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약’ 프로포폴, 위험한 ‘검은’ 손길
[시사포커스=양민제 기자] 지난달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세계최초로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했다. 프로포폴은 수면 내시경이나 성형수술에 많이 사용돼왔지만 일부에서 이 약을 불면증 치료 등에 적용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특히 지난해 마이클 잭슨의 사망하게 된 한 원인으로 프로포폴 오남용이 지적되면서 그 심각성이 알려지기도 했다.
식약청에 따르면 약품 관계자들이 프로포폴의 규제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성형외과나 내과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프로포폴을 사용해왔다. 또한 일부 중독자들은 성형보다는 프로포폴을 투약하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아가고, 중독으로 인한 범죄나 의료 사고가 잇따르는 등 사회적 문제가 계속됐다.
프로포폴의 마약류 지정논란에 대해 식약청은 프로포폴을 오남용할 경우 ‘정신적 의존성(보상효과)’ 유발과 마취제 ‘미다졸람’처럼 일부 환각 증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시사신문>은 프로포폴이 갖고 있는 유해성에 대해 집중 취재해봤다.
국내 투약 1위를 기록한 ‘프로포폴’은 수면내시경, 성형수술 등에 다양하게 쓰였던 수면마취제다. 특히 프로포폴이 성형수술에서 많이 사용되다 보니 강남일대 병원들과 성형을 많이 하는 연예인들이 주 고객들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프로포폴은 지난해 배우 주지훈 씨가 마약파문에 연루됐을 때 거론됐던 마취제였으며, 연예인 지망생이었던 한 20대 여성도 프로포폴 다량투약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프로포폴의 유해성이 알려졌다.
‘하얀 약’ 프로포폴
우윳빛을 내는 프로포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일명 ‘하얀 약’으로 불린다. 특히 국내에서는 성형외과, 내과 등에서 직접 수술을 집도할 수 있어 프로포폴을 쉽게 썼지만 실제로 그 부작용은 매우 심각했다.
전문의약품인 프로포폴이 수면마취제 대신 불면증 치료제, 피로회복제 등으로 오남용되면서 문제의 발단이 된 것.
이와 관련해 식약청 관계자는 “프로포폴은 개인에 따라 (투약하는) 적정용량이 다르다. 또한 적정용량과 치명용량 간의 범위가 매우 좁기 때문에 적정용량 자체를 맞추기 힘들다”며 “만약 불면증이나 피로회복 등 잘못된 효과를 기대하고 과다 투약할 경우 사망할 위험이 크다”고 프로포폴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14일 식약청이 개최한 ‘프로포폴 관리방안 설명회’에서 김은정 약리연구과장은 ‘프로포폴 남용실태 조사 용역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김은정 연구과장에 따르면 지난 해 11월 국내 72개 병원의 마취통증의학과 과장들이 답변한 결과, 6개 병원에서 8명의 프로포폴 중독자가 존재했다. 이들은 마취과전공의 4명, 기타전공의 2명, 간호사 1명인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김 연구과장의 설명이다.
또 그는 “프로포폴 관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2000년부터 10년 동안 부검 29건, 감정의뢰 10건을 실시한 결과 의료사고사망 14건, 변사 20건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경찰청에서 제공한 프로포폴 관련 사건사고 자료에는 2007년부터 3년간 총 9건이 집계됐으며, 대부분 사망에 이른 사건이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의원에서 한 환자는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내시경 검사 직후 호흡억제가 일어나 사망했다. 또한 2009년에는 만성불면증에 시달리던 A 씨가 잠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프로포폴을 주사하여 급성 중독으로 사망했다. 또 개인병원의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던 B 씨는 프로포폴에 중독돼있던 중 결혼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아 프로포폴 과다 투약으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
프로포폴은 중독성이 마약 못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 및 사망 사건뿐만 아니라 프로포폴 중독으로 인한 절취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내시경수술을 마친 환자가 병원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정맥용 전신마취제 포폴주사 앰플을 절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한 의사는 프로포폴에 중독돼 자신이 근무하던 성형외과에서 프로포폴 주사제를 절취해 수십 회 투약한 건도 있었다. 실제로 인천남동경찰서 사건자료에 따르면 인천 ◇◇의원은 지난 2009년 9월7일부터 11월9일까지 두 달간 42명에 대해 카복시 시술을 하면서 프로포폴을 투약했다.
식약청, 지속적인 강화 방침
프로포폴과 관련된 사고에 대해 김은정 연구과장은 “절반은 거의 의료사고”라고 전제하고, “저혈압이나 무호흡을 야기해 수술 중 갑자기 사망에 이르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외에는 자살, 사고사 등의 변사사건으로 스스로에게 주사하여 사망하는 경우다. 프로포폴은 반응이 엄청 빨라 주사한 직후 3초면 쓰러질 수도 있다. 한 변사 사건에서는 프로포폴을 과다 투약하여 몇 초 만에 쓰러져 뇌진탕으로 사망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 의하면 평균 20~30초 만에 의식을 잃고, 무호흡 및 저혈압으로 인해 혼수상태가 되고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 그는 “프로포폴의 심각한 중독성에 비해 내재된 위험성이 매우 커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성형수술이나 내시경을 받을 계획이 없는 사람들 중에는 프로포폴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결코 안심할 수 없다”며 “지난 92년 국내에 도입된 프로포폴은 소아과, 흉부외과 등 18개의 진료과목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만큼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약물에 중독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프로포폴의 마약류 지정논란에 대해 식약청 측은 지난달 25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프로포폴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오남용할 경우 자제력을 잃게 하고 강력한 충동과 지속적인 갈망을 일으키는 ‘정신적 의존성(보상효과)’을 유발한다”고 밝혔다. 또한 “프로포폴은 앞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마취제 ‘미다졸람’처럼 투여 후 기분을 전환시키고 일부 환각 증상도 야기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기봉 식약청 마약류 관리과장은 <시사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연구 용역 결과, 의료기관에서 수술 목적 이외로 단순 프로포폴을 맞는 등 오남용 사례가 심각했다”면서 “(마약류로 지정되면) 관리 대장을 작성하고 2년간 보관 의무가 부여된다”고 밝혔다.
프로포폴 마약류 지정에 따라 병의원들은 이르면 내년 초부터 프로포폴을 잠금장치가 있는 공간에 보관해야하고 프로포폴을 투약한 환자, 목적, 분량 등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또한 이에 대해 보건 당국의 엄격한 관리를 받게 된다.
식약청은 의료인 및 의과대생 등에 대한 의학 윤리교육 강화하고 프로포폴 관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향후 위험성이 내포된 시술은 장비와 인력이 확보된 특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서 시행하는 등 국내 의료체계 개선도 불가피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