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D산업은행이 꾸준히 특혜·부실 대출의혹을 받고 있다. 국내 굵직한 기업의 금융사고 이면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부실·특혜 대출 의혹이 계속되고 있는 것. 그러나 당사자인 산업은행은 느긋한 모습이다.
한국산업은행은 1954년 4월 정부 출자로 산업자금의 공급과 관리를 위해 세워진 정부출자 은행으로서 6.25 전후 복구 사업에 주축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에 따라 사회간접자본이나 중화학공업 개발 등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산업에 자금을 융통해 줌으로써 금융산업을 견인해왔다.
2008년 6월 민영화 사업이 발표된 한국산업은행은 산은법이 개정됐고 이듬해 2009년 정책금융 관련 업무를 한국정책금융공사로 이관했다. 같은 해 상업금융 부문만 주력으로 하는 민간 금융그룹인 산은금융그룹이 출범하면서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공사-산은지주-산업은행의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현재까지도 산업금융에서 기업들에게 산업은행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 과정에 산업은행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기아자동차와 대우조선해양, 쌍용자동차 등 경영난을 겪은 기업과 그룹은 산업은행의 힘을 빌려 회생하거나 새로운 주인을 만나 새출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업의 금융을 담당하는 역할이 큰 만큼 특정 기업 특혜 논란이 산업은행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산업은행, 포스코 논란 속 성진지오텍 특혜 의혹 불똥
최근 정부가 부정·부패 척결의 의지를 밝히면서 포스코가 첫 수사대상에 올랐다. 이후 포스코 계열사들이 강도 높은 수사에 들어가면서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에 대한 혐의가 포착됐다.
이에 따라 현재 포스코건설은 비자금 조성 경위에 대해 검찰의 집중 수사를 받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성진지오텍에 대한 수상한 자금 흐름이 포착되면서 산업은행으로 수사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2009~2014년 3월까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사업의 다각화를 이유로 다양한 M&A를 추진했다. 취임 초 30여개였던 계열사가 70여개로 늘었을 정도로 M&A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
그러나 당시의 M&A 적절성을 두고 회사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성진지오텍이다. 포스코가 2010년 성진지오텍의 인수과정에서 지나치게 비싸게 인수하면서 성진지오텍에게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당시 포스코는 전정도 전 회장의 성진지오텍 보유 주식 440만주를 주당 1만 6331원에 매입했다. 전 전 회장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95% 인정한 것으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주식을 인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인수결정 직전 3개월간 성진지오텍의 주식은 8200~8300원대를 오르내렸다.
수사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산업은행도 덩달아 성진지오텍發 의혹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이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인수과정에 자문을 해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직접적으로 의혹을 사는 부분은 보유하고 있던 성진지오텍의 신주인수권을 염가에 전정도 전 회장에게 넘긴 부분이다. 2010년 3월 주식 시장에서는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인수가 확정되는 단계였기 때문에 큰 폭의 주가 상승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성진지오텍 신주인수권 446만주를 가지고 있던 산업은행은 이 시기에 주당 9620원의 가격으로 신주인수권을 넘기면서 의도적으로 성진지오텍 전 회장에게 이익을 안겼다는 의혹이 일었다. 특히, 산업은행이 매각한 9620원의 매각가는 당시 성진지오텍의 주가 1만2000원에 크게 못 미치는 가격이었기 때문에 의심은 증폭됐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의 수상한 행보에 정치권의 입김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전정도 전 회장은 1980년 유영금속을 창업한 뒤 8년만인 1989년 에너지 플랜트 기업 성진지오텍으로 성장시키면서 포항출신 유력 인사들과의 교류에 상당히 신경썼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전 회장은 2008년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 중소기업 CEO로는 이례적으로 남미 순방길에 동행하는 등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 ‘분식회계’ STX 부실 대출 의혹에도 ‘곤혹’
지난해에는 산업은행이 STX의 분식회계를 인지하고도 대출해 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상직 새정치민연합 의원이 공개한 ‘산업은행 대출시 분식회계 관련 모니터링 내역’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자체운영하고 분식회계 적발 모니터링 시스템 ‘재무이상치 분석 전산시스템’에서 STX조선해양의 2009년 회계연도와 (주)STX의 2008년 회계연도 재무제표의 재무이상치가 높게 추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해 재무이상치가 높다는 것은 분식회계 혐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STX조선해양에 신규대출 및 대환대출 등의 방식으로 여신액을 2700억 원으로 증액하면서 부실대출 의혹을 샀다.
이상직 의원은 “STX의 분식회계 혐의가 산업은행 내부 모니터링 시스템에 추출됐음에도 대출한 것은 시스템의 문제이거나 ‘묻지마’식 특혜대출 중 하나”라며 “STX 부실대출이 13년 만의 산업은행 적자로 이어진 큰 이유인 만큼,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해 실상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출을 해줄 때는 돈이 다른 곳으로 유용되지 않고 제대로 잘 사용되도록 자금관리를 해 기업을 살리는 게 주채권은행의 임무임에도 산업은행은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 역시 “STX의 주채권은행으로서 이처럼 규모가 큰 여신을 취급할 시에는 더 신중하고 엄격한 운용이 필요하다”라며 “산업은행이 STX건에 대해서는 국책은행으로서의 신중한 판단을 내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금감원은 STX 부실대출 관련 산업은행 직원 11명에 대해 징계 조치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산업은행의 부실 대출에 대한 아픈 곳을 또 한 번 노출하게 됐다.
◆산업은행 “특혜·부실 대출 의혹은 생소하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크게 문제될게 없다는 반응이다. 기업 대출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보편적인 논쟁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산업은행은 은행 창립후 언론을 통해 부실·특혜 대출 관련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시사포커스>의 질문에 “부실·특혜 대출과 관련된 논란이 된 적은 없다”면서 “논란이 된 적이 없기 때문에 부실·특혜 대출 의혹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정치 실세와 가까운 산업은행…합리적 선택 어려워”
산업은행이 잇따라 부실·특혜 대출 의혹에 시달리는 것과 관련 수뇌부가 지나치게 親정부 성향의 인사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정부 권력실세와 가까운 인물이 산업은행 회장을 맡는 경우가 많아 금융당국이 통제가 어렵다”며 “사실상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산업은행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STX 부실 대출과 관련 당시 산업은행 회장이었던 강만수 전 회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강 전 회장이 심사결과를 보고 받았다고 해도 신용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리·감독 책임을 묻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신용위원장을 맡아 여신심사를 총괄했던 수석부행장과는 달리 강 전 회장은 제재를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KB금융 사태와 관련 내분을 일으킨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에게는 최종 책임을 물어 ‘직무정지 3개월’과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KB금융 집안싸움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STX 부실 대출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약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당국의 산업은행 눈치보기가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강만수 전 회장은 2008~2009년 기획재정부 장관, 2009년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권과의 친밀도가 높은 인사로 분류된다.
산업은행이 정부의 눈치를 너무 본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차기 사장 인사가 지연되면서 대우조선해양은 경영 안정성에 위협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해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결정이 늦어지면서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 지분은 산업은행이 31.5%, 금융위원회와 국민연금공단이 각각 12.2%와 8.1%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업은행의 역할이 크다.
대우조선해양 투자자들은 최대주주 산업은행이 정치권 눈치만 보면서 후임 사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시사포커스 / 박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