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갈등이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고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3남과 4남으로 형제다. 본디 금호는 진득한 형제애를 과시하며 형제경영을 해온 그룹이었다. 그랬던 금호가 이제는 앙숙의 상징이 돼버렸다. 2010년 분리경영을 선언하며 갈등을 표면화하더니 최근에는 상표권, 주총 등 다양한 건으로 사사건건 얼굴을 붉히는 중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시아나, 2대주주 금호석화의 이사후보 반대에 ‘빠직’
무리한 M&A 이후 금 가버린 형제 관계 “따로 갑시다”
상표권 두고 “사용료 지급해” vs “공동 소유인데 왜?”
3월 29일 금호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를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주총에 앞서 금호석유화학이 ‘사내이사 선임안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율 12.6%를 보유해 2대주주다.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
사내이사 선임에 “No!”
금호석유화학은 주총이 열리기 이틀 전 사내이사 후보 서재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사장, 한창수 아시아나항공 전략기획 본부장과 사외이사 후보 이성근 전 산업은행캐피탈 사장의 신규·재선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반대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서재환 이사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독자적인 경영과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한창수·이성근 이사는 “금호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지원을 위해 금호산업의 금호아시아나플라자사이공(KAPS) 50%를 아시아나항공이 인수하도록 이사회에서 찬성표를 던진 인물”이라고 반대한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이 같은 내용을 언론에도 공개했다. 금호석유화학이 아시아나항공 주총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지난해 ‘박삼구 회장에 제3자 유상증자 우선 배당한다’는 안건을 반대한데 이어 두 번째였다. 그러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주주로 주총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사항을 사내이사 후보자 실명을 거론하며 언론에 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즉각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물론 주총에 참가한 주주의 과반이 찬성해야 되기 때문에 해당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이 박삼구 회장이 이끄는 아시아나항공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 업계는 의의를 뒀다. 금호석유화학은 “2대주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이들 형제의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간과하기는 힘든 행보였다.
표 대결은 없더라도 설전은 오갈 것이라고 예측됐던 아시아나항공 주총은 싱겁게 끝났다. 원안대로 가결됐고,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를 반대하는 금호석유화학의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대리인마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보니 금호석유화학이 주총 전 반대 입장을 내놓은 이유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우의 급습 ‘경영권 분쟁’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박삼구·찬구 형제의 해소되지 않은 갈등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바라봤다.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관계가 조금씩 금이 간 건 2006년부터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2008년 대한통운을 차례로 인수했는데 투입된 돈만 10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M&A를 밀어붙인 사람은 박삼구 회장. 당시 박찬구 회장은 “M&A를 무리하게 하면 경영상태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박찬구 회장의 예상대로 금호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이 발발한다.
박찬구 회장은 아들인 박준경 상무보와 함께 금호산업 지분 6.11%는 매도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10.01%에서 18.47%로 대폭 늘렸다. 5남 박종구씨를 제외한 금호가 4형제(박성용·정구·삼구·찬구)가 동일하게 보유해온 지분율을 깬 행동이었다. 이에 박삼구 회장은 ‘동반퇴진’으로 맞불을 놨다.
자신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에서 해임시키는 동시에 그룹 경영에서도 손을 떼도록 한 것이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본인이 해임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채권단의 중재로 2010년 3월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화 대표이사로, 11월 박삼구 회장이 금호아시아나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계열분리는 급물살을 탔다. 또 같은 해 5월 모친인 이순정 여사의 빈소에서 다정히 담소를 나누는 박삼구·찬구 형제의 모습이 공개됐고, 두 사람의 갈등도 일단락된 듯 싶었다.

형제의 갈등 ‘재 점화’
그 뿐이었다. 형제의 갈등은 2011년 박찬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 내부자거래 등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재 점화됐다. 검찰은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지분확보에 사용한 자금이 협력업체와의 뒷거래를 통해 마련됐다고 보고 칼날을 들이밀었다. 이 과정에서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관련 정보를 흘렸다고 지목했다.
박찬구 회장도 “죄지은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라며 “누구인지는 알아서 판단하라”는 발언으로 박삼구 회장을 겨냥했다. “검찰이 근거로 내세운 금호석유화학의 내부감사자료에 박삼구 회장의 측근이 개입돼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회장과 박삼구 회장의 측근 기옥 금호터미널 사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금호석유화학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이 여전한 것도 있다. 공정위가 금호석유화학의 금호산업·타이어의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분리 요청을 거부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공정위는 금호산업·타이어가 계열회사 지분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하나 사실상 박삼구 회장의 지배력이 있다고 봤다.
금호석유화학이 불복하고 공정위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패소,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박삼구·찬구 형제의 갈등도 극화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금호석유화학과 공정위의 일이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계열분리 될 경우 박삼구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대폭 약화된다. 금호아시아나 측도 “금호석유화학이 계열분리를 원한다면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처분하면 되는 일”이라며 “소송을 낸 목적이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흔들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에서 벗어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몸을 옮겼다. 실질적인 독립경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사무 공간부족을 이유로 들었지만 계열분리 등으로 증폭된 박삼구·찬구 형제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상표권 사용료 지급
형과 아우, 누가 웃을까
형제는 상표권 사용료를 두고도 얼굴을 붉히는 중이다. ‘금호’라는 상표권 사용을 둘러싸고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해석을 달리한 것이 발단이었다. 금호석유화학은 경영권 분쟁을 기점으로 상표권 사용료 납부를 중단했다.
이에 지난해 금호산업은 상표권 사용료율을 기존 매출액 대비 0.2%(기존 0.1%)로 올리고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사용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최근에는 금호석유화학이 일본의 미쓰이케미칼과 JSR코퍼레이션과 각각 설립한 금호미쓰이화학·금호폴리켐에 상표권 사용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요구한 사용료율은 0.2%로 동일했다.
금호산업은 “그룹상표의 유일한 소유자는 금호산업”이라며 “합작법인인 점을 고려해 상표사용료 청구를 유보해 온 것”이라고 주장했고, 금호석유화학은 “공동상표권자로 권한이 있기 때문에 부과할 의무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금호산업이 선택한 방법은 ‘상계처리’였다. 금호석유화학(20억원)과 금호P&B화학(38억원)이 가지고 있던 58억원의 기업어음을 상표권 사용료로 처리한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상대로 오는 6월 중 어음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동상표권자로 금호라는 상표권을 사용할 권리가 있는데 금호산업이 일방적으로 상계처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금호석유화학의 입장이다. 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상표권에 대한 실권리자는 금호산업으로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마주보며 웃는 금호가 형제의 모습을 언제 볼 수 있을까. 주총에 상표권 소송까지, 형제의 싸움은 또다시 불붙었다. 끝이 없는 ‘금호전쟁’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은 상태. 이들의 관계는 어떠한 국면을 맞이할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