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동이를 이고 선
산골 새댁처럼
웃음이 없어도
순박하기만 하고
주근깨를 덮어써도
곱기만 하네.
여러분은 물동이를 아십니까. 그리고 물동이와 관련된 추억 서너 개쯤 가지고 계십니까. 지금은 예전에 비해 그나마 먹고 살기가 좋아져서, 아니 주거환경이 아주 편리해져서 저마다 필요할 때 수도꼭지만 틀면 맑은 물이 철철철 쏟아집니다. 물이 너무나 흔해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지요.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앞(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물을 생명처럼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특히 제가 살았던 동산 마을(지금의 창원시 상남동)에서는 가뭄이 들기 시작하면 물 때문에 전쟁이 날 정도였습니다. 마시는 물에서부터 논에 대는 물까지. 또한 아낙네들은 이른 새벽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나르는 것이 하루의 첫 일과이기도 했습니다.
"이기 뭐꼬? 이기 사분(비누) 방울 아이가? 뉘 집 딸내미가 이른 새벽에 이곳에서 낯빤대기(얼굴)로 팍팍 씻었노. 아, 쪼매마(조금만) 나가모 도랑가가 있는데. 혹시 이기 세터떼기(새터댁) 집 딸내미 짓거리 아이가?"
"뭐라카노? 우리집 딸아(딸아이)는 아까 도랑가에서 세수로 하는 거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카이. 너거집 딸내미나 사람들 몰래 우물가에 와서 빨래 좀 하지 마라 캐라. 우물 안에 사분방울이라도 튀어가모 우짤라꼬 그라노?"
제가 10살 무렵, 그러니까 1970년대 초쯤이었을 겁니다. 우리 마을 한가운데에는 공동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공동우물에는 늘 두레박 하나가 긴 줄을 매달고 우물가에 걸려 있었습니다. 누구나 필요할 때 와서 물을 퍼서 목을 축이고, 퍼나를 수 있게 해 놓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우물가에서는 누구든지 세수를 하거나,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행여나 비누거품이 묻은 손으로 두레박을 쥐고 우물 안에 있는 물을 퍼올리다가 비눗방울이 우물 속으로 들어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물가에서 목욕을 하게 되면 몸에 끼얹는 물이 우물 속으로 튀어들어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데도 마을 머스마들은 어른들 몰래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거나 등목을 하고, 마을 가시나들은 종종 빨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가까이 비음산(586m, 창원시 사파동) 골짝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제법 널찍한 도랑이 있었지만, 가뭄이 들기 시작하면 그 도랑물이 말라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마을 어르신들은 도랑가 곳곳에 쌓인 모래와 자갈을 파내고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어놓곤 했습니다. 그나마 그렇게 하면 그 웅덩이 속에 구정물이 고여들었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내 맑은 물이 고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 도랑 곳곳에 파놓은 웅덩이에 고인 물로 세수를 하고, 빨래를 하고, 동목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웅덩이에 고인 물은 그리 시원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마을 아이들은 날씨가 몹시 무더울 때면 어른들 몰래 우물가로 모여들어, 얼음처럼 차디찬 우물물을 퍼내 세수를 하기도 하고, 등목을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니는 이 세상에서 머슨 꽃이 제일 이쁘다고 생각하노?"
"내는 티 한점 없이 하얀 백합꽃이 제일 이쁘더라."
"그라모 니는 우윳빛처럼 얼굴이 하얀 도회지 가시나들만 좋아하고, 나리꽃처럼 얼굴에 점이 콕콕콕 박혀 얼굴빛조차도 불그스름한 내는 싫어하것네?"
"그… 그기 아이고, 꽃을 이야기할 때 그렇다 이 말이라카이."
"문디 머스마 아이가. 니는 여자가 곧 꽃이라카는 것도 모르나?"
"꽃도 꽃 나름이지. 메롱~"
그 공동우물 곁에는 주황빛 꽃잎에 까만 점이 콕콕콕 찍혀 있는 예쁜 나리꽃이 참으로 많이 피어나 있었습니다. 또한 주황빛 나리꽃 사이로 얼굴에 티 한 점 없는 젖빛 백합꽃도 서너 송이 피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대부분 공주님 같은 백합꽃보다도 산골 새댁 같은 나리꽃을 더 좋아했습니다. 백합처럼 예쁜 마누라는 농사꾼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면서.
이른 아침, 학교에 가다가 그 나리꽃에 동글동글 맺힌 이슬을 바라보면, 마치 "물동이를 이고 선/ 산골 새댁처럼" 정겹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곱게 벌린 잎술 속에 점점이 박힌 까만 점을 바라보면 마치 "웃음이 없어도/ 순박하기만 하고/ 주근깨를 덮어써도/ 곱기만" 한 그 산골 새댁의 수줍은 얼굴, 농삿일 척척 잘 해내는 그 산골 새댁의 야무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렇다고 백합꽃이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리꽃보다는 백합꽃이 훨씬 더 곱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백합꽃에는 잔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잘 빚어놓은 조각품 같은 그 백합꽃은 누군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그냥 그대로 시들어 버리고 말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득 이슬처럼 그렇게 꺼져버릴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백합꽃보다 훨씬 많이 피어나 있는 그 나리꽃은 누군가 아무리 만져도 쉬이 시들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나리꽃을 만지는 누군가의 손등에 간지럼을 먹이며 깔깔거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 아이들 또한 동화 속에 나오는 백설공주 같은 백합꽃보다도, 불쑥불쑥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먹거리를 건네주던 그 산골 새댁 같은 나리꽃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텃밭 언저리와 산기슭 곳곳에 나리꽃이 예쁘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나리꽃 속에 어린 날의 가물거리는 추억들도 함께 피어납니다. 나리꽃 속에 주근깨처럼 콕콕콕 박힌 그 점들이 마치 어릴 때 소꿉장난 하던 그 동무들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처럼 여겨집니다.
그때 나리꽃처럼 얼굴에 점이 콕콕콕 박혀 있던 우리 마을 점순이, 우리 마을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그 산골 새댁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웃음이 없어도/ 순박하기만 하고/ 주근깨를 덮어써도/ 곱기만" 했던 그 점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