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선 실세’로 거론되던 정윤회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3인방’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일보’는 28일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이라는 기사를 통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청와대 내부문건을 단독 입수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감찰 보고 문건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올 1월6일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동향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당시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서 떠돌던 ‘김 실장 중병설’, ‘김 실장 교체설’과 같은 루머의 진앙이 어디인지를 감찰한 결과를 담고 있는데 조사 결과, 정씨는 이재만(48) 총무비서관과 정호성(45)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 등의 ‘3인방’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과 매달 두 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났다.
이들은 모임에서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는 또 이들을 중국 후한 말 환관에 빗대 ‘십상시’로 지칭하고 실명으로 언급했다.
또한 정씨는 지난해 이들과의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의 사퇴 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면서 참석자들에게 정보지 관계자들을 만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포할 것을 지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씨는 당시 모임에서 “(김 실장은 7인회 멤버 중 한 명인) 최병렬이 VIP(박근혜 대통령)께 추천해 비서실장이 됐다. (하지만) 7인회 원로인 김용환도 최근 김기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7인회’는 오랜 기간 박 대통령 주변에서 자문역할을 해온 원로그룹이다.
7인회는 김기춘 실장을 비롯해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용갑 전 국회의원,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이 구성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감찰 문건에는 정씨와 이들 10인은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나 VIP의 국정 운영과 BH(청와대 지칭)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적혀 있었다.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모임 장소와 시간에 대한 연락과 준비는 이 모임의 막내인 K 청와대 행정관이 맡았고 날자가 정해지면 강원도 홍천 인근에 머물던 정씨가 모임 날짜에 맞춰 상경했다고 되어 있다.
이 모임에서 정윤회씨는 정부 고위관료 인사와 청와대 내부 인력 조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으며, 안 비서관 등을 통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문건은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정씨가 지난해 말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검찰 다잡기’라는 표현에 대해 지난해 연말 상황에 비춰봤을 때 의미심장한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이 신문은 당시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12월 취임한 뒤 올해 1월까지 인사를 단행하며 ‘강성 검사’로 분류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계열 검사들을 한꺼번에 지방으로 좌천인사하던 때라면서 정씨가 말했던 검찰 다잡기라는 표현이 ‘검찰 내 자기 사람 심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면 시점상 ‘물갈이’ 인사 때와 맞아떨어지는 셈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당초 공직기강비서관실이 ‘3인방’에 주목했던 것은 내부 정보 유출 의혹 때문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내부 정보가 외부로 새고 있다는 첩보가 있어 이를 규명하려는 차원에서 자체 감찰을 했다는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정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민간인 신분인 정씨를 감찰하는 배경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감찰 보고서는 경찰 출신 A경정이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지시로 작성했고, 김기춘 실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감찰 보고서가 제출된 지 한 달 만에 A경정은 원대복귀했고, 조 비서관은 그로부터 두달 뒤 사표를 제출했다.
‘세계일보’는 “현재 공식 직함이 없는 정씨가 자신과 가까운 청와대·정치권 내부 인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세간의 ‘그림자 실세’ ‘숨은 실세’ 의혹이 사실임을 드러낸 것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청와대 비서관들이 내부 동향을 외부 인사에 전달하는 행위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2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비선 의혹이라는 점에서 정권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혹이 제기된 이들이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에 일조했던 공신 그룹으로 현재 청와대에서도 역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청와대는 28일 언론 보도와 관련 “사실이 아니다”고 전면 부인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세계일보가 공개한 보고서에 대해선 사실을 인정했지만 감찰 보고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보도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시중에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정보지)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고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 대변인은 또 “(감찰보고서가 아닌) 시중의 풍설이나 동향을 종합해 보고한 것으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보고된 후 확인 작업을 거쳤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당사자인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을 포함한 인사들은 이를 부인했다고도 전했다.
민 대변인은 “(기사에 나온 당사자들이)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했고 그 장소에 대해서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는 이날 중으로 세계일보와 함께 문건의 유출이 의심되는 전직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청와대는 오늘안에 (해당 언론사에 대한)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