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태로 피해를 입은 여승무원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이 여승무원이 제출한 고소장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이 탑승하기 전 특별 서비스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24일 <세계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땅콩회항’ 사건 당시 당시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문제의 마카다미아 땅콩을 서비스했다가 된서리를 맞은 김도희 승무원은 미국 뉴욕주 퀸스 카운티 법원에 제출한 추가 고소장에서 이러한 ‘로열패밀리서비스’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열패밀리’란 대한항공 오너 일가를 지칭하며 KAL(대한항공)과 VIP를 합한 KIP로 불리기도 한다.
고소장에 따르면 김도희 승무원은 조현아 전 부사장이 탑승하기 전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사용하면 안되는 언어, 기내 환영음악의 볼륨, 수프의 최적 온도, 수하물 보관방법 등을 따로 교육받았고, 다른 승무원들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취향에 관한 보고서를 미리 읽고 특정 상황에 대한 대처법 등을 담은 역할극(롤플레잉)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전담 승무원으로 선택됐던 김도희 승무원은 지난해 12월 2일과 3일 두 번에 걸쳐 각각 4시간과 1시간의 교육을 받았고 대부분 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개인적 취향에 포커스가 맞춰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도희 승무원은 고소장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의 기내 난동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물리적으로 폭행하거나 위협했던 상황, 여성 비하 욕설 등을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꾼들은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포털 기사 댓글란이나 커뮤니티 등에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누리꾼은 “아무리 오너 일가지만 개인 회사도 아니고 주식회사인데 설마”라며 “개인회사라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텐데 사실이라면 정말 남부끄러운 일”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누리꾼은 “미국에서 소송하니 다행”이라며 국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고, 또 다른 누리꾼은 “여왕노릇 제대로 했네”라며 비판했다.
◆로열패밀리서비스? 승무원들 일제히 불만 토로
대한항공 오너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가 승무원들을 개인적으로 다룬다는 지적은 비단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지난 1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이 같은 오너 일가가 ‘군림’하는 상황에 대해 승무원들의 생생한 증언이 방송을 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방송에서 한 승무원은 “로열패밀리가 타면 늘 비상이 걸려 전날부터 회의를 한다”며 “좋아하는 음료와 가수 등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지고, 비행기에 그들이 탄다는 것 자체가 공포”라고 밝혔다. 이 승무원은 “오너 일가가 탄다고 하면 제일 잘하는 사람들로 배정돼 오너 일가의 취향을 사전에 공부하고 말 없이 내리면 그게 다행”이라고 진술했다. 이번에 김도희 승무원이 추가 고소장에서 밝힌 내용과 궤를 같이 하는 증언이다.
또한 다른 승무원은 “오너 일가 중 한 명이 ‘호박 같은 애가 서비스를 하느냐’고 해 해당 승무원이 무릎 꿇고 사과를 한 적도 있다”고 진술해 큰 파장이 일었다. 이들은 “매뉴얼이라는 건 오너 일가의 매뉴얼”이라며 ‘땅콩회항’ 사건 같은 일은 얼마든지 비일비재한데 유독 기사화된 것이 놀랍다고 전하기도 했다.
‘땅콩회항’ 당시의 보도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증언이 발견된다. 한 승무원은 “KIP가 타는 날이면 그날 비행은 늘 업무 그 이상”이라며 “로열패밀리가 비행하면 며칠 전부터 공지가 내려오고 전날 모여 브리핑을 하고 당일은 모의 연습까지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김도희 승무원이 고소장에서 밝힌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하는 증언이다.
또한 이 승무원은 “조양호 회장이 비행기를 타면서 ‘보딩 뮤직’(비행기 탑승시 깔리는 음악)의 음량이 너무 크다거나 너무 작다고 지적해 같은 곡을 가지고도 파트에 따라 볼륨을 낮추거나 줄이는 식으로 흐름을 파악하는 게 그날 비행의 주요 업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땅콩회항이 발생한 당일에는 회사별로 익명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블라인드’ 앱에 DDA, DDY 등의 단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약어들은 대한항공 오너 일가에 붙이는 직급 코드로 알려졌으며 DDY는 조양호 회장의 양(Yang)의 첫 자를 따서 붙인 것이고 DDA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아(A)를 붙인 코드다.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President의 ‘P'를 따서 DDP로 명명됐다.
그런데 이 같은 오너 일가의 직급 코드가 승무원들의 내부 시험인 ‘업무 지식 평가’의 문제로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한항공은 호된 질타를 받았다. 이 문제는 분기별로 치르는 평가 마다 1번으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무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증언하며 “우리들끼리는 회사를 ‘대한여고’로 부른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일등석 승객 위한 맞춤 서비스의 연장” 반박
한편 대한항공은 해당 보도가 나오자 김도희 승무원의 주장에 부풀려진 면이 많다고 해명했다.
대한항공은 “김도희 승무원이 ‘로열패밀리서비스’라고 주장한 특별교육은 조현아 전 부사장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일등석 승객을 위한 맞춤서비스 강화의 연장”이라면서 “당시 기내서비스 총괄 부사장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탑승에 따라 이뤄진 서비스 재점검 절차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국내 항공사들은 일등석 승객을 위한 서비스에 별도의 매뉴얼을 작성하는 등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대한항공은 지난 2013년 4년 연속 아시아 최고 일등석 서비스 항공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즉, 일등석 승객들을 위해 원래 세세한 배려를 기울이고 있는 만큼 해당 교육도 비슷한 취지였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라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또한 대한항공은 “사건 당시의 객관적 상황은 이미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현아 전 부사장 재판의 1심 판결문에 상세히 명시됐음에도 김도희 승무원 측이 부정적 여론을 조성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송이 진행되는 미국에서는 이렇게 세세한 교육이 일반적이지 않은 만큼 이런 정황들이 부각되면 김도희 승무원 쪽에 우호적인 여론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평했다.
지난 3월부터 6개월 휴직에 들어간 김도희 승무원은 이번 소송을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판결하는 방식으로 진행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양측은 변호인을 선임 또는 추가 선임하고 증언자 목록을 제출하는 등 본격적인 소송 준비에 돌입한 상태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