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었던 지난 2일,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은 돌발적이고 충격적인 발표가 나왔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사전에 알지 못했던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깜짝 통합을 선언한 것. 당초 이날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의 공동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어, 언론과 양당 관계자들 모두는 민주당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선언과 새누리당에 대한 공동대응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었다. 예상됐던 대로 관련 메시지는 나왔다. 하지만 추가로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이 돌발 통합을 선언, 모든 이슈는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김한길과 안철수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야권의 재편을 단독으로 결정해 선언해버린 것이다.

지난 2일 오전,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공동위원장은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측은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새정치를 위한 신당창당으로 통합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7 정권교체를 실현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 간 통합 논의는 지난달 28일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절대다수가 기초선거 무공천 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급물살을 탄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날 밤 김한길 대표가 안철수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무공천 원칙을 통보하며 통합을 제의했고, 3월 1일 오전 8시 30분 두 사람은 단독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두 사람은 이날 밤 8시 30분부터 다시 회동했고, 이튿날 새벽까지 논의를 펼친 끝에 통합에 전격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또, 이 같은 통합을 선언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께 약속한대로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엄중한 상황 앞에서 새정치를 위한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새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자산을 만들어 나가는데서 출발한다. 새정치는 약속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두 사람은 “거짓의 정치를 심판하고 약속의 정치를 정초하기 위해 양측의 힘을 합쳐, 신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새정연 흡수통합 우려…안철수에 실망 속출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이 야권의 최대 숙원이었던 ‘통합’을 합의했지만, 양당의 분위기는 결코 밝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사전 논의나 추인 과정 전혀 없이 두 사람 단독으로 통합을 합의했다는 이유에서다. 대의명분이 김한길-안철수 두 사람에게 있는 이유에서 드러내놓고 반발이 일진 않았지만, ‘독단적 결정’에 대한 뒷말들은 무성했다.
특히, 이 같은 불만은 새정치연합 측에서 더욱 강했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여야 양당 기득권 세력과 차별화를 선언하며 독자적으로 ‘새정치’를 실현하겠다고 호언장담해오던 안철수 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기초선거 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긴 했지만, 새정치연합 안팎에서는 안 위원장이 너무 순진하다든가 처음부터 통합을 겨냥한 정치 행보 아니었냐는 등의 갖가지 비판적 목소리들이 나왔다.
실제로, 금태섭 대변인은 “내부 반대가 상당했다”며 “민주당의 개혁의지를 믿을 수 없고, 과연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고 새정치연합 내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정치연합의 최대 자산이라 할 수 있었던 새누리당 출신의 김성식 공동위원장이 통합신당 합류를 거부하고 떠나버렸다. 김성식 위원장은 김한길-안철수 두 사람의 통합 기자회견이 있던 2일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새정치의 뜻을 잃지 않는다면 통합도 나름 길이 될 수 있겠다. 잘 되길 기원한다”며 “어느 길이 절대 선인지 가늠할 능력조차 제겐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다만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어 우리 정치 구조 자체를 바꿔보려는 저의 꿈이 간절했기에, 그 꿈을 나누는 과정에서 쌓은 업보는 제가 안고가야하기에, 저는 고개부터 숙이고 오랜 기간 홀로 근신하고자 한다”고 덧붙여 밝혔다. 김 위원장은 아울러, “고민은 없다. 꿈을 가슴에 묻는 아픔이 있을 뿐”이라며 “그 또한 저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씁쓸한 감정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당장 합류를 거부한 것은 아니지만, 윤여준 의장의 언행도 주목받고 있다. 윤 의장은 지난 3일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앞으로 신당 창당 과정과 민주당의 새정치 의지가 드러난 것을 보고 향후 거취 문제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온전히 통합신당에 합류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윤 의장은 “김한길 대표가 말하는 새정치가 뭔지 모르겠다. 민주당이 새정치를 한다는데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실망했다. 새정치를 한다면서 민주당의 신당창당 준비단장(설훈 의원)을 도덕적 흠이 있는 인물로 내세우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안철수 위원장에 대해서도 윤 의장은 “김한길 대표와의 신당 창당 합의를 뒤늦게 알려준 것에 대해 서운하기 보다는 무슨 일을 이렇게 하나.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이 성급하게 결정한 만큼 상당한 후폭풍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대가가 뒤따를 것이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 의장은 덧붙여 “일부에선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갔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 표현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정당에 들어가는 것을 표현하는 게 맞다”며 “사슴이 호랑이굴에 들어간 것”이라고 안철수 세력이 결국 민주당 측에 흡수될 것으로 내다봤다.
윤 의장은 아울러, “새로 만든 당에 제 역할이 있을지 모르겠다. 당 지도체제 등 조직 형태가 정해지는 것을 봐서 안 의원과 (거취 문제를) 상의하겠다”면서 “안 의원의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내 소임도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거대 야당과 새정치를 한다는데…”라고 안 의원과의 결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시사했다.

◆안철수로 친노 오그라뜨리기?
민주당 측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친노세력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한길-안철수 非친노 인사 중심으로 제3지대 통합신당이 추진되는 만큼 친노 배제 플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4일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합당은 민주당 속에 안철수세력을 섞어 민주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세력을 오그라뜨리려는 물타기”라며 “이것이 합당의 최종 목표다. 이 목표가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친노세력들은 이번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음이 입증되는 그때를 기다렸다가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에 대한 대대적 반격에 나서 당권 재장악을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5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심재철 최고위원도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를 미끼로 한 자기 몫 챙기기와 김한길 대표의 안 의원을 끌어들여 친노를 제어하려는 꼼수정치가 앞으로 어떤 갈등을 빚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고 윤 수석과 마찬가지로 이번 통합 선언이 친노 배제 플랜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장 친노측에서는 별다른 반발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통합의 진짜 속내가 어떻든 야권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대전제 앞에서 섣부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친노 핵심 문재인 의원은 통합 합의 소식이 전해진 직후 “양측이 통합에 합의하고 선언한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한길 대표는 1일 저녁 문재인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무공천 결정 문제를 상의하고, 2일 오전 다시 전화를 걸어 안철수 의원과의 신당창당 합의 사실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이 이 같은 원론적 환영의 입장을 밝혔지만, 통합신당 창당 방식이나 인적 구성 문제 등이 논의되면서 친노세력의 불만이 표출될 수 있다는 관측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지방선거 공천이 문제다. 제3신당 공천이 친노 학살 수준으로 진행된다면, 그땐 ‘원론적 환영’의 입장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통합신당은 김성식 전 의원처럼 안철수 위원장에게 실망을 느낀 새정치연합 측 인사들이 빠진 채 구성되고, 창당 이후에도 지방선거 공천 과정 등을 거치며 친노세력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관측대로라면, 통합신당의 최종적 그림은 원래 민주당에 친노가 빠지고 대신 안철수 의원이 들어가는 셈이 된다.
민주당에서 새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안철수 의원의 승부수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통합신당은 결국 친노 빠진 도로 민주당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철수의 민주당화냐, 민주당의 안철수화냐에 정치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