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당시 검찰이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보다 여론 가라앉히기에만 급급했다는 검찰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특히 검찰은 피의자들에 대해 수사하기도 전에 미리 짜맞추기식 결론을 내렸고, 유족들에 대해서는 사찰에 가까운 동향파악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박상옥 후보자는 당시 이 사건 수사 검사였고, 이 때문에 대법관 자격 여부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공개된 검찰 내부 문건이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의당 서기호 의원에 따르면, 서 의원은 지난달 30일 법무부 검찰국 검찰 제3과 생산, 현재 국가기록원이 보관중인 ‘고문치사(박종철)’ 기록물을 열람했다.
해당 기록물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발생 이후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춘천 등 각 지검에서 생산해 법무부에 수시로 보고한 정보보고 문건으로 총 275쪽 가량의 분량으로 알려졌다.
기록철은 ‘박종철 사망사건 수사상황보고’, ‘변사자 박종철 유족 관련 동향’, ‘박 군 치사 사건 공판관련 법정주변 동향’ 등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이를 두고 서 의원은 “기록물 열람결과 당시 검찰이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힐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안상수 검사(현 창원시장)가 1987년 1월 19일 작성한 ‘정보보고’에서 오전에 경찰로부터 구속영장이 비공식으로 접수된 후 당시 신창언 부장검사가 구속영장을 치안본부 발표를 참조하여 수정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참고로 치안본부장은 같은 날 10시 기자회견에서 ‘고문사’를 최초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이어, “수사 지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검찰 수사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1987.1.19.자 ‘고문치사 사건 수사 중간 보고’라는 문서에는 ‘확정된 사실관계’라는 목차아래 ‘구속피의자 2명뿐’, ‘상급자등 교사-방조 없음’이라고 확정적으로 기재돼 있었다”면서 “검찰이 사건을 송치 받은 날은 1987.1.20.인데, 사건 송치를 받아 피의자들을 수사하기도 전에 사건 내용에 대해 확정하고 있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같은 문서의 수사 지휘 내용 중에는 ‘피의자 상대 수사는 사건 송치 전 치안본부에서 완결되도록 수사 지휘’, ‘흥분된 매스컴의 보도열기를 가라앉히는 조용한 수사 마무리’라고 지시사항이 기재돼 있었다”며 “당시 검찰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경찰수사내용대로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하려 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이밖에도 “그 외 기록물에서는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은 사건 발생 직후 유가족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동향보고서를 작성하여 법무부 등에 보고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는 사찰이라고 할 만큼 구체적이고 치밀하다”고 전했다.
유가족 동향보고서에는 유가족이 누구와 만나는지, 국가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는지, 당시 야당인 신민당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는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서 의원은 “유가족들이 서울에 올 때면 언제 도착해서 누구를 만나 어디에 숙박 하는지까지 동향보고가 이뤄졌다”며 “뿐만 아니라 정부당국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성향이 어떠한지, 순화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보고됐다”고 밝혔다.
덧붙여 “부산시 수도국장, 영도구청장 등이 아버지 박정기 씨를 접촉해서 순화하고 있다는 내용보고, 가정형편에 대한 상세보고도 있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같은 동향보고 내용을 통해 당시 검찰이 사건진실파악에 주력한 것이 아니라, 유족들에 대해서는 사찰에 가까울 정도로 동향파악을 하면서 정권보호를 위해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막는데 급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기록물 열람을 통해 당시 검찰이 경찰수사결과에 맞추어 짜맞추기 수사를 하려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사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검찰이 진실 파악은 외면하고 유가족 사찰에만 열을 올린 것을 보며 당시 검찰이 과연 공익의 대변자로 국민의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날 세워 비판했다.
서 의원은 “검찰은 박종철 군과 유가족에게 사죄해야 하고, 당시 직접 수사검사였던 박상옥 후보자 역시 검찰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며 “박상옥 후보자는 어서 빨리 대법관 후보자에서 자진 사퇴하는 것이 지금이나마 민주열사와 유가족들에게 사죄하는 길이다. 스스로 사퇴함으로써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검사임용시 선서한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를 발휘하길 기대한다”고 거듭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