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의 압승,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로 끝난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이 향후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됐고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동력을 마련했다. 이와 반대로 야권은 호남을 중심으로 야권재편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전패 위기를 압승으로
이 같은 선거의 파장과 함께 선거전을 선두에서 이끈 여야 수장의 명암도 갈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주요 여론조사에서 각각 여야의 선두 주자들이다. 대선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현재 갖고 있는 당내 기반, 인지도와 지지도는 차기 대선주자감이라는 평가가 많다.
최근 여야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다. 리얼미터가 27일 발표한 4월 4주차(20∼24일) 주간집계(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0%p)에 따르면 문 대표는 26.7%를 기록, 1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3.5%로 문 대표에 이어 2위를 유지했다. 당장 이들의 순위가 뒤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3.2%p라는 격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문 대표의 경우 탄탄한 지지기반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으로 이들은 전혀 다른 상황에 위치하게 됐다.
먼저, 김 대표를 보자. 이번 4·29 재보궐선거 결과로 보면, 이번 선거는 김무성을 위한 선거였으며 김무성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야권의 분열로 초반에는 쉬운 선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성완종 리스트’라는 대형 악재가 터졌다. 이때부터 새누리당이 0대 4로 패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선거 지형이 바뀌었지만 김 대표는 ‘지역 일꾼론’으로 묵묵하게 전진했다. 김 대표는 방송인 차승원씨의 이미지인 ‘새줌마’(새누리당과 차줌마의 합성어)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지역을 샅샅이 돌면서 ‘김무성은 지역의 숙원 사업을 세심하게 챙긴다’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전략가적인 면모도 보였다. ‘성완종 리스트’로 수세에 몰리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야당도 대선자금 수사에 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노무현정권의 성 전 회장의 두 차례 사면 문제를 정치권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뿐만 아니라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받던 이완구 국무총리 문제의 해결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파장을 최소화시켰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일에 긴급회동을 가지면서 성과와 자신의 위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제 김 대표의 앞길은 탄탄대로다. 당내 리더십은 물론 대권가도 역시 거칠 것이 없어졌다.
당내 상황은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비박근혜)계가 당내 신주류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김 대표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짐에 따라 이제 당·청 관계의 주도권도 확실히 당으로 넘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일궈낸 승리이기 때문에 김 대표는 그간의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청와대와 차별화하면서 독자적인 행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마케팅’ 없이 오로지 자신이 전면에 나서 치른 선거에서 압승했기에 당내 입지 또한 한층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를 견제해왔던 친박계도 더 이상 김 대표를 흔들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에게 “고생했다”며 “당이 하나가 되고, 당이 정부와 청와대와 함께 단합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친박계가 김무성이라는 존재를 ‘상황에 따라 흔들어야 할 인물’에서 ‘함께 해야 할 인물’로 인식을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여론조사를 토대로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을 보면 김 대표 외에 홍준표 경남지사, 이완구 전 국무총리 등이 있다. 하지만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타격을 입었다. 김 대표의 대선주자로의 존재감이 우뚝 설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 김 대표는 몸을 낮추고 있다. 당내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청와대와 수평적 관계 유지를 계속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전날 새누리당 당사에서 개표 결과를 지켜본 뒤 향후 당청 관계에 대해 “당과 청와대는 한 몸이다”며 “어디서 주도권을 잡느냐 안 잡느냐는 틀린 이야기다. 지금까지 보다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4대 공공개혁을 꼭 성공시키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번에 현장을 돌아보니 정치불신과 혐오감이 매우 높았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3곳을 이겼다고 새누리당이 진정한 승리라 말 할 수 있는지 냉철히 짚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국민의 정치 혐오증을 떨쳐낼 지 여야가 모두 맞대고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우리 정치는 공멸한다”고 경고하면서 “그런 면에서 승리의 기쁨보다는 솔직히 내년 총선이 더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집토끼의 외면, 흔들린 리더십
선거에서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다. 승자가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라면 패자는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대표다. 문 대표는 당을 위기로 몰아갔고 여기에는 자신도 함께 했다.
지난해 새정치연합의 모습을 보자. 새정치연합은 미니총선이라고 불렸던 7.30 재보선에서 패했다. 결국,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물러났다. 이와 동시에 안철수 대표의 대선주자로의 위치도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렸다.
선거를 앞두고 문 대표를 둘러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야권의 분열 양상이라는 최대 변수가 있었지만 ‘성완종 정국’이 발생한 것은 분명, 야권의 호기였다. 광주 서구을 지역은 새정치연합의 텃밭이다. 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또한 서울 관악을 지역은 ‘서울의 호남’이라고 불렸으며 경기 성남 중원 역시 야성이 강한 곳이다. 보수성향이 강항 인천 서·강화을 지역은 인천 검단지역에 젊은층이 많이 유입됐고 문 대표의 배우자인 김정숙씨는 강화 출신이다.
이를 보면 4곳 모두 승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새정치연합의 처절한 완패였다. 게다가 텃밭을 잃었다는 것은 문 대표에게는 크나큰 아픔이다.
문 대표는 지난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반드시 연꽃을 피워 내겠습니다’라는 성명에서 “세 번의 죽을 고비가 내 앞에 있다. 당 대표가 안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 다음 제 역할은 없다”고 했다. 문 대표는 첫 번째 고비는 넘겼지만 두 번째 고비는 자신이 지목한 총선이 아닌 재보선이 됐다.
새정치연합의 패배는 문 대표의 리더십에 상처를 냈고 당내 운신의 폭을 좁히게 했으며 나아가 대선주자 1위 자리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일단, 당내 비노(非盧) 진영에서 책임론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이후 당내 비주류는 한때 당직 인선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관망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문 대표는 대표직에 오른 뒤 처음으로 맞는 선거인만큼 결과물을 보여줘야 했지만 성과물은커녕, 상처만을 가져왔다.
문재인 체제 80일 동안 숨을 죽여온 당내 비주류의 화살이 문 대표를 향해 날아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문 대표의 사퇴를 곧바로 겨눌지, 친노계 우위의 당내 역학구도를 무너뜨리는 데 맞춰질지 아직 수위를 가늠키는 어렵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호남민심의 문재인 대표에 대한 거부감은 새정치연합뿐만 아니라 문 대표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당장, 천정배 의원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 신당’을 창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 대표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문 대표의 당내 위치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선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집토끼(호남민심)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황에 대권에 나서면 필패다. ‘문 대표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새로운 대안인물 또는 세력이 부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한동안 문 대표에게 위기를 수습할 기회는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 대표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문 대표는 이날 재보선 결과와 관련, 자신에게 잘못이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가 부족했고, 특히 제가 부족했다”며 “국민의 분노하는 민심을 대변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문 대표는 “누구를 탓 할 것 없이 우리의 부족함을 깊이 성찰하고 절체절명의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다”며 “이런 시련을 약으로 삼겠다”고 했다. 문 대표는 이어 “길게 보면서 더 크게 개혁하고 더 크게 통합하겠다”며 “더 강하고 유능한 정당으로 국민의 삶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