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언덕에는 왕달맞이꽃이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미산 몬당에서 달이 떠오르면 달맞이꽃이 천국처럼 피어난다고 그 사람은 편지를 썼지요.
우리들은 밤이 깊도록 그 꽃숲에 앉아 흐르는 강을 보고는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맑은 달맞이 꽃잎을 닮았던 사람은 나보다도 먼저 이슬에 젖어들어 웅크렸습니다. 그 사람을 바래다주러 가는 길은 한 시간이 넘게 걸어야 할 만큼 먼 길이었어요.
차가 다니는 길이지만 으슥한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하는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를 가다가
넓은 들 가운데로 난 길을 지나면 작은 학교가 나오고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뒷문으로 나가면 다시 산 아래로 난 황톳길 산굽이를 하나 돌고 나면 작은 시냇물이 나왔습니다.
조그만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나타나는 동네 뒷길로 해서 콩이 심겨진 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올라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느티나무 그늘을 벗어난 길가에 그 사람의 집이 있었습니다. 신작로에서 학교까지 이르는 들길 양옆에는 아이들이 심은 코스모스가 미어터지게 피어있었지요.
갑자기 아이가 많이 아파 약을 사러 가는 길이었을까요? 누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자 우리는 코스모스 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자전거가 지나가고 난 뒤 코스모스 향기를 풍기며 환하게 웃어주던 그 사람의 그 말금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한동안 코스모스가 철을 잃고 피고는 했습니다. 여름도 오기 전에 꽃이 피더니 씨앗까지 맺는 것을 보고는 가을이 오면 저 코스모스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애를 태웠더니 가을이 오자 그 길은 여전히 코스모스 꽃길이었습니다.
올해도 여름이 오기 전부터 피어버린 코스모스들이 눈에 띄고는 했습니다. 팔월이 깊어가면서 코스모스들이 꽃길을 이루어갑니다.
입추가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가을입니다. 머잖아 가을꽃들 흐드러지겠네요. 얼마전 다시 찾아가 본 학교 길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경지정리를 해서 새로 생긴 곧은길은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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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도록 풀 위에 앉아
강을 보았네
어두워져도
찾아가 얼굴 묻을 사람 없어
어둠 깊어지는 가슴
기다려도 달이 뜨지 않았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캄캄하게
잊혀지는 것이 아닐까
허우적대며 강으로 걸어 들어갔네
그때서야
키큰 달맞이 꽃 등불 피어났지
환한 꽃숲으로
달 떠오르고
밤새
달빛 혼자 흐르는
강을 보았네
-달빛 혼자 흐르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