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비정규직 노조 내부에서 내홍이 격화되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6일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 게시판에 비정규직 노조 통합사업부 대표 오모 씨가 “비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해외여행 중인 통합사업부 부대표를 시켜 규정이나 절차도 없이 자신을 탄핵했다”고 주장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오모 씨는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정규직 채용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나를 규정도 절차도 없이 파면했다”면서 집행부가 파면 이유로 오 씨가 간접업체 조합원들에게 현대차 직영 채용시 원서를 제출하라고 했다는 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대차 비정규직 울산지회는 최근 집행부의 투쟁방침을 비판하고 나선 오 씨를 지난 20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대의원 자격을 박탈하고 파면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는 오 씨가 노조를 해치는 행위를 했다면서 “조합원들 스스로 오 씨를 더는 믿을 수 없어 탄핵했고 노조는 이를 받아들였을 뿐이다”고 밝혔다.
오 씨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집행부의 독선에 비판을 가했다. 오 씨는 대자보를 통해 “집행부에 대해 쓴 소리하는 대의원이나 활동가들은 (집행부가)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매장시키려고 한다”면서 “집행부는 직접부문의 다수 조합원들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조합원들은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오 씨는 “사측의 신규채용에 1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지원했다”며 “집행부는 투쟁으로 불법파견 문제를 돌파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으라”고 주장했다.

◆투쟁과 교섭 사이…갈등 확산 조짐
오 씨 외에도 현 집행부를 비판하는 대자보는 여러 차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오 씨의 간부 자격 박탈 사태가 노노(勞勞) 갈등이 본격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집행부를 비판하는 측은 소위 ‘8.18 합의’로 불리는 사측과 노조 측과의 합의를 인정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은 1000여명의 집단 소송에 참가한 비정규직들이 ‘묵시적 근로 관계’임을 인정해 정규직 지위를 부여했는데, 현대차는 소송에 앞서 노조와의 ‘8.18 협의’를 통해 이들을 포함한 비정규직 4000여명을 ‘신규’로 채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신규로 채용되기 위해서는 참여중이던 소송을 취하해야 하므로 체불 임금이 사라지고, 기존의 근속 기간을 1/3만 인정하기 때문에 연봉도 대폭 줄어든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대차는 향후 소송을 금지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근로자는 인정받아야 할 정직·해고자의 권리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조는 이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 합의를 폐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법원에서 잇따라 정규직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만큼 모든 비정규직이 결국 대법원에서 정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정 다툼이 오래 지속될 경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비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주장대로 투쟁이 파업으로 확대될 경우 사측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 배상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 노조가 배상해야할 손해배상 금액은 185억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노조 관계자가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집행부를 비판하는 측은 집행부가 투쟁만 강조하기보다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 법원 판결을 카드로 삼아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 내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부에서는 정규직 노조와 힘을 합쳐 회사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집행부는 사측이 독자 교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1심을 통해 정규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정규직 노조와 함께 교섭을 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지난해까지 총 2838명의 사내하청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했으며, 올해는 나머지 1162명을 추가로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현재 노조는 현대차와의 독자교섭, 3~4월 생산라인 점거 투쟁, 6~7월 전국단위 총파업 투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교섭과 정규직 채용을 원하는 조합원들과의 노노 갈등이 더욱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한 지역 노동계 전문가는 현실적인 문제로 최근 현대차 정규직 신규채용에 상당수 하청조합원들이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