한 백성들.

어디 이뿐이랴. 경기도 양주에서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친구가 된 몇 사람이 공동으로 복권을 사서 당첨금을 나누어 갖자고 했지만 운 좋게 33억 원짜리 1등에 당선된 한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독식한 나머지 법정에까지 비화되는 인생역전은커녕 우정역전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던가.

이들이 쓴 각서는 다수의 선량한 백성들을 매주 혼란으로 내몰고 있는 복권처럼 사이비시대가 만든 한 장의 휴지조각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렇듯 시대의 사이비화는 안타깝게도 온 국민들의 양식을 살찌우는 독서계마저 지배하기 일보직전에 와있다. 필자는 틈이 나면 서점에 가서 신간서적들이나 괜찮은 읽을거리가 있는지 살펴보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요즈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서점의 진열대에서 풍겨오는 역겨움, 좋은 책들은 모두 서가에 모로 꽂혀 버리고 눈이 쉬 가는 진열대에는 온통 저급·저속의 취미성을 살린 야비한 상업주의적 창작물(yellowism)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읽기를 천박함을 동반한 그런 재미로 오해했다면 우리나라 독서 문화는 타락했거나 끝장이 날 때가 되었다는 징후이나 한편으로 반성할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작품이 문인(文人)들의 난삽한 내의식(內意識)의 표출이거나 대단히 비유적이어서 읽는 이들의 머리를 아프게 한 나머지 독서 습관의 퇴보를 초래, 가뜩이나 책은 어렵다는 기존 인식을 더 공고히 만든 데에 대한 문제가 있긴 하나 그것보다는 지금 서점의 진열대를 온통 혼란스럽게 하는 옐로이즘의 창궐은 무게 있는 창작물의 생산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가뜩이나 질의 저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생산자인 문인들마저 온통 사이비화 시킴으로써 사이비 시대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걱정스런 결과를 낳고야 말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이 시대의 사이비화에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 것인가. 이 편, 저 편으로 나뉘어 멱살질과 삿대질로 흥분만 할 것인가. 아니면 쓴소주를 벌컥벌컥 삼키면서 자조의 한탄만 할 것인가.

아니면 누구처럼 차를 몰고 국회 정문을 냅다 들이받아버리고 말 것인가. 이렇듯 사이비 시대의 만행에 대책 없이 휘둘려야하는 필자처럼 빈약한 심성의 백성들이 선택할 만한 행동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 흐린 아침에 절규하는 한 양심적 시인의 시(詩)나 읽을 뿐.

<2004년 3월 12일을 죽음이라 부르자 / 막 꽃 피우려고 일어서던 꽃나무를 주저앉히는 / 저 어처구니없는 폭설을 / ---중략--- / 아아 끝까지 막아내지 못하고 /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 슬픈 두 눈의 대한민국을 죽음이라 부르자 / ---중략--- / 뜨거운 키스를 나누기도 전에 / 사랑을 끝낼 수는 없는 일 / 채 한 줌도 안 되는 금배지들보다는 / 우리가 힘이 세다 /

국민이 힘이 세다 / 삽을 든 자는 삽으로 검은 눈을 치우자 / 펜을 가진 자는 펜으로 정면 대응하자 / 돈을 가진 자는 돈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자 / 빈주먹밖에 없는 자는 빈주먹으로 저항하자 / 사랑해야 할 것과 / 결별해야 할 것이 분명해 졌으니 / 울지 마라, 대한민국! / 울지 마라 대한민국! (안도현의 시 '울지마라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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