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건설회사 공사 수주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홍경태 전 청와대 총무행정관은 2006년 서모씨의 요청에 의해 한국토지공사가 발주한 군산~장항간 호안공사와 영덕~오산간 도로공사를 SK건설과 대우건설이 수주할 수 있도록 입찰 과정에 개입,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홍 전 행정관은 이 외에도 서씨의 부탁으로 2005년 대우건설이 발주한 부산 신항 북컨테이너 부두공단 배후부지 조성공사를 중소업체인 S건설이 수주할 수 있도록 대우건설 박세흠 전 대우건설 사장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두 참여정부 인사의 ‘연루설’은 아직까지 서씨의 일방적인 진술이지만 경찰은 청와대 핵심에 있던 두 사람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청와대 실세와의 친분을 내세워 S건설사로부터 9억여 원을 뜯어낸 중소기업 대표 서모씨가 경찰에 구속되며 참여정부 인사의 건설비리 의혹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공사수주, 미수금 물물교환?
서씨가 밝힌 청와대 실세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지낸 정상문씨와 총무행정관을 지낸 홍경태씨.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의 건설 수주 비리 의혹’이라 칭해지는 이번 사건의 발단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 전 행정관은 노 전 대통령의 8년 후배이자 후원회 사무국장 및 비서를 지낸 인물로 1996년 12월부터 노 전 대통령이 사실상 인수했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대표를 맡았다. 이후 이 회사의 빚 변제와 매각 과정에서의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같은 해 중소기업 대표 서모씨는 홍 전 행정관이 대표로 있던 생수회사 ‘장수천’에 16억원 규모의 자동화 시설을 납품하며 홍 전 행정관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까지 친분을 쌓았다.
시간이 흘러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홍 전 행정관은 청와대 수송담당 행정관(3급)으로 발탁됐다. 이에 서씨는 홍 전 행정관의 청와대 근무 당시인 2005년 10월 S건설 사장과 함께 홍 전 비서관을 만나 해양수산부가 수주해 대우건설이 재발주한 부산 신항 북컨테이너 부두공단 배후부지 조성공사를 중소 건설사인 S건설이 맡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장수천에 자동화 시설을 납품하면서 받지 못한 5억원의 미수금을 탕감해주는 조건이었다.
서씨에게는 홍 전 행정관에게 받은 5억원의 미수금에 대한 현금보관증이 있었는데 이 보관증을 돌려주기로 한 것. 특히 이 현금보관증에는 연대보증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홍 전 행정관은 S건설의 공사 낙찰을 위해 박세흠 전 대우건설 사장에게 직접 연락해 수주를 요청했다. 서씨에 따르면 홍 전 행정관이 박 전 사장에게 전화를 한 후 박 전 사장이 실무자에게 지시해 최저입찰가를 알려줘 S건설이 입찰을 받게 했다.
브로커 서씨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와의 ‘연줄’로 건설공사 수주 로비
‘핵심’ 홍경태 전 청와대 총무행정관, 미수금 탕감에 건설업체에 압력
실제 경찰은 S건설이 입찰에서 최저가인 96억원을 제시해 다른 업체들을 따돌리고 공사를 따 낸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박 사장의 지시를 받은 대우건설 신 모 상무가 공개입찰경쟁에서 다른 업체들의 입찰 가격을 미리 알려준 덕분에 당시 S건설이 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도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부산 신항 공사를 서씨와 S건설이 맡을 수 있도록 하라’는 상부지시가 있었다”고 진술,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서씨는 이 현금보관증을 자신과 청와대의 인맥을 과시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2005년 10월 S건설 장 모 대표(당시 상무)에게 접근해 건설 수주를 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 현금보관증은 이후 2007년 4월 홍 전 행정관이 서씨로부터 회수해 갔다.
로비는 꼬리에 꼬리 물고
서씨의 로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호형호제’하던 홍 전 행정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을 소개받은 것. 정 전 비서관은 1978년 지방직 7급 공무원으로 관계에 입문, 2002년 서울시 감사담당관을 지냈으며 2003년부터 5년간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청와대의 안살림을 책임진 인물이다. 특히 그는 노 전 대통령과 동기로 사석에서는 서로 말을 놓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서씨는 홍 전 행정관과 정 전 비서관에게 특정 건설업체가 대형건설공사의 수주를 받도록 압력을 행사해달라고 부탁한다. 2006년 7월과 같은 해 9월 한국토지공사가 발주한 건설공사를 SK건설과 대우건설이 수주하는 과정에 개입한 것.
실제 한국토지공사가 이 해 7월 발주한 2800억원 규모의 ‘군산~장항간 호안공사’는 SK건설이 수주했으며 9월 발주한 700억원 규모의 ‘영덕~오산간 도로공사’는 대우건설이 수주했다.
홍 전 행정관과 정 전 비서관은 이 과정에서 김재현 전 한국토지공사 사장 등에게 여러 차례 청탁 전화를 해 외압을 행사했다. 정 전 비서관은 그러나 “토지공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서씨를 만나보라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사 입찰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소환 조사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정 전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왔고 입찰 관련 부탁을 하기 위해 서모씨가 직접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발주와 입찰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며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씨는 “정 전 비서관의 도움을 받고 입찰이 이뤄지기 전에 토지공사 사장실을 방문했으며 ‘비서관님에게 뭐라고 했기에 입장 곤란하게 하느냐’는 말을 듣고 대우건설이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청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발등 불 떨어진 ‘과거 실세’
서씨는 로비를 하며 돈을 챙겼다. 지난 2005년 1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모두 11회에 걸쳐 S건설 장 모 대표(당시 상무)한테 정 전 비서관 등에 대한 사례비 명목으로 9억1000만원을 받아 착복한 것.
SK건설과 대우건설의 공사 수주 중 두 건설사로부터 직접 받은 리베이트는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9억원대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던 S사에게 하청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서씨의 말처럼 그는 대우건설이 발주한 부산 신항 공사의 입찰 대가로 S건설에서 2억3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2006년 7월에는 ‘군산∼장항 구간 호안공사’의 하청을 S건설이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4억원을, 같은 해 9월 ‘영덕∼오산 구간 도로공사’에서도 공사 수주에 힘을 써주는 대가로 2억8000만원을 챙겼다.
부산 신항 공사는 대우건설로부터 하청받는 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두 건은 수주를 받지 못했다. 결국 S건설 장 모 대표는 “두 건은 수주를 못 받아 돈을 돌려받기로 했다. 그런데 서씨가 시간을 주면 어떻게든 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이번 사안을 경찰에 제보,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번 일로 서씨는 구속됐으며 정 전 비서관과 홍 전 행정관의 발에는 불이 떨어졌다. 대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데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가를 받지 않았더라도 만남을 주선해 입찰에 영향을 주었다면 전 청와대 인사 두 명에게는 직권 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정씨는 참여정부 말기 S해운 이사였던 전 사위 이모씨(구속기소)로부터 여행용 트렁크에 담긴 현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 밖에도 국가기록원의 고발로 노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에 관여한 혐의에 관해 검찰로부터 별도로 수사를 받고 있는 처지이기도 하다.
경찰 수사 어디까지?
경찰은 서씨의 진술이 구체적인 데다 실제로 정 전 비서관과 홍 전 행정관이 이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하는 한편 건네진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정상문 전 비서관과 홍경태 전 청와대 행정관, 박세흠 전 대우건설 사장, 김재현 전 한국토지공사 사장 등 4명을 출국 금지조치 됐으며 경찰은 서씨의 은행계좌 입출금 내역을 추적해 서씨가 모 중소업체측으로부터 받은 9억1000만원의 용처를 확인하고 있다. 서씨가 S건설로부터 받은 돈의 사용처를 확인하면 홍 전 행정관의 금품수수 여부는 물론 제3의 인물이 있었는지의 여부도 가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우건설·한국토지공사, 청와대 외압 인정 “청와대서 전화 걸려왔다”
된서리 맞은 관련 인사·기업들…사건은 “공사 수주 더 있다” 확대 중
경찰은 또 외압을 받은 건설업체들이 실제로 입찰 정보를 흘리거나, 낙찰을 조작했는지 여부에도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당시 입찰 과정에 관한 자료 일체를 토지공사와 대우건설로부터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해 타당성을 정밀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
하지만 해당 건설사 측은 연루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치열하게 경쟁해서 수주받은 것”이라며 “박 전 사장 이후 대표이사가 두 번이나 바뀌는 바람에 당시 수주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 이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하청업체에 S건설사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SK건설 역시 “당시 토공이 발주했던 공사는 환경단체들의 반발로 공사자체가 무산됐었다”면서 “공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리베이트가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 전 한국토지공사 사장도 경찰에 자진 출두했지만, 입찰에는 문제가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사건의 핵심은 홍 전 행정관이 쥐고 있다. 현금보관증을 돌려받은 이유와 경위 등에 대한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번 의혹의 실체가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 전 행전관은 출석을 앞두고 돌연 말레이시아로 출국 행방이 묘연해져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한편, S건설 관계자는 이외에도 서씨에게 공사 수주를 서너 건 더 부탁했다고 진술, 경찰은 수사를 확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