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하면 다르다?…‘위장도급’ 의혹 일파만파
삼성이 하면 다르다?…‘위장도급’ 의혹 일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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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반듯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슬로건으로 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업들은 불법과 편법을 이용한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실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 중 ‘글로벌 기업’으로 칭송되는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가 위장도급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회적으로 갑을(甲乙) 관계가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 여론이 거세다.

 

 

삼성A/S, 바지사장 세워 협력업체 위장설립
삼성이 직접 뽑아 협력업체로 가는 신입기사
위장도급 보도 후, 조직적 증거 인멸 시도


삼성전자의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가 수십 개의 협력회사를 위장으로 설립한 뒤 불법파견 등 위법ㆍ탈법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를 위장 설립해 실제로는 직접 업무지시를 내리고 노무관리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전현직 임원들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협력회사를 설립한 것은 ‘위장도급에 따른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는 것. 이들은 협력업체 사장과 직원의 증언, 각종 도급계약서 등이 담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위장 운영 사례’ 자료를 제시했다.

위장도급에 따른 불법파견 의혹

자료를 분석해 보면 협력업체들은 도급업체로서 독립돼 있다고 보기 힘들다.
우선,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간의 계약서를 살펴보면, 협력업체 직원들의 급여를 실질적으로 삼성전자서비스가 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교육하는 것도 삼성전자서비스가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정규직인 차장급 사원 등이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피디에이(PDA)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해 직접 업무 지시를 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부산 동래센터와 협력업체 사이의 2013년도 업무계약서를 보면, “‘을’(협력업체)은 본 계약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계약의 경우 ‘갑’(삼성전자서비스)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이처럼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업무 지휘·감독, 임금 지급, 교육·징계에 상당 부분 직접 관여한 증거들이 광범위하게 제시됐다.
‘위장도급’은 올 초 논란이 된 이마트 수급사원들의 ‘불법파견’과 유사한 형태로 협력업체의 실질적인 운영이나 인사권 등을 원청업체가 장악한 경우를 뜻한다.

도급업체의 경영상 독립성은 불법파견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이 같은 증거들은 협력업체가 독립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게 한다.
이에 대해 삼성은 전직 임직원 출신이 대표하는 곳은 극소수이며 협력업체는 모두 독립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설령 삼성 쪽 주장대로 문제가 없는 도급계약이라고 해도 원청이 협력업체의 계약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은 불공정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도급계약을 맺은 원청업체가 하청노동자에게 직접 지시·감독을 하거나 하청업체의 경영권 실체가 없으면 불법파견(위장 도급)으로 보고 있다.
권영국 민변 변호사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는 독립된 업체로 볼 수 없고 직원들의 임금을 삼성전자서비스가 대신 지급하는 형태에 가깝다”며 “현대차나 이마트 보다 위장도급 정도가 심해 불법파견을 넘어 직접 고용관계가 성립하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은수미 민주당 의원이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삼성전자서비스가 위장도급 의혹이 제기되자, 센터마다 긴급하게 계약서를 바꾸어 쓰거나 기존에 작성된 서류를 파기하기 위해 모은 기존 서류라며 자료를 공개했다. ⓒ뉴시스

 삼성전자서비스 증거인멸 시도

은수미 민주당 의원 등이 관련 사실을 폭로한 후 하루 만에 삼성전자서비스가 각 센터에 삼성 로고가 담긴 홍보물 등을 치우고 있는 것이 포착됐다.
은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 문제가 언론에 나가고 난 뒤, 여러 센터에서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삼성의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회수하고 급하게 협력업체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새로 맞추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예는 삼성서비스 뿐만 아니라 현대차나 기아차도 노동부 불법파견 조사를 앞두고 작업표준서 등에 담긴 현대차 로고 등을 삭제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부당한 처우와 열악한 근로실태를 호소하는 제보도 쏟아졌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는 서비스기사는 최저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초과근로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조 가입 시 업체를 폐업하고 해고시키겠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1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협렵업체 사장의 조회시간 녹취록에서 업체 사장은 “분명히 얘기하지만 저쪽에 연루해서 노조에 가입한다든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위임장에) 서명해서 법적 대응에 합류 한다든지 이런 사람이 생기면 그날부로 바로 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되면 동래(서비스센터)와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1일 부산지역 협력업체 동래서비스 센터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자 폐업을 신고하고, 노사협의회 위원장과 간사를 뺀 다른 직원들을 인근 협력업체로 고용 인계했다.

근로자가 노동조합 업무를 위한 행위로 인해 사측으로부터 해고나 불이익을 받는 것은 현행법 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협력업체 직원 100여명은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지만 그마저도 방해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위장도급, 노동관련법 책임 회피 술책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가 주식의 99.3%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품수리를 맡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는 전국에 124곳이며 이 중 7개는 직영, 나머지 117곳은 협력업체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서비스는 합법적 파견이 가능한데도 왜 굳이 도급을 가장한 불법파견을 선택했을까? 노동계에서는 삼성 쪽이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등 각종 노동 관련법이 규정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편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파견 기간 2년을 넘긴 노동자를 원청 회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 등의 의무를 피해가려는 술책이라는 것.
 

만약 일각의 주장처럼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된다면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될 것이고, 불법파견만 인정된다면 2년 이상 삼성에 파견된 노동자들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삼성이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
은 의원은 ‘삼성서비스 불법파견 의혹’은 조세회피와 유사한 고용회피라며 국내에 ‘고용피난처’를 만든 셈이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은 의원은 이러한 경우 통상적인 노동법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 같은 경제법으로도 다뤄야 한다며 관계당국에 엄정한 조사를 촉구한 상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도 위장도급 논란에 휩싸인 삼성전자에 각성과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실련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우량기업인 삼성이 국내에서는 여전히 재벌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같은 위법?탈법적 행위를 통해 수익을 낸다면 이러한 기업을 일류기업이라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삼성은 그룹차원에서 일류기업의 경영행태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들은 또 없는지 돌아보며 이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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