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이석채 전 회장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세 차례 이뤄지고 정치권에서 무궁화위성 불법매각 의혹을 제기하는 등 연일 논란에 휩싸이다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연말 이사회에서 사의를 공론화하고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사퇴할 것이란 설이 유력하게 퍼진 상태다. 두 사람에게는 MB정권에서 각각 민영화된 기업의 수장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줄곧 ‘사퇴압박설’에 시달렸다. 사정당국의 수사, 경제사절단 제외 등 KT와 포스코를 둘러싼 여럿 정황들도 ‘사퇴압박설’이 나돌게 하는 근거가 됐다.
이들에게 다소 가려졌지만 ‘MB맨’으로 지목되는 이는 또 있다. 바로 KT&G 민영진 사장이다. 올초 연임에 성공하면서 임기가 2016년 3월로 늘어났지만 연임 첫 해부터 가시밭길이 만만치 않다. 연초부터 연임과 관련 노조와 각을 세웠고, 국세청 세무조사, 배임혐의에 대한 경찰수사 등 각종 악재가 잇따른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KT&G도 민영화된 기업이라는 점, 민영진 사장은 MB정권에서 수장이 됐다는 점을 미뤄 ‘MB맨 물갈이’라는 해석이 나오게 했다. 특히나 실적부진으로 신음하는 이때 민영진 사장의 배임의혹 수사까지 겹쳐지면서 KT&G를 둘러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석채·정준양 이어 ‘MB맨’ 분류…거취문제 관심
연임이후 세무조사·경찰수사 등 분위기 어수선해
1년6개월 후 알려진 사택제공 “시기가 의아하다?”
취임이후 실적악화 흐름…‘경영능력’ 의구심 나와
민영진 사장과 관련 ‘사퇴 압박설’이 쏟아지는 건 올해 KT&G를 둘러싼 여럿 정황들이 심상찮았던 탓이다. 3월 국세청 세무조사, 6월 경찰수사(부동산사업 비리의혹), 8월 경찰의 압수수색, 최근 경영진의 검찰 송치까지…. KT&G를 향한 사정당국의 압박은 숨 가쁠 정도였다는 평가다. 민영진 사장은 또 고액연봉 및 강남사택 제공논란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 2월 연임이후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 이어진 셈이다.
검찰 송치된 ‘배임혐의’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5일 민영진 사장을 비롯한 KT&G 임직원 5명을 배임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 남대문 레지던스호텔 지구단위변경 인허가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용역비를 특정업체에 과다 지급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회사에 용역비 적정수준인 6억원보다 5배 이상 높은 34억원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은 KT&G 경영진이 김재홍 전 KT&G 복지재단 이사장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 같은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용역회사의 대표가 김재홍 전 이사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여서다. 김재홍 전 이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촌처남으로 민영진 사장의 취임과 연임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줬다는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일단 경찰은 6월부터 진행해온 부동산사업 비리의혹 수사를 검찰에 넘겼다. 불구속이기는 하나 배임혐의가 검찰에 송치됨에 따라 향후 민영진 사장의 경영활동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KT&G 측은 현재 “용역비 지급은 천문학적 기대이익에 비해 규모가 과도하지 않은 정상적 경영 판단이었다”며 배임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의 적극적 해명에도 민영진 사장의 배임의혹에 대한 업계의 부정적 시각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는 민영진 사장 연임전후로 KT&G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 노조가 제기했었던 각종 의혹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노조는 △KGC라이프앤진 광고용역회사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1실장의 친인척 권영재씨가 사장으로 있는 신생 광고업체에 90억원 규모 일감몰아주기 △트리삭티의 무리한 인수 △길림한정유한공사 설립이후 중국정부의 판매 불허로 인한 막대한 손실 등 의혹을 무더기로 제기한 바 있다.
이어 노조는 “민영진 사장이 자신의 친위대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사장연임을 결의했다”며 “사추위 위원 대부분은 민 사장이 영입했거나 직·간접적 관계가 있는 인물로 공정한 심사를 위한 외부인사는 철저히 배제돼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KT&G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세무조사와 8개월간의 경찰조사 결과 이런 혐의들이 근거 없음으로 밝혀졌다”며 “왜곡된 정보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노조에서 의혹들과 관련 검찰고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민영진 사장을 둘러싼 논란도 한층 더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각종 구설도 ‘사퇴설’ 일조
민영진 사장은 고액연봉(4월), 강남사택 제공(7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진 시점이 각각 세무조사, 경찰수사 이후라는 점에서 ‘사퇴압박설’에 무게가 실렸다. 특히 강남사택 제공 건의 경우에는 구입(2012년 2월)한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진 것이었다. 업계 의구심이 짙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해당 논란들을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고액연봉 건은 지난해 민영진 사장의 연봉이 23억3745만원으로 2011년(8억원)보다 3배가량 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민영진 사장은 취임 2년 만에 4억원이 채 안되던 연봉을 8억원으로 늘려 질타를 받은 바 있었다. KT&G 측은 “장기성과급이 포함돼 3배가량 증가했다. 연봉평균은 13억원”이라고 밝혔다.
강남사택 제공 건의 경우 KT&G가 지난해 2월 강남 삼성동의 한 아파트를 14억6000만원에 구입해 민영진 사장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것을 가리킨다. 당시 KT&G 측은 “CEO의 경영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사택제공을 결정했다”며 “민영진 사장의 임기가 만료되면 차기 사장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해명했었다.
연임직후 파도처럼 밀려온 사정당국의 전 방위 수사, 뒤늦은 사실공개(고액연봉 및 사택제공) 등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민영진 사장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것이다. 민영진 사장은 MB정권에서 CEO가 됐다는 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과 친분이 있다는 점에서 ‘MB맨’으로 분류되고 있다. KT&G 측은 이 같은 시각에 민영진 사장이 내부승진자 출신임을 강조하는 중이다.
또 KT&G는 KT, 포스코처럼 공기업이 민영화된 케이스다. 핵심사업인 담배사업 관련법규도 기획재정부에서 관리하고 있어 정부입김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직후 주요 공기업과 금융회사 CEO들이 교체됐고, 임기 종주에 의지를 보였던 KT 이석채 전 회장마저 검찰의 세 차례 압수수색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터라 KT&G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을 ‘사퇴압박설’과 연관짓는 시각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적부진까지
그렇다고 민영진 회장의 경영능력과 관련 우수한 평가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KT&G는 민영진 사장이 취임한 2010년부터 수익이 꾸준히 악화됐다. 2010~2012년 KT&G의 당기순이익은 1조308억원에서 7251억원으로 급감했다.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도 3910억원으로 전년 동기(3967억원)보다 줄어들었다.
살펴보면 자회사들의 실적부진이 눈에 띈다. 올해 6월말 기준 한국인삼공사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3829억원과 506억원으로 전년 동기(4696억원, 754억원)보다 각각 22%, 49%가량 줄었다. 이는 핵심사업인 담배사업 실적이 국내에서는 소비량 감소, 해외에서는 해외 급변동 등 원인으로 부진했던 탓이 크다.
지난 3년간 KT&G가 약 700억원을 쏟아부은 KGC라이프앤진도 주목할 만하다. KT&G는 2010년 11월 출범 때 210억원을 투입한 뒤 90억원(2011년), 214억원(2012년), 220억원(2013년) 규모 유상증자를 차례로 단행했다. 민영진 사장은 앞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KGC라이프앤진의 규모를 키우겠다”며 막대한 투자를 예고했었다.
그럼에도 올해 상반기 KGC라이프앤진 실적은 여전히 마이너스(-) 85억원의 당기순손실이었다. 앞서 2011~2012년에는 KGC라이프앤진 당기순손실이 129억원에서 306억원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이는 판매관리비 때문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2010~2012년 KGC라이프앤진의 판매관리비는 36억원에서 669억원으로 1758% 증가했다.
그밖에 민영진 사장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임기동안 인수하고 설립한 회사들의 성적도 좋지 않았다. 2011년 인수된 소망화장품은 KT&G에 편입된 이후부터 실적흐름이 더 악화됐다. 2011년 11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5210만원으로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마이너스(-) 133억원이었다. 실적악화세가 뚜렷한 것이다. 이에 KT&G가 인수이후 소망화장품 실적개선을 위한 전략을 못 내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KT&G가 2011년 설립한 예본농원(지난해 당기순이익 100만원·올해 6월말 -300만원)의 미미한 실적, 2012년 설립한 KGC예본(-13억원·-8억원), 지난해 편입된 KT&G생명과학(-62억원·-28억원)의 적자까지 더해졌다. 사업다각화를 꾀했지만 오히려 실적악화가 가중시킨 꼴이되면서 민영진 사장의 경영능력과 관련 의구심을 보이는 시각도 많다. 이와 관련 KT&G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자회사는 별도의 조직으로 각각 책임경영 체제로 운영되는데 이 모든 것을 민영진 사장에게 전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민영진 사장의 임기는 오는 2016년 3월까지다. KT 이석채 전 회장은 며칠 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내년 주총 사퇴설’이 유력하게 번졌지만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있다. 이들과 비슷한 처지로 꼽히는 민영진 사장도 연임직후부터 국세청 세무조사, 경찰의 부동산사업 비리의혹 수사 등으로 ‘사퇴압박설’에 휩싸인 상태다. 실적악화로 경영능력에 대한 잡음까지 나오면서 민영진 사장을 둘러싼 제반상황이 유리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영진 사장이 거취문제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