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수화라고 하면 한국화를 떠올린다.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안개, 낚싯대를 드리우고 유유히 앉아 있는 노인네, 소를 모는 목부들도 한 번씩 등장하지만 결국 산수화는 인물, 누각, 조수들과 산수, 수목, 암석 등 자연물이 배열된 경치가 화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조선 초기 안견의 대표적 산수화인 ‘몽유도원도’나, 조선 후기의 화가인 겸제 정선이 여름날 소나기가 지나간 뒤의 인왕산 경치, 특히 산의 굴곡을 흑백대비로 처리함으로써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의 대표작으로 불리우는 ‘인왕제색도’는 한국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하겠다.
화가 배종호를 산수의 초상화가라고 부르고 싶다. 산수의 초상화가라는 명칭은 겨울의 벌거벗은 나무 등을 사실적 기법으로 즐겨 그리는 김경렬 화백을 ‘수목의 초상화가’라고 명칭한 것을 빗대어 필자가 따 온 말이지만 자연의 내밀함을 매우 조심스럽게 표출하는 그에게 산수의 초상화가라는 말을 붙이는 데 대하여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화가 배종호는 앞에서 예시한 거장들과는 달리 한국화가가 아니다. 배종호는 1997년 10월말에 대구광역시 등산연합회 창립2주년을 기념하여 초대전을 가지는 것을 신호로 매우 갑작스럽게 등장한 서양화가이다.
그 때 ‘자연 친화적 서정의 세계’라는 발문을 쓴 시인 김선굉은 ‘황금분할, 수평적 구도의 캔버스, 그 위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의상을 두르고 떠오르는 산과 계곡, 넉넉한 모성애로 그 계곡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맑은 물, 그는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적 살결을 지니고 있는 계곡을 편애하는 소박하고 감성적인 리얼리즘 화가’라고 썼다.
또한 그는 화가 배종호의 출현에 대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인상학적 분석을 시작으로 ‘배종호에게 있어서 산은, 특히 청정한 물이 넘쳐흐르는 계곡은 하나의 구원의 공간이다. 그의 회화적 상상력은 그 공간이 주는 메시지를 읽고자 한다. 그는 그 계곡을 읽는다. 그 계곡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이윽고 그 의미를 기록한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산의, 계곡의 의미 그 자체에 대한 회화적 기록이며, 그 공간이 인간을 향해 건네고자 하는 생명의 메시지이자 생명 자체의 실존적 의미를 환기시켜 주는 예술적 성취다.’라고 진술한다. 이는 화가 배종호의 출현에 대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김선굉 시인의 말대로 배종호의 직관이 포착해낸 맑고, 깨끗하고 건강한 계곡들에 대하여서는 생명의 태반으로서의 이미지를,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반응하는 계곡의 표정에서는 신비스러움을, 약간씩의 편차를 가진 각각의 대상들에 대한 순간 포착력으로 각각의 대상이 가진 숨겨진 특징들까지 구현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