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했던 주말, 남양유업에는 먹구름이 끼었다. 대리점주에 대한 영업사원의 욕설전화 녹취파일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녹취록에는 “물건 못 받는다고? 죽기 싫으면 받아” 등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강압적인 ‘밀어내기’가 담겨있었다. 소비자들은 할 말을 잃은 눈치다. ‘남양유업 불매운동’까지 전개하는 등 슈퍼 ‘갑(甲)’의 횡포에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핑계 대지마. 당신이 한 게 뭐 있어. 잔인하게 해줄게. (제품) 버리던가. 망해. XXX아. 대리점장으로 할 얘기냐 XXX아? 얼굴 보면 죽여버릴 것 같으니까. XX아 자신 있으면 들어오던가. 맞장 뜨든지….” 등. 3분이 채 안 되는 음성파일에서 영업관리 소장은 서슴없이 반말과 욕설을 내뱉었다. 대리점주는 존대를 하며 쩔쩔맸다. 34세 영업관리 소장과 56세 대리점주의 대화였다.
불매운동에 압수수색까지
녹취파일이 공개되자 파장은 컸다. ‘남양유업’ 관련어는 실시간 검색어에 끊임없이 올랐고, 주가는 급락했다. 불매운동 바람까지 불었다. 남양유업 제품을 “회수 조치했다”, “일절 발주하지 않는다”며 공지를 붙인 편의점이 있는가하면, ‘구입해선 안 될 제품’이라 지목하고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소비자들이 생겨났다.
녹취록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남양유업은 홈페이지에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올렸다. 남양유업은 사과문을 통해 “실망을 안겨드린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관리자를 문책하고, 회사차원에서 해당 대리점주께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임직원들의 인성교육시스템을 재편하고 대리점과 관련한 영업환경 전반을 면밀히 조사해 이번과 같은 사례가 결코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가 된 직원도 해고했다. “사태의 엄중함을 감안해 해당직원의 사직서를 즉각 수리했다”는 것이 남양유업의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비난여론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남양유업이 ‘밀어내기’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남양유업은 강매행위로 인해 2006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고, 2009년 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남양유업피해자협의회가 남양유업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이들은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밀어내기(강매)’, ‘떡값’, ‘리베이트’ 등을 강요하며 수익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협의회 측 주장은 유튜브에 올린 4편의 동영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대리점의 전산발주가 마감되면 남양유업에서 주문관리(회사에서 정한 목표치로 수정)를 통한 밀어내기를 했다”며 “그러면 대리점에서 발주한 데이터가 사라지고 남양유업이 조작한 데이터만 남는다”고 토로했다. 근거로는 대리점과 본사가 보관 중인 발주데이터가 제시됐다.

또 협의회 측은 “남양유업이 명절이 되면 떡값을 요구하고 본사에서 지원되는 판매 장려금, 육성 지원비 등에 대해서도 리베이트를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거부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대리점주들이 항의를 하면 다음날 소화하지 못할 양의 밀어내기가 들어왔다는 것이 협의회 측 설명이다.
협의회는 지난달 사전자기록변작죄 및 공갈죄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등 10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남양유업이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데 따른 맞불이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곽규택)는 2일 남양유업 본사와 지점 총 3곳을 압수수색해 전산자료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 등 남양유업 관계자들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고 소환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양유업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 “협의회가 제기한 고소고발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 것”이라며 “남양유업 본사 압수수색과 욕설파문은 상관없는 사안으로 욕설파문에 등장한 대리점주는 이번 고소고발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끝이 아니다”
남양유업의 시련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협의회가 추가 녹취파일 공개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협의회는 6일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남양유업 부당행위 규탄집회’를 열고 “본사가 부당행위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 적절한 보상 등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녹취파일을 추가로 공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공개 된 녹취파일에는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명절 떡값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주장이다. 협의회는 “적게는 10만원부터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요구했다”며 “대부분 현금으로 받아가 증거가 많지는 않으나 몇 개의 통장거래내역을 확보해 떡값의 실체도 증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남양유업이 부당행위를 일삼았다”는 추가증언까지 속속 이어졌다. 제주와 경남 진주에서 대리점을 운영했던 업주들은 “본사직원 40~50명이 참석하는 회식비용을 10여개 대리점이 지급했다”며 “회식비용 요구는 그동안 당연시돼 왔던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남양유업 대리점을 10년간 운영한 김대형씨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유통업을 10년 동안 해 주변 유제품 회사를 잘 안다. 하지만 정말 갑중의 갑은 남양유업”이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남양유업에서 근본적인 해결안을 내놔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문제로 지목된 것은 ‘밀어내기’ 관행인데, 영업사원을 해고하고 인성교육시스템을 재편하는 것은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밀어내기가 아니냐”는 한 언론과의 질문에 “본사에서는 밀어내기로 보지 않는다”며 선을 그은 바 있다. 검찰수사를 감안하면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근원적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번 사태는 남양유업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대리점 영업망을 운영하는 기업에서는 공공연히 ‘밀어내기’가 일어났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업들이 무리한 영업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 관행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제2의 남양유업 사태가 출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