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몸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나에게...
부처가 몸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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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는 부처 찾아 운주사 가는 길



눈이 많이 쌓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함께 가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눈을 헤치며 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오래된 절간인지 정자인지 하여튼 사방이 트인 커다란 집을 만났습니다.

가운데 놓인 길고 커다란 상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점심인지 저녁인지 밥을 먹고 있었는데 머리를 깎은 스님이 보이지 않았으니 절간은 아닌 것 같고,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쌓인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언덕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언덕 위에는 쓰러진 돌부처가 일어서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 손을 내밀고 일으켜주기를 청했습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아주 무거운 그 부처를 일으켜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밥을 먹고 있는데, 자네는 왜 밥을 먹지 않고 이곳에 왔는가?"

일어선 부처가 몸에 묻은 눈을 털어 내며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속이 너무 쓰려서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때 나는 오랫동안 심한 속쓰림이 계속되어서 밤마다 노루모라는 약을 몇 봉지씩 먹어야 겨우 잠을 이룰 수 있었거든요.

"이제 괜찮을 것이네. 내려가서 밥을 먹으소."

꿈이었습니다. 이런 꿈 이야기를 하는 나는 절대 불교신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꿈을 꾸고, 그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속쓰림이 사라졌습니다.

하여튼 기적같은 일을 겪은 뒤부터 나는 쓰러진 돌부처를 찾아 나섰는데 내가 아는 가까운 절들, 송광사니 선암사니 하는 절부터 시작해서 가까운 조그만 암자까지 훑었지만 쓰러진 돌부처는커녕 기울어진 돌부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까지 가게 되었고 운주사에서 누워있는 돌부처를 만났지요.

미륵세상을 꿈꾸며 도선이 온 나라 석공들은 물론, 하늘의 일꾼들까지 불러모아 하룻밤 새에 천불천탑을 만들었는데 천 번째 마지막 부처를 만들어 세우려는 순간 일이 너무 힘들었던 어느 석공이 잠시 쉬기 위해 닭울음소리를 흉내내자 정말 닭이 운줄 알고 하늘에서 내려와 불상 세우는 것을 도와주던 일꾼들이 서둘러 하늘로 돌아가 버린 바람에 불상이 일어서지 못하고 누워버려서 미륵세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전설도-

누워있는 부처가 일어서는 날 짓밟히는 사람들이 사람대접을 받는 미륵세상이 열린다네요. 또, 고려건국에 큰 힘이 되었다는 도선이 고려를 뒤집어엎을 새로운 왕이 태어날 명당이 이곳에 있어서 그 땅의 기운을 돌탑과 불상으로 눌러 놓았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치워버려 땅의 기운을 되살리는 것을 막으려고 여기저기 천불 천탑을 만들어 눈을 가려두었다는 전설도 있습디다.

나와 운주사의 인연을 이야기하려다가 보니 꿈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운주사 전설까지 장황하게 늘어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운주사와 인연을 맺은 나는 자주 운주사를 찾아갑니다. 운주사라는 절이 아니라, 누워있는 부처를 찾아가는 것이지요.

어느 날 늦게 운주사에 들렀다가 운주사의 저녁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종을 치는 비구니와 그 종소리를 듣고 있는 한 쌍의 연인-그리고 흐르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종소리의 향기로움, 그날 나는 저녁 운주사라는 시 한편을 가슴에 담아 왔습니다.

두 사람 가만히 서서
저녁 종소리 듣고 있네요
종이 울리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버렸을 테니
잡아주는 손 얼마나 따뜻하겠어요
종을 치던 애띤 비구니
가만히 흔들리다가
두 사람 바라보고 웃네요
잠깐 드러났다가 숨어버린 하얀 꽃잎
어쩌면 파르르 떨리는 초롱꽃잎
간지러운가봐요
파르스름하니 말끔한 여자
고개 숙이고 얼굴 붉히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출렁
향기로워지는 저녁 운주사

-‘저녁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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