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마트들이 3년째 내리막 성장을 거듭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은 너나 할 것 없이 PB(Private Brand‧자체브랜드)상품을 내놓으며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만 살 수 있는 상품’이라는 인식과 함께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PB 상품은 도입 초기에 유통가에서 ‘新블루오션’으로 떠오르며 각광을 받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황에는 소비자들이 PB제품을 찾는 빈도가 더 높아진다”면서 “대형마트의 활로는 여기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대형마트들의 PB상품 매출은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3년도 대형마트 3사의 PB상품 매출액은 10조원에 달했다. 2006년 불과 1조7000억원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5배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PB상품 판매가 증가했으니, 제품을 납품하는 제조사의 자금 사정도 나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조사들의 입장은 썩 유쾌하지 않다.

◆ 하청업체, 대형마트 불공정거래에 속앓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이 PB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납품 하청 제조업체들을 쥐어짜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우유 등을 납품하는 일부 유제품 취급 제조업체들의 경우 대형마트가 미처 판매하지 못한 우유를 대량으로 반품하는 바람에 적자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하청업체들은 향후 불이익이 우려돼 불만을 그저 속으로만 삭혀야 한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312곳을 대상으로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불공정 거래를 당한 중소기업의 55.9%는 ‘특별한 대응 방법 없이 감내한다’고 답변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하청업체가 당한 불공정 거래유형은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50%)와 ‘추가 비용 부담 요구’(50%)가 가장 많았다. 이외에도 ‘납품이 끝난 뒤 훼손되거나 분실된 상품에 대한 반품 조치’가 38.2%, ‘판촉 사원에게 다른 업무를 수행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35.3%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영세 하청업체들의 경우 대형마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신제품 코너 입점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요구를 딱 잘라 외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청업체들은 납품단가에 대해 롯데마트(72%),이마트(64.9%), 홈플러스(52.9%)순으로 적정하다고 꼽았다. 상대적으로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업체들의 불만이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포커스>가 입수한 중소기업중앙회의 ‘대형마트 거래 중소기업 애로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J중소기업은 “(특정 대형마트가) 다른 대형마트와의 PB참여시 거래단절 등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면서 “중소기업과 분쟁이 발생하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PB상품의 판매가를 인상해 매출을 급감시키는데 일종의 보복조치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PB 상품은 대형마트의 상품이지만 일정 물량에 대한 판매 개런티가 없어 납품 업체는 제품재고 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PB상품 포장 등 부자재에 부담을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D사의 경우 “PB상품 제조를 위한 원료를 대형마트 관련 그룹의 계열회사를 통해 구입하도록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T사는 “대형마트는 판매품목 중 매출이 높은 제품들을 PB상품으로 전환하면서 중소제조사의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제조사는 납품단가 인하에 따른 손실을 떠안든가 아니면 이전보다 저질의 제품을 납품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홈플러스는 벌레, 이마트는 곰팡이 발견 ‘수두룩’
하청업체들이 고혈을 짜내면서까지 만들어 유통시킨 PB상품이지만, 소비자들이 PB상품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하청업체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제품의 질이 떨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현재 PB상품은 NB(National Brand·제조업체브랜드)상품 보다 평균 20%, 많게는 50%까지도 저렴한 수준이다. PB상품이 이렇게까지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유통과정의 마진을 줄이는 데서 비롯된다. NB상품을 판매하는 제조사의 경우 마트에 입점수수료를 내야할 뿐 아니라 마케팅비용, 물류비 등 모든 비용을 포함해 소비자 가격을 책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같은 NB상품 제조사들의 사정도 고려할 만큼 녹록지 않다. 지난해 12월 닐슨코리아가 전세계 60개국 30,000명 이상의 온라인 패널들을 대상으로 전세계 PB 제품의 질과 가치, 구매 의향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세계 소비자의 68%가 최저가 제품 구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7% 의 소비자가 PB제품은 가격 대비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62%는 PB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자기 스스로를 ‘똑똑한 소비자’로 여기게끔 해준다고 응답해, PB 제품 구매에 있어서 ‘가격 경쟁력’ 및 ‘가격 대비 가치’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국소비자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9%의 응답자가 PB제품이 제조사 브랜드를 대체할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대답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대부분의 PB제품이 제조사 브랜드 제품만큼 질이 좋다는 데에는 29%의 응답자만이 동의했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NB상품대신 PB상품을 선택하지만 그 품질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공통된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여러해 동안 PB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도 한몫했다.
지난 2013년 식약처에 접수된 대형마트 PB상품 이물 현황에 따르면 PB상품을 만드는 대형마트 중 홈플러스(81건)에서 이물질이 가장 많이 발견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물 내용은 대부분 벌레였다. 특히 홈플러스 PB상품인 라면에서 손톱과 뼛조각이, 카스타드4500에서는 인공치아가 발견된 것은 소비자들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남았다.
이마트 역시 PB상품의 품질 관리가 부실했던 것은 마찬가지다. 이마트의 경우 곰팡이 과자가 대거 발견됐다. 이마트 PB상품인 엄마의 정성을 담은 토마토, 스파게티소스 등 다수의 제품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 롯데마트도 와이즐렉 고춧가루, 현미녹차, 스위트콘 등에서 벌레와 금속, 탄화물 등의 이물질이 발견돼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국내 유통사들이 더욱 성장해 나가기 위해 이제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물가 시대에 PB시장을 답이라고 생각했다면, 대형마트들은 중소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제품의 질을 이끌어 내야 한다. 박리다매도 좋지만 물품의 질마저 그 수준이라면 떠나가는 소비자들을 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