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와서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하늘을 향해 열린 그
거대한 눈에 내 눈을 맞췄다.
눈을 보면 그
속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바다는 읽을 수 없는
푸른 책이었다.
쉼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바다를 떠나고 나서야
눈이
바다를 향해 열린 창임을 알았다.
그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 너는 산이 좋으냐, 바다가 좋으냐고요. 올 여름휴가는 산으로 갈 거냐, 바다로 갈 거냐고요. 나는 당연히 바다가 좋으며, 그 바다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으며, 올 여름휴가는 그 바다의 품에 안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 누군가가 다시 내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는, 그리고 겨울과 봄에는 어떡할 거냐구요. 나는 가을이든 겨울이든 봄이든 당연하게 바다로, 그리고 그 바다가 점점이 떨구놓은 자식 같은 섬으로 파도처럼 떠다닐 거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만약 그 누군가가 그렇게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하실 건가요? 여름에는 하얀 파도가 끝없이 부서지는 바다, 가을에는 단풍잎이 후드득 후드득 눈물방울처럼 떨어지는 계곡, 겨울에는 이마에 하얀 띠를 두르고 손짓하는 산으로 갈 거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시인은 "바다에 와서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앞까지만 하더라도 시인은 자신이 바다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다에 와서 "하늘을 향해 열린" 바다의 그 "거대한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춰" 본 순간 생각이 뒤바뀝니다.
시인은 "눈을 보면 그/ 속을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아무리 바다와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있어도 "바다는 여전히 읽을 수 없는/ 푸른 책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쉼 없이 열린 거대한 바다는 여전히 요지경 속입니다.
오래, 아주 오래 바다를 바라보는 시인은 마침내 "바다를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눈이/바다를 향해 열린 창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눈은 결코 바다의 모든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듯이 사람의 눈은 바다와 하늘에 매달린 조그만 더듬이이자 이 세상의 작은 창일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