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라나다가 내게 밤의 도시였다면, 이 곳 가디스는 새벽의 도시이다.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흔적없이 사라진 거대한 기하학적 조형물의 노을빛 환상이 그라나다라면, 바다 소리로 가득한 푸르스름한 여명의 땅이 이 곳 카디스이다.
그라나다는 아침에 잠들어 있다. 사라진 옛 무어인들의 지혜가 번쩍이던 궁전이 이제는 한 밤 달빛아래 하얀 맨발의 무희가 그 위에서 춤추는 황토빛 궁전의 잔해이다.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그 침묵의 조각품은 언젠가부터 깊은 밤마다 환상의 샘이 솟는 달콤하고 쓰디쓴 회상의 샘터가 되었으리라.
카디스의 새벽은 아득한 수평선의 푸르스름함과, 긴 날개의 갈매기들이 머리위에서 선회하는 대서양의 웅장한 파도소리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놀랍게도 발 바로 아래 바위틈에 숨을 숨긴 주먹보다 큰 참게의 잠망경 같은 두 눈으로도 .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빛의 도시 카디스는 바다의 거친 푸르름과 올리브 나무 끝의 흔들림입니다. 그라나다는 이미 아득합니다.
달콤한 그늘과 쓰디쓴 침묵과 그리고 잿빛 영광의 폐허로. 지금 나는 가디스로 다가서며 가슴 설렙니다.
갈매기떼가 머리 위에서 원무하고 두 발이 담긴 얕은 수면 아래 등 검은 농어들이 은빛 반짝임으로 꿈틀대는 소년기의 나의 작은 바다에서처럼 그제께 말라가에 다녀왔습니다. 피카소의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바다가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그 도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라나다의 새벽. 생전에 다정히 껴안아 주지 못한 아흔 노모를 바둑이가 노는 꿈속의 그 바닷가 햇살 가득한 집에서 흐느낌으로 만나 베게를 적시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