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 신일산업 삼키나?
‘개인투자자’, 신일산업 삼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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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인수합병’ 위협 직면

▲ 신일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협에 직면했다. 신일산업은 과거에 개정했던 정관들과 법적인 조치등을 통해 경영권을 지켜낸다는 방침이다. ⓒpixabay

선풍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신일산업이 최근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 놓여 업계에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어느 개인투자자들이 삽시간에 최대주주로 올라설 정도로 지분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이에 현 경영진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피하기 위해 전격적인 움직임을 취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향후 추이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5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견기업 신일산업이 이번에 맞닥뜨린 위기 양상은 그동안 흔히 볼 수 있던 여타 적대적 M&A 사례와 결정적 차이가 있다. 업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최대주주 위치에 오르는 바람에 신일산업이 경영권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개미의 반란’…하루아침에 신일 최대주주 돼
신일산업, 적대적 인수합병 막아낼 방패 ‘정관’
지분 매입 왜?…밝혀진 것 없이 소문만 ‘무성’


하루아침에 최대주주 된 개인투자자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적대적 인수합병이라고 하면 대개 ‘기업 대 기업’의 격돌이 다반사”라며 “그런데 이렇게 무명에 가까운 개인투자자가 대거 등장해 견실한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무엇보다 이 투자자 뒤에 일종의 ‘세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신일산업을 비롯해 업계 전반에 뜻하지 않은 파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일약 떠오른 개인투자자의 정체는 바로 충청남도 천안시에 거주하는 황귀남 씨다. 황 씨는 천안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인노무사로 ‘푸른노무법인’에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황귀남 씨와 신일산업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었다. 업계에 따르면 황 씨가 기업과 맺은 인연은 2001년부터 2003년 3월까지 천안시 소재 코스닥 상장사인 ‘에스티에스반도체통신’에서 비상근 감사로 재직한 것이 전부다.

이렇게 기업 경영과는 거의 무관해 보이던 황귀남 씨가 업계에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된 시기는 지난 2월 17일. 이날 황 씨는 경영에 참여하려는 목적으로 신일산업 지분 5.11%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그 다음날인 2월 18일 황 씨는 특수관계인인 윤대중·조병돈 씨와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주주간 계약을 맺은 다음 신일산업 지분 11.27%(573만주)를 확보했다. 이 지분 공시 이후 적대적 M&A 가능성이 불거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황귀남 씨 등은 하루아침에 신일산업 최대주주 위치에 올라섰다. 불과 이틀 만에 김영 신일산업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율 9.90%(503만주)를 단숨에 넘어선 것이다.

황 씨 등은 공시를 통해 “앞으로 신일산업의 경영권 참여는 물론 지배구조 개선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밝힌 바 있어 신일산업 측을 비롯한 업계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 무명에 가까운 개인투자자들이 하루아침에 신일 산업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기업 대 기업간에 진행되던 적대적 인수합병이 개미와 기업 간에 벌어진 것이다. ⓒpixabay

업계 입장에서는 윤대중·조병돈 씨의 정체도 황 씨만큼은 아니지만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윤대중 씨의 경우 천안시에 위치한 전자부품 도매업체 ‘다우에프에이’의 오너 겸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다우에프에이는 2001년 3월에 설립된 회사로 각종 전자부품을 도매로 파는 업체다.

지분 매입한 진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아
 

조병돈 씨의 경우는 반도체 검사 장비 업체 ‘트루텍’에서 상무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0년 8월에 설립된 트루텍 또한 천안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강종구 대표로 지분율이 99%로 알려져 있다.

신일산업 측과 재계에서는 이들 개인투자자 세 사람 모두 천안시에 연고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신일산업 측은 “이들 외에도 천안 지역에 기반을 둔 이 모 씨라는 특정 인물이 이번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세력을 규합한 것으로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이렇게 상황이 묘하게도 천안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주된 이유로는 최근 신일산업이 국내 생산을 목적으로 천안에 새로 공장을 짓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빠르면 오는 4월 완공될 예정인 신일산업 천안공장은 180억여 원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산업 측은 향후 이 공장을 선풍기·원액기·밥솥 등 자사 주요 제품에 대한 내수 및 수출의 전초지로 삼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평론가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권가를 중심으로 ‘이들 개인투자자가 하나대투증권천안지점을 통해 신일산업의 지분을 매입했다’는 소문도 퍼진 바 있다”며 “이와 더불어 신일산업 회사 내부에서 정보가 빠져나간 흔적이 발견됐다는 등 뒤숭숭한 이야기가 계속 들려온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이들이 우회상장을 위한 일종의 통로로 신일산업을 활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적대적 인수합병 이슈를 증권가에 일으켜 차익을 실현하려는 의도인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여러 언론매체가 황 씨 등 개인투자자들에게 인터뷰 등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취재를 거부하거나 아예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이번 주식 매입은 일종의 ‘해프닝’적인 성격이 강해 보인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신일산업 측 역시 “여러 정황으로 보아 불순한 기업사냥꾼 세력일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천안에서 공인노무사로 활동하는 황 씨는 생활가전 사업을 주로 하는 신일산업과 관련성이 희박하며 현재까지 공식 입장 표명을 보류하고 있는 등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면이 많다”고 설명했다.

신일산업은 “황 씨 등 개인투자자 측으로부터 신규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한 통보를 서면으로 받은 뒤, 본사는 이들에게 경영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상세한 프로필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회신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신일산업 측은 “현재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했으며 이를 위해 관련 자료를 넘긴 상황”이라고 밝혀 회사 전체 차원에서 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렇게 신일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여 년 전인 2004년 5월에도 신일산업은 이와 유사한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다. 당시 금호전기가 신일산업의 경영권 참여를 선언하며 신일산업의 지분을 15%까지 증가시켰다. 신일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빼앗길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일산업의 방어도 만만치 않았다. 신일산업은 이른바 ‘특별다수결’과 ‘황금낙하산’ 조항을 정관에 덧붙이며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금호전기는 마침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한 지 6개월 만에 보유 지분을 처분하며 경영권 분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법적 조치도 적극 검토 중”

이 때문에 신일산업 측은 이번에 황 씨 등 개인투자자 세 사람이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과거 사례에 비추어 비교적 무난하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비교적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일산업 정관에 포함되어 있는 ‘특별다수결 조항(17조2항)’에 따르면 “2인 이상 이사 해임은 출석한 주주의 90%, 발행주식 총수의 70%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결의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바로 이 조항 내용이 신일산업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든든한 무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현재 신일산업의 발행주식 총수는 5,092만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며 “황 씨 등은 이번에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서기는 했지만 최소한 3,565만 주 이상을 확보해야 기존 이사를 해임하고 본인들에게 우호적인 이사를 새로 선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황금낙하산 조항’도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결정적인 걸림돌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황금낙하산 조항이란 인수 대상 기업에 재직 중인 경영진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려면 반드시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신일산업 정관 22조2항에 따르면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이사가 임기 중 실직할 경우 통상적인 퇴직금 외에도 퇴직 보상액으로 대표이사에게는 30억 원, 일반이사에게는 20억 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정관 내용 때문에 황 씨 등 개인투자자 세 사람이 설령 적대적 인수합병에 성공을 거두더라도 김영 회장 등 신일산업 현 이사진 네 명에게 총 100억 원이나 되는 퇴직 보상금을 일시에 지급해야 한다.

▲ 신일산업 송권영 대표는 이번 적대적 인수합병 움직임과 관련, “여러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지분 싸움에서 밀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일산업

이렇게 개인투자자들이 일종의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신일산업 측 또한 적극적으로 경영권 방어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2월 23일 송권영 대표이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신일산업의 경영권 방어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이사는 “황귀남 씨 등의 지분 매입이 회사 발전을 위해 진행한 지분 취득이 아니라 다분히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향후 법적 조치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송권영 대표이사는 “이미 현 경영진 측은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작업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지분을 추가로 취득할 계획도 있다”며 “여러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지분 싸움에서 밀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와 아울러 신일산업 생산 제품을 판매하는 대리점주들도 적극 돕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신일산업의 든든한 우군 노릇을 할 전망이다. 대리점협의회 측은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대리점들도 무척 반발이 크다”며 “우리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과 함께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지분 확보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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