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한국전력은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전력수요 예측 정확도 제고와 합리적인 수요관리 방안'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김중겸 사장은 이 자리에서 “당분간 전력부족 사태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당면한 수급위기 해결을 위해선 수요관리 자원 확보와 유관기관과의 정보공유 및 공조체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국가적인 전력난 극복을 위한 지원과 협조를 당부했다.
한전은 최악의 전력난에 대비해 범국민적인 에너지 절약운동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따른 전력수급 종합대책을 조만간 마련해 이달 중순부터 조기 시행하기로 했지만 무턱대고 전력을 아끼는 것만이 근원적인 절전대책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력을 아끼기에 앞서 근원적인 전력 공급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 낭비 주범은 국민이 아니다
설비예비율이란 1년의 최대전력수요와 해당 시점의 전력설비용량의 차이를 최대 수요로 나눈 것으로, 생산할 수 있는 예비전력양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2012년 전력수급계획서를 보면 2012년 기준 설비예비율 수치는 103.8로, 우리가 전력 100개를 필요로 할 경우 예비전력을 포함 103.8개를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2004년의 설비예비율(134.7)에 비하면 턱 없이 모자란 수치로, 현재 예비전력을 3.8개 밖에 더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력설비량의 여유가 거의 없는 위험한 상황이다.
이맘때쯤 각종 언론과 정부가 단골로 인용하는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9510kw로 일본 8110kw, 프랑스 7894kw, 독일 7108kw 보다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허구한 날 범국민적인 에너지 절약운동을 호소하고 언론을 통해 전기를 아끼자고 광고하며 국민들이 사용한 전력량에 대해 반성하기를 강요한다. 이런 모습이 딱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1인당 전력소비량이 아닌 1인당 ‘가정용’ 전력소비량으로, 그 기준만 살짝 바꿔 놓고 들여다보니 너무 다른 결과가 나와 배신감마저 들 정도다. 2012년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소비량은 1183kw로 일본 2246kw, 프랑스 2639kw, 독일 1700kw에 비하면 절반 수준인 적은 양임을 확인할 수 있다.
누가 전력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가정용은 전체의 18%밖에 안 된다. 결국 국민 개개인이 아무리 전기를 아껴봤자 그 양은 전체의 18% 안팎 인 셈이다. 실제 2011년 한전의 전력판매량 중 55%는 산업용으로 주택용의 3배의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나 매년 계속되는 전력난의 주범은 가정이 아니라 상업·산업용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산업계 전력사용량 중 대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산업용(병)은 산업계 총 사용량의 73.5%를 차지해 ‘명불허전’ 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최진기 JK COMMERCE 대표는 “우리나라 전력이 모자라는 이유는 전체 사용량의 55%에 육박하는 산업용 전력 때문”이라며 “전력을 아끼려면 산업용을 아껴야지 주택용을 아낀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내가 삼성보다 비싼 전력을 쓰고 있을 줄야…
전기위원회는 지난 4월 7월 평균 13.1% 인상을 골자로 한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부결했었다. 결국 8월 6일부터 평균 4.9%가 인상됐다. 그러나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주택용 누진세는 개선되지 않았고 적자폭을 키운 주요 원인인 산업용 전력은 여전히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어 이에 대한 전기요금 현실화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전은 전력난의 주범인 대기업들을 제재하기는커녕 원가 이하 판매로 퍼주는 식의 특혜를 멈추지 않고 있다. 1kw당 전력 판매단가를 봐도 주택용은 119.99원/kwh인 반면, 일반용은 101.69원, 산업용은 81.23원, 산업용중 대기업이 사용하는 요금은 78.32원인 것으로 나타나 더욱 충격이다.
예를 들면 독거노인들이 삼성전자보다 전력을 비싸게 쓰는 셈이라니 일각에서는 이러한 실태를 두고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말조차 돈다. 김동철 위원은 “대기업들에 지원되는 전기료 인하 특혜를 바로 잡으면 서민층 수백만 가구에 전기료 혜택을 줄 수도 있고 한전의 부채 문제도 일부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최진기 대표는 “일본기업이 바다 건너와 우리나라에서 제조 공장을 설립하는 이유도 일본의 3분의 1가격정도인 국내의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공장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 봐주기식 전력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는 한전에 대해 비난했다. 물론 이러한 정부와 한전의 정책으로 인해 기업경쟁력 재고나 해외기업 투자 유치 등의 실적은 높일 수 있겠으나, 그 결과로 한국 전력이 빛 50조를 떠안으면서 일반 가정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문제다.
정부는 전력산업을 민영화하기 위해 전력사업구조개편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벌을 비롯한 독점자본들에게 민간발전사를 소유할 수 있게 허용했다. 한국전력은 현재 전력 송,배전만 담당하기 때문에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회사의 전기를 구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전기를 생산하는 곳은 3곳으로 압축되는데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한전자회사인 발전5개회사(한국동서·남동·남부·중부·서부발전), 민간기업의발전회사(포스코에너지, GS파워, SK E&S)다. 한수원은 원자력 발전 방식이라 단가가 가장 싸고 한전의 발전자회사 역시 비교적 싼 가격에 전력을 판매하고 있지만 민자 발전의 경우 한전이 시장가격을 다 주고 전력을 사오고 있기 때문에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평가받고 있다.
한전이 재벌소유 민간 발전회사로부터 구입하는 전력량이 지난 2007년에 비해 무려 2배 이상 급등하며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자 투자계획 역시 줄을 선 상태다. 작년 한전 자회사의 영업이익이 3.6%인 반면 민자 발전사는 12.4%로 2024년까지 민자발전소을 11개사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민자 발전 한전에게 판매하는 전력 가격은 1Kw당 169.85원으로, 한전은 민자 기업에게 저 금액으로 전력을 구매해 필요로 하는 기업에게 80원에 되판다. 예를 들어 GS그룹이 전기를 만들어서 하에게 169.85원에 팔고 GS그룹이 전기를 쓸 때는 80원에 삼으로써 절반에 가까운 이윤을 남기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기위원회의 관계자 조차도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다”며 지탄했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돈은 국민 혈세로 매꿔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동철 지식경제위원회 위원(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한전의 8조원 누적 적자와 12년 현재 85조원에 달하는 부채의 주된 원인이 대기업용 요금에 있다고도 볼 수 있으며, 대기업용 전기로 생긴 손해를 서민들이 대신 부담하고 있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홍의락 지식경제위원회 위원(민주통합당 소속)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전력산업 전반에 걸쳐 대기업에 과도한 특혜가 이어지고 있다”며 민자 발전소 건설발주가 대기업에 몰려있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업계 전문가는 이런 현실을 두고 “기업이 정부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가져와서 국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조세구조적인 면을 보자면 가정이 기업이 사용한 전기세까지 보전해 주는 체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국민 사기극은 그만, 잘못된 전기요금부터 고쳐라
한전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 지난해 50조원(부채비율 113%)의 부채를 떠안고 이자비용은 1조4000억 원, 영업 손실액은 3조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2007년 22조원의(부채율 49%)에 비해 약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전 측 관계자는 “전력판매 대가로 받는 전기요금으로 이자는커녕 기본적인 사업비용도 충당할 수 없다”며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전기료를 인상해야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지만 지식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의 전력요금 원가 회수율은 87%로 이는 전력 100원어치를 판매할 때마다 13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력소비량이 많아질수록 한전은 더 많은 부채를 떠않을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한전은 이런 구조의 가장 큰 원인은 저렴한 전기요금 자체에 있다고 단정짓기 앞서 내부 구조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는 자아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