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사기그릇 유리잔인양
깨어져 부스러질까
어긋나지 않을까
살얼음판 한평생
- 박선욱 '모정' -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지금으로부터 15여년 앞 57세의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헌 짚신짝 버리듯 그렇게 훌쩍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3년 전의 병명은 위암 2기. 그러니까 나의 어머니께서는 병원으로부터 위암 2기 진단을 받은 뒤, 1차 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술 뒤부터 그럭저럭 그 지독한 위암을 이겨내는 듯하셨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을 때였을까. 어머니께서는 또 다시 2차 수술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때 내 어머니께서는 이대로 죽었으면 죽었지 다시는 수술을 받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날이 길수록 병은 자꾸만 깊어지고, 그에 따른 고통이 심해지는데, 수술을 받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근데, 어머니께서는 그 2차 수술에서 끝내 퇴원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퇴원을 집으로 하긴 했으나 퇴원하는 그날 그대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는 서울에서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날은 제 큰딸의 백일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나의 어머니께서는 제 처에게 전화를 걸어 "요즈음 백일은 크게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밥 한 그릇과 나물 몇 가지 차려 부엌 앞에 놔두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애가 채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하도 많이 죽어서 죽기 전에 백일잔치라도 한번 크게 해줘야 되지 않았겠느냐며.
그렇습니다. 내 어머니께서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앞, 논둑과 밭둑, 산자락 곳곳에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나던 유월(지난 12일, 음 5월 18일) 이맘 때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평생을 좋은 옷, 좋은 음식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손발이 다 닳도록 농삿일만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창원공단 조성으로 논밭이 다 사라지고 이제 겨우 그 힘든 농삿일에서 벗어나려 할 때 말입니다.
"니 서울 올라가다가 신작로에 동네 노인들 나와 있으모 막걸리라도 사 드시라며 오천원짜리 하나 드리거라. 그라모 동네 노인들이 참 좋아할끼다. 서울에 사는 누구 집 아들이 막거리값을 주고 갔다고 두고 두고 고마워할 끼다. 내 말 머슨(무슨) 뜻인지 알갓제? 세상만사 무엇이든지 다 그렇게 자잘한 인정을 베풀다 보모 그리 크게 어려운 일은 없을 끼다."
지금도 그때 내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기만 합니다. 지금도 내 어머니께서 "니, 니 주장이 아무리 바르고 옳다고 하더라도 너무 강하게 나가면 안 된다. 너무 강한 것은 반드시 부러지게 되어 있다. 때로 너무 센 바람이 불어오면 대나무처럼 휘청휘청 휘어질 줄도 알아야 한다. 태풍이 불 때에는 정면에서 맞닥뜨리지 말고 잠시 피해 있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그 말씀이 귀에 쟁쟁하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어머니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신 게 아닙니다. 내 어머니께서는 이 세상을 헌 짚신짝 던지듯이 그대로 던져버린 것 같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다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한 줌의 햇살이나 한 줄기 바람으로, 비로 안개로, 채소로, 들풀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저만치 피어 있는 감자꽃, 옥수수꽃에서도 내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손발이 닳아 피가 나도록 이 세상을 살아도 너무나 힘겹고 고되기만한 이 세상, 희망이란 가느다란 끄나풀조차도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이라고 하지만 내 어머니께서는 늘상 자식들에게 이 세상과 싸워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설령 이 세상과 한번 크게 싸워 지게 되더라도 절대 절망하지 말고 질경이처럼 꿋꿋하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내 어머니께서는 그냥 이 세상을 버리고 가신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오남매가 스스로 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도록 일일이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너희들 스스로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나가라는 듯이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 오남매에게 몽땅 다 맡겨 놓은 채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내 어머니께서는 "행여/ 사기그릇 유리잔인양/ 깨어져 부스러질까/ 바람이 불어도 눈송이 날려도/ 어긋나지 않을까/ 살얼음판 한평생"으로 그렇게 살다가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어머니가 모두 그러하듯이 나의 어머니도 한평생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준 뒤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산과 들에 하이얀 개망초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꽃상여에 매달린 그 하얀 종이꽃처럼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아, 우리들의 어머니… 한반도의 어머니는 해마다 유월이 다가오면 그렇게 하얀 눈물꽃으로 피어나 자식들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얗게 피어나는 개망초 속에 15년 앞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