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한 보육교사가 마치 권투 선수가 회심의 훅을 날리듯 네살바기의 좌측 얼굴을 강타하는 장면이 공개돼 어린이를 상대로 한 어른의 폭력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이번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한국제 충격파는 이미 유튜브에 공개돼 보육교사의 폭행 동영상과 함께 한국을 넘어 외국으로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이 뉴스를 접한 누리꾼들은 가해한 보육교사에게 엄벌을 내려 징역 20년형에 처해야 한다거나 그녀는 악마라고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관할 경찰은 “어린이집을 폐쇄한다는 각오로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밝혔고, 어떤 정치인은 “세월호 이후 가장 충격적”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특단의 조치니 전수조사니 하는 소리가 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대응하는 면면을 보면 세월호 참사 판박이와 비슷해 저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드는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문제의 보육교사가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자신의 오른손에 고스란히 담아서 그 작은 어린이를 강하게 타격한 이유가 그 피해 아동이 선생에게 심한 욕을 했다거나 또는 해서는 안 되는 못된 장난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먹다가 남긴 김치를 뱉어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설령 교사가 보기에 아이의 음식 내뱉는 행위가 교육적으로 아주 몹쓸 짓으로 생각됐다고 할지라도 저런 무도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고작 남긴 김치를 뱉어냈기 때문이었다는 보도를 접한 누리꾼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보육교사는 피해 아동의 그런 행동을 보고 선생인 자신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느꼈을까? 그래서 분노가 순간 화염처럼 일어 아이가 공중에 떠서 나가동그라질 정도의 힘으로 가격했던 것일까?
백번 양보해서 피해 아동의 이런 행동이 교육적으로 상당히 나쁜 행위라고 인정하자. 따라서 보육교사의 행동은 일정 정도의 정당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폭행 사건을 ‘불미스럽다’ 정도로만 인식한 어린이집의 원장도 이 폭행이 교육적 차원에서 행해진 일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 흔히 간과하기 쉬운 일상화한 착각 내지 망상(妄想)이 존재한다!
교사가 아동의 잘못된 버릇이나 행동을 고치려는 의도에는 이 교정 행위가 그 아이의 삶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의식이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교사로서 아이의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었다고 하는 성취의 문제는 교육적으로 우선 고려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이 보육교사는 피해 아동의 잘못된 행동을 고쳐주고 말겠다는 목적의식이 너무 강했던 모양인지 그만 그 아이에게 평생 남을 트라우마를 각인시키고 말았다.
교육적 개선을 목적으로 한 행위가 교육의 목적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 보육교사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좋게 바꾸려고 하는 그 의도 자체가 그 아동의 삶을 고려해 볼 때 비교육적으로 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그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누구보다도 그 아이에게 나쁜 행위다. 그것은 선생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당연히 교육 받는 아동을 위해서 나쁜 버릇이 있다면 바로 잡아줘야 한다. 교사를 위해서 그 아동이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망상이다.
그런데 그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동영상을 보면 피해 아동 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원생들도 그 교사의 ‘심기’를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 얻어맞아 충격을 받은 아동은 경련이 이는 듯한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김치를 줍고 다른 원생들은 한쪽에 몰려 무릎을 꿇고 겁에 질려 있다. 이것이 교육 현장에서 나올 법한 장면인가?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가장한 ‘길들이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어린이 교육과 어린이 길들이기를 혼동해 왔던 것은 아닌가?
앞으로 경찰 수사가 더 진행돼 봐야 알겠지만 이 폭행교사는 폭력과 위협을 감추듯 드러내며 원생들에게 외면적인 복종을 요구해왔을 것이다. 그 수단이 설령 ‘폭력’일지라도 앞에서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면 교육적 목적이 실현된 착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믿었을 수도 있고, 자신이 능력 있는 교사라도 된 양 자랑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아동을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문제의 교사를 가르친 그 많은 교사들한테는 아무 잘못이나 책임이 없을까? 폭행교사를 사법 처벌하고 어린이집을 폐쇄하면 해결되나? 진지하게 고민하며 이 사건을 모든 깊이와 넓이에서 성찰해야 할 어른들이 이런 식으로 이 사건을 요식적으로 처리하고 다시 망각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면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기쁨이 아닌 신경질적이며 기계적인 반응만 보게 될 것이다.
일찍이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 찬미’라는 글에서 “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 얼굴에다 슬픈 빚을 지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기쁨을 상해 주어서는 못쓴다. …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참교육은 아이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지만 길들이기는 아이들 머리속에 신체에 이식하는 칩처럼 쾌락 기제를 심어놓는다. 아이들은 교사가 제공하는 변덕스런 칭찬 듣기 등과 같은 각종 쾌락의 주파수에 몸과 마음을 맞춰 가면서 타고난 자발성과 자율성을 잃어가며 겁먹은 병아리들처럼 어른들 눈치나 보는 반(半)노예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따라서 우선 먼저 바른 교육을 받아야 할 이들이 있다면 선생이라고 하는 자들이며 어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