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2년간 외부로부터 자금조달을 받은 대기업 소속 12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재무현황 및 자금조달 상황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 마디로 ‘자식 빚 갚으려다 휘청거리는 집안’에 대한 분석인 셈. 분석대상 건설사 상당수가 재무위험으로 그룹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들은 유상증자, 영업양수, 자금대여 등 방법을 통해 그룹 계열사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선택이었으나 오히려 그룹전체로 재무위험이 전이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룹이 해체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살펴보면 12개사 중 9개사(두산·STX·화성봉담·금호·동부·진흥·극동·한라·남광)는 2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이중 한라건설이 만도에 재무악화를 안긴 사례가 눈에 띄었다. 그룹으로부터 수차례 대규모 지원을 받은 탓이다.
한라건설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2년(2011~2012년) 한라건설의 매출은 1조6860억원에서 1조8735억원으로 늘었지만, 영업손익은 422억원 흑자에서 2198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당기순손실도 200억원에서 2259억원으로 그 규모가 커졌다.
동일기간 부채비율은 359.92%에서 559.51%로, 차입금의존도는 43.74%에서 55.95%로 각각 늘어났다. 한마디로 매출증가를 제외하면 한라건설 재정현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한라건설도 우량 계열사 만도로부터 자금수혈을 받아왔다. 두산건설과 차이라면 지원주체가 ‘잘난 아들’이라는 것이다. 2012년 만도는 한라건설에 IT자산(67억원 규모)을 양수했다. 간접적으로 이뤄졌던 이상한(?) 자금지원도 함께였다.
한라건설은 그해 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정몽원 회장(300억원)과 만도의 100% 자회사 마이스터(200억원) 등의 참여로 자금이 조달됐다. 한라건설의 유상증자 직후에는 만도가 마이스터에 600억원을 출자했다. 결국 만도가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건설을 지원한 셈이었다.
이 같은 지원은 올해에도 되풀이됐다. 한라건설은 3435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정몽원 회장(50억원)과 마이스터(3385억원)가 이에 참여했다. 마이스터는 한라건설에 대한 출자결정과 함께 만도를 대상으로 3786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결과만 보면, 만도의 자금이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건설로 흘러간 것이었다.
편법지원 의혹이 제기됐다. 경제개혁연대는 26일 만도와 정몽원 회장 등 만도 경영진을 상법 신용공여금지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한라그룹은 한라건설→만도→마이스터→한라건설의 순환출자 구조”라며 “이러한 형태의 유상증자(마이스터→한라건설, 만도→마이스터)는 공정거래법의 상호출자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제개혁연대는 “만도가 모회사인 한라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유상증자에 참여시키는 것은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요건에 해당한다”며 “그러자 만도는 마이스터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 상법 규정을 회피하려고 했다. 법적 미비점을 악용한 사례”라고 일갈했다.
만도의 ‘한라건설 지원’은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야기했다. 한라건설과 만도의 ‘동반부실’ 가능성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실제로 만도는 2011~2012년 매출(4조5601억원→5조593억원)은 늘었지만, 영업이익(3004억원→2559억원)과 당기순이익(2251억원→1621억원)이 각각 감소했다. 더욱이 부채비율까지 143%에서 157%로 증가했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는 “만도는 한라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할 자금을 차입금으로 조달해 단기차입금 증가, 이에 따른 이자비용 상승을 발생시켰다”며 “그 결과 만도의 순이익이 감소하고 부채비율이 증가하는 등 재무건전성이 저해됐다”고 분석했다.
한라그룹이 한라건설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지분구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라건설이 없어지면 한라그룹을 지탱하는 지분구조(한라건설→만도→마이스터→한라건설)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유상증자로 한라그룹 순환출자 구조는 보다 강화된 상태다. 그룹 내 한라건설의 입지가 공고해진 것으로, 달리보면 동반부실 가능성이 늘어났다는 얘기가 된다.
만도와 정몽원 회장은 올해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한라건설 추가지원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업계는 부동산시장이 침체기인 점을 들어 추가지원을 점치고 있다. 일부는 한라그룹이 외환위기 당시 만도를 매각했던 일을 언급, 그룹해체 가능성도 제기한다. 건설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한라건설 리스크는 한라그룹을 어지럽힐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