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구 행장에 이어 우리은행 사외이사에 또 서금회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금융계를 뜨겁게 달군 서금회 논란이 채 식기 전에 또다시 뜨거워질 모양새다.
이 인물은 이광구 행장에 이어 서금회 출신 우리은행 사외이사 내정된 정한기 호서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이 2007년 만든 모임으로 지난 2011년까지만 해도 참석자가 20~30명 수준이었지만 박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13년 300여명까지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에 힘입어 정권 중반기 세 불리기를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서금회 주요 멤버는 1970년대 후반 학번으로 은행, 증권, 보험, 카드, 자산운용, 금융유관기관 등에 몸담고 있는 현직 팀장급 이상 멤버로 구성됐으며, 비금융인 동문까지 포함된 ‘서강 바른 금융인포럼’과 함께 서강대 동문 모임의 쌍두마차다.
이처럼 사조직에서 가까운 사이로 지내던 인물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상호견제가 필요한 위치에 있으면 일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사외이사에 서금회 출신 인사가 내정됐다. 이광구 행장에 이어 서금회 출신 우리은행 사외이사 내정자는 정한기 호서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다.
유진자산운용 사장, NH투자증권 상무 등을 지낸 정 교수는 유진자산운용 재직 시절인 2011년 서금회 송년회와 신년회에 모여 고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 교수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신청을 한 바 있으며, 대선 때는 선거 캠프에도 참가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서금회 출신 꼬리표의 시작

금융권 안팎으로 세력을 확장해 최근 우리은행 차기 행장 과정에서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애초 우리은행 차기 행장으로 연임이 유력시됐던 이순우 행장이 우리은행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 회의를 하루를 앞두고 지난해 12월2일 이 행장은 돌연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금융권과 정치에선 서금회 ‘윗선’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부행장이 아닌 다른 후보가 차기 행장 후보로 발탁됐다면 (대주주인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주주총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윗선의 의지가 그렇다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낙하산 인사를 밀어주는 것 외엔 (행추위원들이)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고치겠다며 모범규준까지 만들어 발표했지만 정작 당국의 보이지 않는 인사 개입은 시정하지 않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이중적 행태부터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 행장은 지난해 12월1일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민영화를 위한 발자취를 돌아볼 때 이제 저의 맡은 바 소임은 다했다”며 “회장 취임 시 말씀드렸던 대로 이제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고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지난 2011년 3월 우리은행 수장을 맡은 이 행장은 지난해 6월 지주사 회장 자리에 올라 금융당국과 호흡하며 민영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끈질기게 설득해 우리은행을 존속법인으로 남기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행추위가 꾸려지기 전까지 차기 우리은행을 이끌 적임자로 이 행장이 꼽혔다.
그러나 서금회인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의 사전 내정설이 확산돼 흐름이 급변했다. 일각에선 서금회 라인이 내정됐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것 자체가 현 행장의 연임 포기를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광구 행장, “서금회 식사모임일 뿐”
이후 우리은행행에 오른 이광구 행장은 우리은행장 취임식에서 서금회는 단순한 식사모임이라고 우려를 일축했다.
서금회 인사들이 금융사 최고경영자 등에 속속 선임되는데 대통령과 동문 관계가 작용하지 않았겠냐라는 주의의 의혹에 대해 이 행장은 이같이 답했다.
이 행장은 “서금회는 단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친목회로 그저 일년에 한번 식사나 나누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광구 행장은 이순우 전 행장과의 불화설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이광구 행장은 “이번 인사에서도 이 전 행장과 모든 문제를 협의했고 이순우 행장과 안 좋은 관계라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고 했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에서는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까다로운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좁은 인사풀

이러한 가운데 금융권 인사풀 제도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인물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개정했다.
이사회가 특정한 공통의 배경 내지 특정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도록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의 원칙’을 신설했다. 사외이사의 ‘다양성과 전문성’이 확보되도록 ‘핵심 자격요건’을 제시하고, 이를 전제로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 등 위원회를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한다.
특히, 보상위원회, 위험관리위원회는 ‘금융, 재무 등 종사경험자’ 1인 이상을 중복되지 않게 포함하도록 하여 전문성 제고한다.
사외이사 활동에 대한 매년 평가(2년마다 외부평가 권고), 자기추천 금지 등을 통해 “사외이사의 자기권력화”를 차단한다. 특히, 시장에의 영향이 큰 은행·은행지주회사의 경우 사외이사의 임기를 단축(2년→ 1년)하는 한편, 겸직도 제한하여 충실의무 강화한다.
촘촘한 ‘CEO 승계계획’을 마련해 CEO 리스크를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CEO승계 및 후보군 관리업무를 ‘이사회의 상시업무’로 명확화한다. ‘누가, 언제, 어떤 절차·방식으로 CEO를 선임할지’ 구체적인 CEO 승계계획(비상승계계획 포함)을 마련하고, 주기적(연 1회 이상) 적정성을 점검한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함으로써 CEO 후보군관리 등 CEO승계 업무를 상시화하고, CEO추천·선임 절차가 조속히 완료되도록 유도한다.
‘일반 직원’까지 성과주의가 정착되도록 ‘보상체계 합리화’한다.
일반 직원에 대해서도 성과보상이 강화될 수 있도록 임금항목 단순화 등 임금체계의 합리적 관리에 노력한다.
연차보고서에 보상체계 뿐만 아니라 임직원 보수총액도 공시토록 하고, 은행의 경우 은행 혁신성평가(올해 2월)와 비교 가능하게 마련한다.
‘지배구조 연차보고서’를 도입해 주주와 시장의 평가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연차보고서에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정책 및 운용결과 전반을 요약식 외에 ‘서술식’으로 기술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정책, 이사회·이사회내 위원회 운영, 사외이사 후보추천, 사외이사 활동, CEO승계, 감사위원회, 주주총회 등이 서술식 기술이다.
연차보고서를 주주총회 전(30일)에 조기 공시토록 해, 주주들이 회사의 지배구조 전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알권리 보장한다.
118개 금융회사 적용/‘원칙준수·예외설명’을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자산규모 2조 원 이상 금융회사에는 모범규준을 원칙 적용하여 업권간 규제차익을 해소한다. (551개 중 118개사 해당) 자산운용사는 자산규모가 2조원 미만이어도 운용자산 20조 원이상이면 포함, 산은·기은·수은 등 특수은행은 근거법 우선 적용한다.
다만, 모범규준을 이행하지 못 하는 회사는 연차보고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구체적 사유를 소명토록 한다.
◆모범규준 한계 있어, 시간이 걸릴 문제
이렇듯 모범규준이 꼼꼼하고 엄격하게 짜여진 탓에 모두 만족시키는 인사는 많지 않아 인사풀은 빈약하게 된다. 사람이 얼마 없으니 자연스럽게 출신 대학도 겹칠 수 있다는 것.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인사 인사풀의 까다로운 규정으로 사람찾기도 힘든데 사외이사 업무에 충분한 시간할애가 가능한자까지 규정하고 있어 학계인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모범규준 등은 한계가 있어 사외이사에 대해 해당 금융사가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실장은 <시사포커스>와 통화에서 “한국은 금융사에 대해 정부의 입김이 강해서 마음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라며, “금융당국에서 모범규준을 까다롭게 규정하는 것보다는 금융사가 알아서 결정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실장은 “결국 문화의 문제라고 본다”라며, “사외이사 제도를 비롯해 주주자본주의가 뿌리내린지 얼마 안 된 한국은 제도는 잘돼 있지만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 시사포커스 / 박효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