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요지경 감사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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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출신…총수가 직접 맡기도

감사(監事)는 말 그대로 회사의 ‘감시자’로, 회사의 재산상황과 경영진의 업무집행 상황을 감시하는 사람이다. 업무와 관련해 부정이 있을 때 주주총회나 주무관청 등에 보고하는 역할도 있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처럼 감사 역시 가장 우선한 자격요건으로 ‘독립성’이 꼽힌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감사 선임 실태를 보면 한마디로 ‘요지경’이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계열사 출신 임원을 수두룩하게 감사로 선임하는가 하면 오너일가가 직접 감사를 맡기도 한다.

두산·교보·하이트진로 등 계열사 출신 감사 독식
효성·대성·현대산업개발은 오너일가가 직접 맡아

경제개혁연구소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규모기업집단 62개 중 감사를 선임한 59개(감사위원회만 설치한 3개는 제외)의 계열사 1367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은 총 1457명의 감사를 선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한명이 여러 회사의 감사를 겸직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감사로 선임된 사람은 총 919명이다.

919명의 감사 가운데 동일기업집단, 즉 같은 그룹 내에서 감사나 임직원으로 일했거나 현재도 일하고 있는 경우는 597명(64.96%)에 달했다.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내부관계자를 감사로 선임한 것이다.

또 같은 그룹 출신이 아닌 감사 322명 가운데서도 44명은 지분 50%를 보유한 합작법인이나 2대주주의 임직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역시 회사로부터 100% 독립된 경우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를 감안하면 대기업 감사의 3분의2 가량이 ‘독립성’에서 문제소지가 있는 셈이다.

삼성·SK, 계열사 출신 2/3

이번 분석대상 59개 기업집단 중 무려 50개 기업집단이 전체 감사의 50% 이상을 계열사 출신 인물로 선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두산, 교보, 하이트진로 등 6개 그룹은 전체 감사 100%를 계열사 출신 인물로 선임했다.

두산그룹은 지주회사인 ㈜두산의 현직 임직원이 대부분 비상장 계열사 감사를 겸직하고 있다. 교보와 하이트진로 역시 그룹 내부 출신 각각 6명, 5명이 감사를 독식하고 있다. 이밖에 동양, 농협, 부영, 영풍그룹 등이 전체 감사의 80% 이상을 계열사 출신 임직원으로 선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내부출신들은 특히 비상장계열사의 감사를 맡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기업공개(IPO)로 외부주주에 의한 일정부분 감시와 통제가 가능한 상장회사와 달리 비상장회사는 사실상 감사가 유일한 견제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 소지가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 역시 56명의 감사 중 계열사 임직원 출신이 37명(66.07%)에 달했다.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등 핵심계열사 임직원이 비상장 자회사의 감사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SK그룹도 42명의 감사 가운데 73.18%에 해당하는 31명이 그룹 출신이다. 오너가 없는 포스코 역시 38명 중 70%가 넘는 27명이 그룹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효성·대성, 오너일가가 직접

오너일가가 직접 감사로 재직하고 있는 경우도 7개 그룹, 11개 계열사에 10명이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오너일가들은 자신이 감사로 재직하고 있는 회사의 지분까지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효성그룹은 3개 계열사에 조석래 회장의 아들 조현준 사장(노틸러스효성), 조현상 부사장(효성에바라엔지니어링) 등이 감사로 재직 중이다. 이중 노틸러스효성의 경우, 조현준 사장이 조현문·조현상 등 다른 형제들과 함께 지분을 각각 14.13%씩, 총 42.39%를 가지고 있다.

대성그룹에서는 김영대 회장의 부인 차정현씨가 대성초저온이엔지, 디엔에스피엠씨 등 2개 계열사 감사를 겸직하고 있다. 차정현씨 역시 두 회사의 지분을 각각 22%, 1.18%씩 보유중이다. 특히 디엔에스피엠씨는 사내이사는 김영대 회장의 아들인 김인한(차남), 김신한(3남)씨가 사내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주요 임원진이 모두 오너일가인 셈이다.

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은 본인이 지분 86.65%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인 에이치디씨자산운용의 감사를 맡고 있다. 이밖에 세아그룹에서는 이순형 회장의 부인 김혜영씨가 계열사 해덕기업의 감사로 재직중이다. 해덕기업은 이 회장이 35.40%, 김씨도 0.41%의 지분을 보유중이다. GS그룹의 승산, CJ그룹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부영그룹의 동광주택 등도 오너일가의 특수관계인들이 감사로 재직 중인 상황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배주주와 가족이 직접 계열사 감사로 재직 중인 사례는 감사의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감사의 ‘독립성’이 사외이사만큼 중요함에도 법적 요건이 사외이사보다 느슨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 관련규정에서는 감사를 선임할 때 해당 회사나 자회사의 임원이 아니라면 구체적인 자격제한 요건이 없다. 즉 계열사 임원의 경우는 가능한 것이다.

상장회사는 지분 10% 이상 보유하거나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와 최근 2년 내 회사나 계열사에 재직한 임직원 등은 감사로 선임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비상장회사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법 규정 미비로 감사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며 “기업 감사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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