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역사적 실체인 언어로 만들어진다
시는 역사적 실체인 언어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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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있어서 체험이란 1

국어사전에서 시를 찾아보면 '문학의 한 갈래, 자기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에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이나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이며 형식에 따라 운율이나 자수에 제약이 있는 정형시와 제약이 없는 자유시, 서술시 등이 있고, 내용에 따라서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구별되기도 함.'이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시인의 세계 인식이 구체적인 소리를 빌어 시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라고도 하며 모든 문학의 이상은 시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

특히 시작품은 '운문으로 된 모든 작문을 뜻하며 이때 운문이란 작문을 일정한 길이의 행으로 나누고 이러한 행을 표현 형식으로 만드는 일련의 기교상의 관습을 가리키는 용어'를 말합니다. 시가 운문과 동일시된다면 산문으로 된 소설이라는 말에 대립될 수 있는 다른 말이 없기 때문에 '운문의 한 완벽한 세트'를 지칭하기 위해서는 시라는 용어가 필요한 지도 모를 일입니다.

흔히 우리는 격식상으로 자유시, 정형시, 서술시를 내용상으로는 서정시, 설화시, 서사시, 극시를 말합니다만 그건 나중의 문제이고 우선 여기서 '운문'과 '시'를 개략적으로 구분한다면 운문은 단지 저급한 노랫말이나 무가 등과 같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진 운율화된 저작물이고 시란 일련의 우수한 운문이라는 함축적인 가치 판단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시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리듬이 있는 글로 표현한 것' 이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들은 느낌 내지는 상상력에 의존하였을 뿐, 삶 그 자체의 표현에 인색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는 아름다움을 통하여 삶의 진실을 이끌어 내고 말의 질서를 통하여 삶의 질서를 제시합니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시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찾아내기를 원하며 시는 역사적 실체인 언어로 만들어진다 는 말처럼 이것이 빠질 때 시는 도리 없이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시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인색했습니다. 시는 일부 시인이라는 무리들의 조립된 말의 성찬으로 전락했으며 비유를 최고로 하는 교과서적 고정관념 또한 그에 동조하는 잘못을 범하는데 한 몫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선민의식에 가득한 시인들의 난삽한 내의식의 표출로 인하여 독자를 멀리 하더니 끝내는 시의 시대가 영원히 갔다는 한탄스런 말을 낳고 말았습니다.

'시는 독자와의 연결을 잃어 버렸고, 독자에게 가 닿지 못했다'고 한 파블로 네루다*(1904∼1973 칠레 마울레주(州) 파랄에서 출생하여 '20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 그의 독자적인 시경을 개척, 카오스적인 요설로 존재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한 '지상의 주소'라는 시로,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칭송을 들음)의 한 마디는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시란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기교보다는 진실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는 정도를 추구하기보다는 빠르고 손쉽게 인기를 얻자는 식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치나 사회 같은 바깥 상황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얄팍한 기교와 잔재미만을 추구하려는 것 같아요' 라는 박두진 시인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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