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최근 해외 현장 임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 포스코건설의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악재가 한 번에 터져나오면서 권오준 회장이 외쳐오던 윤리·정도 경영이 시험대에 올랐다.
13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는 오전 인천 송도에 위치한 포스코건설 본사 사무실에 검찰과 수사관 40여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개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자료, 내부 서류 등을 확보했다.
현재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베트남 현장 임원 2명이 현지에서 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성된 자금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현지 발주처에 리베이트로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회사 측이 “현지 관행상 조성된 것이며 개인적인 횡령은 없었다”고 해명한 것과 달리, 비자금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조성됐거나 돈의 일부가 국내로 흘러들어왔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압수물과 금융거래내역 분석을 토대로 비자금의 정확한 규모와 구체적 사용처를 확인할 방침이다.
더구나 해당 사실이 자체 감사에서 적발됐음에도 포스코건설 황태현 사장과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보직해임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은폐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애당초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것도 당시 징계 결과가 석연치 않다고 판단한 직원이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두 차례에 걸쳐 글을 올린 직원은 대기발령됐다가 이후 다시 본사로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나선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 역시 앞서 이 같은 비위 혐의를 접하고 “일부 언론의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부패문제를 보여준 것”이라며 “비리나 횡령 등 위법·탈법 사항이 있을 경우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며 고강도 수사를 지시한 바 있다.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 역시 이완구 총리의 방침에 따른 것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체면 구긴 권오준 회장, 윤리경영 어디로
잇따라 의혹이 제기되면서 새해부터 윤리·정도 경영을 다시 강조하고 나선 권오준 회장의 체면도 구겨지게 됐다.
더군다나 이날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포스코 측은 소액주주인 노조원의 입장을 막고 나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져 물의를 빚었다.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이하 지회)에 따르면 광양제철소 사내하청 노동자 30여명이 이날 주주자격으로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사측에 의해 저지당했다. 더군다나 이들은 참석장도 받았던 상태였다.
지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주총에 참가해 권오준 회장에게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요구 사항을 발언하려고 했으나 사측과 진행요원의 물리적 제지로 인해 응급실로 후송된 조합원만 3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권오준 회장은 이날 의장으로 참석해 주주총회를 진행했다.
같은 날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한화로 매각된 4개 계열사 노조원 중 한 명이 주주총회장이 입장해 의견을 개진한 것과 비교되는 행보다. 특히 권오준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 당시부터 비리와 부패를 근절하는 윤리경영과 함께 갑질 등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는 정도경영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포스코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지만 2심 선고가 2년 넘게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최근 유사 소송에서 현대·기아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임을 인정받은 바 있다.
◆‘진퇴양난’ 포스코, 포위망에 갇히나
압수수색과 주총 진입 제지 논란이 한 번에 터져나온 가운데 포스코를 향한 검찰의 수사망이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는 점도 권오준 회장의 근심거리다.
이미 포스코는 포스코건설 임원의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과 더불어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 이후 포스코와 포스코 P&S 등 계열사간 매출을 부풀려줬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다른 부에 배당됐던 이 사건은 이날 포스코건설 송도 본사 압수수색을 진행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넘겨 받았다.
아울러 끊임없이 정치권의 ‘외압’ 논란이 일었던 성진지오텍 논란 등도 마찬가지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수사망에 올라 있다. 일각에서 이번 수사가 사실상 전 정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도는 이유다.
M&A와 관련된 의혹은 지난 2010년 플랜트 설비 제조업체 성진지오텍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 대표적이다.
2010년 포스코는 성진지오텍을 인수해 자회사인 포스코플랜텍과 합병했다. 하지만 당시 성진지오텍은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 투자에 실패, 2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하고 있던 상태였다. 2009년 성진지오텍의 부채비율은 1613%에 달했다. 당시 회계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기업존속 능력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스코는 성진지오텍 지분 40%를 당시 주가보다 2배나 높은 1600억원에 사들였고, 특히 당시 1대 주주인 전정도 회장의 지분 440만주를 3개월 평균 주가인 8300원의 2배에 달하는 1만6300원에 사들여 특혜 의혹이 일었다.
부실 기업을 떠안은 대가로 2012년 매출 5232억원, 영업이익 253억원의 실적을 기록한 포스코플랜텍은 2013년 성진지오텍과 합병한 뒤 ‘돈 먹는 하마’로 돌변, 매년 적자폭이 확대됐다. 최근에는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까지 단행돼 직원들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포스코플랜텍에 유상증자 등으로 이뤄진 자금지원 규모만도 수천억원대에 달한다. 따라서 ‘위대한 포스코’를 기치로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이외의 사업은 정리하겠다는 권오준 회장이 왜 유독 포스코플랜텍에 ‘편애’를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최근 그룹 차원에서 29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안건이 상정됐을 당시 이사회에서도 이례적으로 일부 사외이사가 강하게 반대해 며칠간 보류될 정도였다. 여기에 지분율이 증가하면서 포스코플랜텍이 포스코 연결기준으로 편입되면서 포스코 실적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된 상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의 공격적인 M&A들에 대한 의혹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상태다. 2010년 100억원 안팎으로 평가받던 NK스틸을 377억원에 인수해 포스코NST로 편입한 사례나, 인수가 300억원대로 예상되던 삼창기업을 포스코ICT가 1020억원에 인수해 2013년 포뉴텍으로 출범시킨 사례 등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미스테리다. 이명박 정부 당시 포스코가 인수·합병한 기업은 30여건에 육박한다.

◆MB 실세 겨냥?…권오준 회장도 ‘곤욕’
검찰이 포스코건설의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동시다발적인 수사를 본격화하고 나서자, 사실상 지지부진한 집권 중반기에 현 정부의 국정추진 동력을 살리기 위해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부의 실세를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기업이던 포스코가 2000년 민영화를 선언했음에도 꾸준히 정권과의 유착관계를 이어왔다는 정황이 많이 드러나 있는 만큼 정준양 전 회장 당시의 포스코 역시 정권의 외압 및 유착으로 공격적인 M&A와 해외 사업 및 매출 부풀리기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이 자행된 것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특히 이날 검찰의 포스코건설 본사 압수수색이 전날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의 강경 방침이 나온 다음 날 바로 이뤄졌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정권 차원의 국면 전환용이라면 사실상 그룹 전체로 수사가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포스코를 둘러싼 각종 논란의 중심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MB맨’ 정준양 전 회장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1년여라는 시간 동안 윤리·정도경영을 강조해 온 권오준호 포스코마저도 2년 임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취임 전후의 악재가 한 번에 터지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해외 비자금 조성이나 성진지오텍 등의 논란은 권오준 회장 취임 이후의 행보와도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 누리꾼은 “권 회장이 취임한 지 1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얼마나 깨끗해 졌느냐”며 과거 ‘비리 공화국’으로 불리던 포스코와 별 차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