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내 4개 건설계열사들이 올 상반기 희비가 교차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삼성물산은 상반기 최대 해외 수주고를 올렸음에도, 저가수주 논란에 휩싸이며 축포를 터트리기는커녕 자숙하는 분위기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분기 연속 적자상황에서 사장이 경질되는 등 건설계열사 중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올해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건설계열사 중 유일하게 순위가 하락하면서 건설부문을 축소하는 추세다. 반면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는 홍콩에 법인을 세우는 등 갈수록 건설 비중을 높이고 있어 업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삼성그룹 내 4개 건설계열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통·폐합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삼성물산, 상반기 최대 해외수주 올렸지만 ‘저가수주’ 논란
삼성ENG, 2분기 연속 적자와 사장 경질…대규모 구조조정
삼성중공업, 올해 시공능력평가 순위 하락…건설부문 축소
삼성에버랜드, 건설부문 인력강화 및 해외법인 설립 ‘기대’
삼성그룹 내 4개 건설계열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내부비리 척결의지에 따라 그룹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은 지난 4월 삼성물산을 비롯한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그룹 내 건설계열사 감사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이들 건설계열사들이 그간 추진해온 해외사업에서 수천억원대 원가손실을 발생했고, 일각에서 제기된 리베이트 수주 등과 비리제보와 관련해 감사를 벌이고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 2분기 연속적자를 기록한 삼성엔지니어링은 수천억대의 손실 중 상당부분이 미국과 중국의 발주처에서 중도설계 변경을 받아주지 않아 발생하게 된 불가항력적 상황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잘나가는 삼성물산, 낯빛은 어두워
삼성물산은 상반기 해외공사 신규 수주액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연간 최고수주액인 110억 달러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해외수주에서는 잘나가고 있지만 의외로 내부 분위기는 침울하다. 해외수주 과정에서 국내 건설사들과의 출혈경쟁 그리고 저가수주 논란과 국부유출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삼성물산은 포스코건설-STX건설 컨소시엄을 제치고 6조4110억원 규모의 호주 로이힐 철광산 인프라 건설공사 수주를 따냈다. 업계에서는 당초 포스코 컨소시엄이 유력시됐다. 모기업이 발주처에 수억원대 지분을 투자했으며, 1년 넘게 대규모 인원을 투입해 현장 실사를 벌이는 등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결과 기회는 뒤늦게 참여한 삼성물산에게 돌아가 버렸다. 포스코건설과 STX건설은 삼성물산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포스코건설 정동화 부회장은 “건설업계가 해외에서 저가수주로 제살을 깎아먹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국가적인 망신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STX건설 이희범 부회장도 “삼성물산이 로이힐 철광산 개발 인프라 건설공사를 덤핑 수준의 낮은 가격에 따냈다”고 힐난했다.
이 외에도 삼성물산은 상반기 크고 작은 악재들로 몸살을 앓았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 크레시티 사기분양 논란에 휩싸였는가하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셋째 딸이 삼성물산에 취업한 것과 관련해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악재다발’ 삼성ENG, 구조조정 단행
삼성엔지니어링의 사정은 삼성물산 보다 훨씬 심각하다.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사망사고까지 발생하면서 건설계열사 중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결국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박기석 사장은 연임한 지 4달 만에 경질됐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달 울산 삼성정밀화학 공장 내 폴리실리콘 공장(SMP) 신축공사장 물탱크 폭발사고와 관련해 사과문까지 냈다.
민주당 한경애 의원은 “스스로 초일류라고 자랑하고 있는 재벌그룹 삼성의 계열사인 삼성엔지니어링의 안전의식은 그야말로 3류”라고 비난했다.
최근에는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코로나바이러스 의심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부 정치권에서 이와 관련, 은폐의혹을 규탄하는 등 산업재해에 대한 삼성엔지니어링의 안전대책이 재차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실적악화에도 시달렸다. 올 2분기 매출 2조7000억원과 영업손실 887억원, 순손실 928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 실적발표에서 2분기 이후 흑자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적자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상무급 이상 임원 110명 중 발전사업부 1명을 비롯해 20여명을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구조조정이 직원들에게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축소
삼성중공업은 아예 건설부문을 축소하는 추세다. 사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삼성중공업이 건설부문을 축소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또 삼성중공업 건설부문에 있는 5개팀이 3~4개 팀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실제 삼성중공업의 건설부문 정규직은 지난 9월 기준 555명인데 이중 50여명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이처럼 삼성이 중공업 건설부문을 축소하고 나선 이유는 부동산 경기침체 속에서 삼성물산·삼성에버랜드 등과 사업영역이 중복돼 실적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중공업 건설부문은 지난 2009년 25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지난해에는 176억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시장점유율 순위도 신통치 않다. 대한건설협회의 시공능력평가액 순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건설부문은 올해 29위로 2003년 11위에 비해 18계단 하락했다.
건설사업 확대하는 에버랜드
건설을 주력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이 주춤한 사이 삼성에버랜드가 건설부문을 확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에버랜드의 건설부문은 직원 수가 2010년 1230명에서 현재 1769명으로, 매출은 9217억원에서 1조3706억원으로 각각 증가했다.
최근 에버랜드는 베트남 옌퐁에 첫 해외법인을 설립해 해외 건설시장에도 공격적으로 나섰다. 기존 그룹 내 건설물량을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 등이 주로 맡아왔던 점을 감안하면 에버랜드의 베트남 진출은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 에버랜드 등 4개 건설계열사가 중첩사업으로 실적부진을 겪고 있는 만큼, 전체적인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합병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의 건설부문을 흡수 합병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삼성물산이 200억원 규모인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 특별관계자로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삼성물산과 에버랜드 건설부문이 합병할 가능성이 더 유력하다고 점친다. 에버랜드를 건설·지주회사와 잔여 사업부(테마파크와 요식업 등)로 분할해 건설·지주회사는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합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에 두고, 잔여 사업부는 삼성물산 나머지 사업과 통합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아래 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