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죽은 총각의 관
짝사랑 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죽은 총각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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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 내어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이제 2005, 을유년 닭의 해도 정말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매서운 추위에 문풍지처럼 바르르 떨다가 이른 새벽 어둠을 걷으며 동산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예전처럼 찬란한 빛을 뿌리는 것 같지가 않고 어쩐지 힘이 없어 보입니다. 저녁나절 서산에 붉은 노을을 장작불처럼 지펴대며 지는 해는 예전보다 더 더욱 크고 붉게 보입니다.

365일을 다 살라먹고 떠나가는 해가 안간힘을 다해 피워올리는 마지막 절규! 해마다 가는 해는 서럽도록 아름답고 새롭게 떠오르는 해는 가슴 깊숙히 박힌 어둠까지 다 걷어내는 것처럼 찬란하고 눈이 부시기만 합니다.

그 해가 꼭 같은 그 해이지만 사람들은 해마다 1월1일에 떠오르는 해를 새 해라고 부릅니다. 하긴, 그렇게라도 해야 가는 세월이 좀은 덜 서럽고, 절망보다는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저는 늘 이 시가 떠오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 시를 참 좋아했습니다. 비록 동짓달 밤이 깊고 길지만 그 밤의 허리를 싹둑 잘라내어 새로이 떠오르는 해에 바싹 말렸다가 사랑하는 님 오시는 봄밤 이불로 구비구비 편다는 내용이 얼마나 곱고 아름답습니까.

자신에게 찾아든 절망을 오히려 희망으로 삼아 새 봄을 맞이하려는 마음, 그 마음 하나만 있다면 이 세상에 무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 시조는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삼절로 꼽혔던 조선 시대 최고의 기생이자 뛰어난 시인 황진이의 대표적인 시조입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보이지 않으면 눈자위에 거무스럼한 그리움의 그림자가 끼일 정도로 사랑하는 임, 그 임을 기다리며 일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짓달 밤을 호올로 지새우고 있는 성숙한 여인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글입니다.



동짓달 긴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 내어
봄바람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를 지금의 우리말로 옮겨 보면 위와 같습니다. "한 허리 베어 내어/ 봄바람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에서 한 허리를 베어 낸다는 말의 뜻을 잘 살펴봅시다.

여기에서 한 허리는 사랑의 반쪽인 나 자신이기도 하고 내 사랑하는 임이기도 합니다. 또 내 속치마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임과 하나가 되어 사랑을 완성할 내 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사랑을 고이고이 간직했다가 꿈에도 그리운 사랑하는 임, 내 사랑의 반쪽이 찾아오면 봄바람 같은 그 이불 속에서 꼭 하나가 되고 말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 년 중 가장 긴 동짓달 밤을 잘 접어두었다가 임이 오시는 짧은 봄밤에 구비구비 펴서 긴 봄밤을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남북통일도, 가난한 민초들의 아름다운 꿈도 그렇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명월 황진이는 개성에서 살던 황진사의 첩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얼굴과 서예, 가무가 뛰어났습니다. 황진이가 15살 되던 해 있었던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한 동네에 살던 총각이 황진이를 짝사랑 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죽었다지요. 그런데 그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대문 앞에 이르자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죽은 그 총각의 친구가 이 사실을 황진이에게 알렸습니다. 황진이는 소복단장을 하고 나아가 자신의 치마를 벗어 관을 덮어 주었습니다. 상여는 그제서야 움직였습니다. 그 총각이 살아생전 오죽 황진이를 사모했으면 죽어서 마지막 가는 길에 황진이 대문 앞에 멈춰섰겠습니까.

또한 죽은 총각의 관이 자기 집 대문 앞에 멈춰선 것을 본 황진이의 마음은 오죽 아프고 쓰렸겠습니까. 오죽 했으면 황진이가 자신의 치마를 벗어 죽은 총각의 관에 덮어주었겠습니까.



사람들은 황진이가 아마도 이 일 때문에 기생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환진이의 마음 깊숙한 곳에 그 총각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없을 수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황진이는 첩의 딸이라는 이유로 늘 멸시를 받으며 살기보다는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자유분망한 기생의 길을 걸은 것이라는 말이 보다 현실적일 것입니다.

자유로운 삶! 그렇습니다. 이제는 구속과 억압, 가난, 원망, 슬픔이란 서러운 낱말들은 지나간 날들에 훌훌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다가오는 무자년 새해에는 황진이의 시조처럼 지난 50년 동안 잘리워진 분단, 동짓달 기나긴 밤이 사라지고, 그 동짓달 기나긴 밤을 오히려 따뜻한 솜이불 삼아 남북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인이 평등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날들이 이어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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