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경영권 지키기가 줄곧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범현대가와의 마찰에 이어 최근에는 쉰들러도이치랜드의 적대적 M&A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현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진땀을 흘려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정치권을 비롯한 소비자단체에서 대기업 ‘순환출자 금지’를 외치면서, 현 회장의 고민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방어에 이어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그룹의 오너일가는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을 늘리며, 최상위회사를 현대엘리베이터에서 현대로지스틱스로 전환하고 있다. 이에 현대로지스틱스의 최대주주 현대글로벌이 현대그룹 지분구조 상 최상위회사로 급부상 중이다.
현대엘리베이터→현대로지스틱스, 현정은 지분이동
순환출자 금지 압박, 현대글로벌 지주사로 급부상?
7월 17일 경제개혁연대는 ‘대규모기업집단의 순환출자 현황 및 해소 지분가치’라는 자료를 내고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지분가치를 분석했다.
현대그룹
순환출자구조 5개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현대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첫째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현대엘리베이터’, 둘째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 셋째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 넷째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 다섯째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 등 5개다.
그간 현대그룹의 대표적인 순환출자구조는 첫 번째와 두 번째였으며, 현대엘리베이터가 최상위회사로 거론돼왔다. 이는 2000년 11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주식을 취득하면서 만들어진 구조로, 현 회장은 2003년 11월 정몽헌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현대상선 지분을 통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확보했다.
7월 19일 현재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보유지분은 1.02%(10만8968주)이다. 이 외에도 현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7.38%(79만2436주), 현대로지스틱스 25.5%(273만9444주), 우리사주조합 5.7% 등을 포함한 현대그룹의 현대엘리베이터 우호지분은 52%에 달한다.
그러나 현 회장의 지분은 1.02%, 오너일가의 지분은 12.52%에 그쳐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현 회장의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며, 현 회장이 상장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대폭 늘리기도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인 쉰들러그룹이 회계장부 열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대적 M&A에 대한 가능성으로 현 회장의 경영권이 흔들린 바 있어,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를 최상위회사로 유지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는 관측이다.
오너, 현대글로벌
안정적 지분 확보
이에 따라 현 회장도 2010년부터 현대그룹 최상위회사를 현대엘리베이터에서 현대로지스틱스로 옮기는 모양새다. 실제로 2010년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75%를 현대로지스틱스(구 현대로지엠)에 매각한 뒤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4.62%를 매입했다. 업계에서는 상장사인 현대엘리베이터보다 비상장사인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7월 19일 현재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구조는 현 회장 12.04%(219만8819주),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0.16%(2만9041주), 장남 정영선씨 0.08%(1만5115주) 등으로 오너일가의 총 보유지분은 13.1%(239만2975주)다. 또 현대로지스틱스의 최대주주는 현대글로벌로 보유지분은 24.36%(444만7734주)이며, 현대상선이 14.48%(264만4822주), 현대증권이 3.34%(60만9000주)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현대그룹이 순환출자구조 상 최상위회사를 현대로지스틱스로 이동하는 중이지만, 지난해부터 정치권을 비롯한 소비자단체에서 대기업 ‘순환출자구조’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에 이어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과제에 당면했기 때문.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현대그룹 오너일가가 현대로지스틱스를 통해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려면 322억9200만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현 회장의 지분이 50%에 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로지스틱스는 오너일가가 13.1%, 현대글로벌이 24.36%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12.54%의 추가지분이 필요하다.
현대글로벌은 현 회장이 59.21%(300만주), 장녀 정 전무가 7.89%(40만주)의 지분을 보유해 모녀의 지분만 67.1%에 달하는데, 이는 곧 현 회장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계열사라는 얘기와 상통한다.
이로 인해 현대로지스틱스가 아닌 현대글로벌을 통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법도 제기된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글로벌의 지분을 매각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동시에 오너일가의 그룹 내 영향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을 쓰면 현 회장은 현대글로벌의 지분을 추가 매입할 필요가 없다. 이미 67.1%라는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주사 체제 전환과 관련해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은 기업의 의도와 상관없을 수 있다. (현대그룹은) 보여지는 것이 전부며, 시나리오가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박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