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표결 없이 여야 합의로 가결된 바로 다음날인 19일,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 이어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연이어 교문위와 법사위, 본회의까지 통과한 만큼 이 법안은 오는 8월부터 전격 시행된다. 이렇듯 법안 시행이 정계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와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야 합의 급물살…오는 8월부터 시행
법안 취지는 ‘공감’, 실효성은 ‘글쎄…’
이 날 통과된 법안은 ‘공교육 정상화 촉진·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으로,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과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것을 서로 통합해 수정·보완해 제정됐다. 이는 비정상적으로 사교육이 횡행하면서 공교육이 무너지고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서민들과 중산층의 가계 경제가 악화되는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법안으로,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주요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시 박 대통령은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대선후보 3개 TV토론>에 참여해 “교육은 학습을 통해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도와주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서 “지나친 경쟁과 입시 위주로 변질된 교육을 꿈과 끼를 살려주는 행복 공교육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별법 제정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정부, 선행학습 근절위한‘강력대응’의지
이 날 교문위를 통과한 ‘선행학습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거쳐 발효되면 전국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은 입학전형 출제 시 각급 학교의 입학 단계 이전 교육과정 범위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출제하게 된다.
또한 일부 학교에서 ‘방과 후 학습’으로 실시하고 있는 선행학습 역시 실시할 수 없으며 해당 학년의 교육과정에 대한 심화학습만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제정 법률의 주요 골자로는 △학교에서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 운영 금지 △학교 시험에서 학생들이 배운 학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 금지 △학교별 입학전형 실시 때 입학 단계 이전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는 것 금지 △각종 인증시험, 학교 밖 경시대회 실적 등 반영 금지 △대입고사 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 출제 금지, 매해 선행학습을 유발 영향평가 실시 및 다음 년도 입학전형 반영 △사교육 기관의 선행교육 광고 선전 금지 등이다.

뿐만 아니라 선행학습의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근절을 위해 이번 법안에는 각 급 학교장에게 선행교육을 지도·감독하고 선행학습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의무를 부과하도록 하고, 이같은 규정을 어기는 학교와 교사에게는 △인사 징계 △재정지원 중단 △학생 정원 및 학과 감축 △학생 모집 정지 등의 중징계를 내릴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됐다.
특히 외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 역시 특정 학년 수준을 벗어나는 시험문제를 출제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고교 서열화’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선행학습 여부에 대한 관리를 위해 교육부에 ‘교육과정 정상화 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시·도별로도 관리처를 신설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선행학습 금지법이 최종 통과돼 실행되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학원에 대한 강력한 광고 규제와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영어 몰입 교육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가 지난 1월 예고한 대로 수능시험 영어 문제 난이도를 대폭 낮출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 학습자유권 침범하게 될 수도”
그러나 국회를 비롯한 정계에서 이와 같이 ‘선행학습 금지법’ 시행에 대해 한 목소리로 환영의 뜻을 표시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법안의 주요 목적인 ‘사교육 축소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학원가 전반에 적잖은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관계자는 19일 <시사신문>과의 전화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이 실현되면 실질적인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기 보다는 학생들을 하향 평준화할 수 있는 우려가 존재한다”며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의 학습자유권을 침범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선행학습 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로 △학원의 연쇄폐원 △교육의 하향 평준화 △자사고·특목고에 대한 법 적용 불가 △일반고 출신 학생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 불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영재학교에 대한 특혜 논란 등을 이유로 계속해서 법안 통과를 반대해 왔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대부분의 학원들은 학교교육에 앞서 선행학습을 통한 이해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왔던 만큼 학원가의 반발이 거세지지 않겠느냐”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법안이 통과된 현재까지도 연합회 측의 입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향후 지속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 역시 19일 <시사신문>과의 통화에서 “수능체제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 선행교육만을 금지하면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원이나 과외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며 “사교육 철폐를 목적으로 만들어 진 법안이 오히려 불법 사교육을 조장해 더 큰 사회문제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 과도한 경쟁의식·흐름 꺾일 것”
그러나 사교육 철폐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교사·학부모·학생·시민 등으로 구성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시민단체의 안상진 부소장은 19일 <시사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하게 만드는 공교육의 잘못된 요인들이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법안 통과에 환영의 뜻을 보였다.
안 부소장은 현재 사교육을 조장하는 가장 큰 이유로 학교 시험을 꼽았다. 일례로 고등학교 입학 전 학생들이 치르는 ‘반배치고사’는 시험범위가 중학교 과정이 아닌 고1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중학교에서는 특목고 지원 학생들을 위한 변별력을 위해 일반 시험에 고등학교 시험 문제를 넣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 부소장은 “결국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선행학습으로 내몰리게 됐지만 이 법안의 시행으로 그런 부분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학원가에서 ‘학생들의 학습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번 법안이 규제하는 것은 단순한 ‘선행학습 조장 광고’에 한정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학원의 폐지나 교육이 하향 평준화 될 수 있다는 우려와 연관짓는 것은 ‘오버’라고 생각한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특히 “이 법안이 도입되면 학교 교육과정과 시험 및 상급학교 입시의 정상적 운영이 가능해지고, 그로 인해 사교육기관이 학교 시험과 진도의 선행적 요소를 핑계로 선행교육 상품을 판매하려는 과도한 경쟁의식과 흐름이 크게 꺾일 것”이라면서 “붕괴된 공교육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 모 고교 수학과 홍모(42) 교사는 “과도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학생들의 정상적이고 균형잡힌 심신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 오더라도 이미 학원에서 배우고 온 것이기 때문에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아 어떨 때는 ‘나 홀로 수업’을 진행하는 때도 있다”며 허탈해했다. 홍 교사는 “원래 사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학교 수업에 뒷받침이 되는 의미임에도 요즘은 그 반대를 넘어 학교 수업은 학원 수업에 뒷받침 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