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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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사랑"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 짓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으로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이상하게 봄이 다가오면 그 누군가가 애타게 그리워집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아니 나혼자 그 사람 몰래 짝사랑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연분홍 꽃내음이 감도는 그 봄밤을 눈물로 그렇게 하얗게 지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지금 내 가슴에 영원한 그리움으로 새겨졌을까요. 그래서 봄이 오면 그 사람의 쌍거풀 예쁘게 진 그 눈동자가 자꾸만 떠오르는 것일까요.

이상하게 꽃만 바라보면 그 사람의 도톰한 입술이 떠오릅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그 사람도 내가 그리워 개나리 꽃가지를 꺾어 방 안에다 꽂아두고 그 봄밤을 눈물로 그렇게 하얗게 지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의 가슴 속에도 바로 내가 그 사람의 영원한 그리움으로 새겨졌을까요. 그래서 꽃만 바라보면 그 사람의 연분홍빛 예쁜 입술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일까요.

스무살 남짓한 그 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사랑한다는, 아니 눈에 허깨비가 끼도록 보고 싶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걸고 허둥대지는 않았는지... 또한 나 혼자 너무나 일방적으로 그 아름다운 사랑에 상처를 내고 마침내 그 깨끗한 가슴에 피멍을 새기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오히려 그 사람이 내게 사랑을 위한 사랑을 위해 내 가슴에 흠집을 내지는 않았는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라고 시인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인해서 "그이가 눈물 짓지 않게 하소서" 라며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 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죽는 날까지도 "그이를 진정으로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해달라며 부질없는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어찌 그렇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설령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해달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애타는 사랑에 대해, 서로의 성급한 사랑에 대해 스스로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그때 우리들을 시샘하며 따라오던 그 긴 그림자가 떠오릅니다.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난 그 봄밤에 둘이서 팔짱을 낀 채 끝없이 걸어갔던 그 거리. 밤안개가 우리들의 머리칼에 맺혀 가끔 한방울씩 똑똑 떨어지던 그 봄밤. 차라리 우리 이렇게 걸어가다가 문득 기차역이라도 나오면 그냥 목적지 없이 타고 가자고 속삭이던 그 사람의 차거운 입술... 그때 그 사람은 지금 저 노오란 개나리로 피어나고 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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