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향배를 가를 금호산업 인수전에서 호반건설이 인수 제안가로 예상치를 하회하는 수준을 내세우면서 결국 본입찰이 유찰된 가운데, 차츰 당사자들의 이해득실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다.
금호산업 인수전 본입찰 마감일이던 지난 28일, 5곳의 후보 중 호반건설이 유일하게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6007억원의 인수가를 제시했지만 시장의 예상치보다 훨씬 낮은 금액인 탓에 채권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찰을 결정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매각에 나선 지분은 57.5%에 해당하는 총 1955만주로 28일 종가 2만285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4467억원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금호산업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크게 프리미엄이 붙어 최소 8000억원대에서 많게는 1조원까지도 제시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이날 호반건설은 시장의 예상과 달리 경영권 프리미엄을 크게 붙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호반건설은 28일 종가인 2만2850원에 1주당 8850원의 프리미엄을 붙인 3만1000원 안팎으로 계산해 6000억원 정도를 제시했다.
하지만 채권단이 그간 판단해 온 적정 인수 금액은 9000억원 이상으로, 프리미엄이 붙은 주가는 6만원 정도는 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건설의 제시가인 3만원대 초반과는 2배의 괴리가 있는 셈이다.
결국 이날 오후 7시 미래에셋, 국민은행, 농협, 우리은행, 대우증권, 산업은행 등 6개 기관으로 구성된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호반건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고 유찰을 선언했다. 채권단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은 것 이외에도 호반건설이 향후 금호산업의 우발채무에 대한 위험을 보상해달라는 조건을 붙이는 등 호반건설의 요구를 수용하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으로부터 2달여 간의 대장정을 진행해 온 본입찰이 유찰되면서 매각 지연, 재매각 추진, 수의계약 가능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됐으나 산업은행은 즉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과의 수의계약을 추진하며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5월 초 채권단 전체회의를 열고 박삼구 회장과 개별 협상을 통한 계약을 진행한다는 안건을 상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입찰과정에서 전략적투자자(SI)들의 소극적 반응을 확인한데다 사모펀드 등 재무적투자자(FI)들마저 입찰을 포기해 재입찰을 해도 시간만 소요될 뿐 실효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1조 문제 없다” 큰소리 치던 호반건설
시장의 예상을 크게 하회한 제안가와 그에 따른 유찰의 후폭풍으로 그간 “1조원 동원도 문제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처 온 호반건설 김상열 회장의 행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한 상태다. 누리꾼들은 최근 롯데가 1조원에 매입한 KT렌탈을 상기시키며 “렌터카 업체도 1조원에 팔리는데 그룹 통째를 6000억원에 먹겠다는 소리가 말이 되느냐”며 호반건설을 비판했다.
이처럼 기본적으로는 호반건설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간 호반건설은 입찰 참여 의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입찰을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자금 동원에도 문제가 없다며 큰 소리를 쳐 왔다.
특히 지난달 26일 김상열 회장은 서울 남대문로 상의회관에서 열린 대한상의 의원총회에 참석해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채권단이 정한 가이드라인이 1조원 조금 안 되는 수준이라고 들었다”며 “조금 더 검토해야 하지만 우리의 현금 동원력은 충분하다”는 취지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상열 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자기자본만 2조원이 넘는다며 체력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또한 김상열 회장은 계열사와 회사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열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FI)나 전략적 투자자(SI) 없이 우리 회사 단독으로 계열사와 참여할 것”이라고 밝히고 “다만 아직 실사를 진행중이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 가격 변동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입찰 마감 직전 하나은행의 호반건설 지원 소식은 김상열 회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듯 했다. 지난 28일 하나금융이 호반건설의 금호산업 인수에 4000억원에 달하는 인수 금융을 주선하고자 투자확약서(LOC)를 체결했고, 200억원 규모의 한도대출을 추가 지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상열 회장의 ‘통 큰 베팅’을 점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실제로 호반건설의 현금성 자금은 4400억원으로 추산되던 상태였고, 입찰가액의 50%만 조달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되는 상황에서 1조원 동원은 시간 문제로 여겨졌다. 가뜩이나 박삼구 회장의 영향력을 의식한 듯 입찰 의지가 한 풀 꺾였던 4곳의 사모펀드들은 호반건설이 대규모 자금 동원에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결국 본입찰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호반건설, 사실은 진짜 승리자?

하지만 호반건설이 실제 제시한 금액은 6007억원에 불과했고 결국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체적으로 호반건설의 제안가에 놀랍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호반건설이 유찰 결정으로 잃을 게 없고 오히려 승자라는 주장이 제기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던 호반건설은 이번 금호산업 인수전에서 뚜렷한 인지도 상승을 경험했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말 금호산업 지분 6.16%를 인수하면서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이후 주기적으로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탈환을 위협할 다크호스로 거론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획득했다.
이어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시 수 많은 대기업들이 입찰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실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것은 호반건설과 신세계, 그리고 사모펀드 4곳 뿐이었고 신세계는 다음 날 “롯데 측의 움직임을 확인하고자 제출했다”며 즉시 인수의향서를 철회하는 촌극을 빚었다. 상대적으로 꾸준한 준비 작업을 거쳐온 호반건설의 입자가 더욱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인수전 진행 과정에서 대규모의 현금과 견실한 사업 구조를 비롯한 탄탄한 재무구조가 수 차례 부각됐고, 이는 박삼구 회장이 꾸준히 자금 동원 능력에 의심을 받아온 것과 대조되며 우량 건설사의 이미지도 얻었다.
또한 김상열 회장은 다른 대기업들이 박삼구 회장을 부담스러워하며 입찰조차 참여하지 않은 것과 달리 꾸준히 완주 의지를 내비치며 패기 넘치는 기업인의 이미지도 덧씌워졌고, 이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 측으로 분류되던 후보와의 단일화를 이뤄내며 광주상공회의소 의장에도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금호산업 지분 매입 후 주가 상승 효과로 얻은 280억원대의 차익은 부수입에 불과하다. 더구나 김상열 회장은 이 차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재빨리 수습했다. 사실상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오너와 회사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셈이다.
이번 본입찰의 행보도 오히려 호반건설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신뢰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라는 평가다. 호반건설의 안정적 경영은 널리 알려진 상태이며, 호반건설은 현재 분양 중인 아파트 사업장에서 계약률이 90%를 넘지 않으면 다음 분양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90%룰’과 무차입 경영 등을 원칙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의 불황에도 미분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성장을 기록한 원동력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는 24위에서 15위로 뛰어 올랐다.
호반건설이 시장의 예상치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한 이유를 들어보면 이 같은 경영 원칙이 또 한 번 발휘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호반건설 측은 “다른 입찰자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굳이 높은 가격을 써낼 이유가 없고, 실사를 진행한 결과 6000억원 정도가 적당한 금액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매각대상이 된 금호산업 지분 57.5%(약 1955만주)의 자체 가치는 500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기존에 거론되던 1조원대의 가격이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온 만큼 호반건설이 경영 원칙상 무리하지 않겠다는 것을 택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잃을 게 없는 상황에서 덩치가 큰 먹잇감을 삼켰다가 체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금호아시아나그룹부터가 대한통운과 대우건설 등을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그 후유증에 따른 여파로 주력 계열사들의 매각과 워크아웃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3조원대로 예상되던 대우건설을 6조원이 넘는 금액에 인수하고 2조원대로 대한통운을 4조가 넘는 금액에 인수해 결국 현재의 파경을 맞았다.
◆박삼구 회장, 인수 가능성 높아져
산업은행으로부터 수의계약 전환 방침을 받아든 박삼구 회장의 이해득실 여부도 아직까지는 안갯속에 빠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박삼구 회장의 인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우선적으로 5곳의 후보가 참여해 예비 실사를 거치고 본입찰을 거친 결과물이 단독 입찰에 제안가 6007억원이라는 점은 산업은행이 재매각 방침을 빠르게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다시 공개 매각 일정을 거치지 않고 채권단과 박삼구 회장 측과의 협상테이블이 열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은 분명 박삼구 회장에 호재로 작용할 예정이다.
더구나 1조원대에 달하는 인수 금액이 거론되면서 병행되고 있는 금호고속 인수까지 고려하면 자금 동원에 부담이 클 것이라는 예상도 호반건설의 낮은 제안가 덕에 수그러든 상태다. 물론 채권단 입장에서는 호반건설의 제안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만큼 이 금액을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해 더 많은 금액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시장에서는 적어도 1조원까지는 올라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농협이 백기사로 나서면서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탈환에 훈풍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날 김용환 회장이 지주사 회장으로 공식 취임한 NH농협금융은 박삼구 회장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금호산업에 대해서는 NH농협금융의 증권 계열사인 NH투자증권 IB본부를 통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LOC형태로 지원할 예정이다. 금호산업 재인수에 관한 재무자문 총괄은 현재 NH투자증권 IB본부장인 정영채 부사장이 맡고 있으며, NH투자증권은 호반건설이 제시한 6000억원대의 가격이라면 박삼구 회장 일가의 현재 계열사 보유지분을 담보로 금융지원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NH농협금융은 그룹의 모태인 금호고속의 재인수에도 NH농협은행을 통해 27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박삼구 회장은 IBK투자증권-케이스톤파트너즈(IBK펀드)와 4000억원대로 합의한 금호고속 인수가 중 2700억원을 금융권에서 차입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NH농협금융이 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주식인수금 등으로 1300억원을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어 2700억원을 담보차임으로 마련하는 방식인데 이 거래의 성패를 결정짓는 인수금융을 NH농협은행이 맡는다.
이러한 지원 방침은 지난 2월까지 NH농협금융 회장으로 재임했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재임 당시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룡 위원장은 NH농협금융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채권을 상대적으로 적게 보유하고 있어 부담이 덜하고, 박삼구 회장의 재기를 돕는 것이 오히려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을 때 얻는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난 여론, 매각가 상승은 악재
다만 세간의 비난 여론과 함께 금호고속 인수 계획의 차질은 박삼구 회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호산업 인수전과 함께 진행돼 왔던 금호고속 인수전의 일정은 오는 5월 24일까지 박삼구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이 인수주체 및 자금 확보 증빙서류 등의 구체적 방안을 지분 100%를 보유한 IBK펀드 측에 증빙해야 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그런데 지난달 10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IBK펀드에 제시한 4000억원 대의 금호고속 인수 방안에는 인수 주체로 금호터미널, 금호고속 우리사주와 함께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인수전이 진행중이던 금호산업이 포함돼 있었다. 4곳이 각각 금호고속 지분을 25%·30%·25%·20%씩 인수해 오겠다는 구조였다.
하지만 금호산업 채권단은 이 같은 재원 조달 방안에 제동을 걸었다. 박삼구 회장이 되찾기 전까지 금호산업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소유이지 박삼구 회장의 소유가 아니고, 금호산업이 최대주주인 아시아나항공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다. 아울러 금호산업 채권단은 금호고속 인수에 금호산업이 참가하는 것을 기업 가치 훼손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이번 유찰로 금호산업 인수 일정이 밀린 만큼 사실상 금호산업의 금호고속 인수 참가는 불가능하게 돼 금호고속 인수 방안을 새로 짜야하는 형국이다. 물론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금호터미널 등을 주축으로 인수하는 새 방안을 마련해 놓은 상태지만 IBK펀드 측이 금호고속 우리사주의 인수 주체 자격에도 시비를 제기한 바 있어 금호산업의 금호고속 인수 참가 가능성에 대한 혹시나 모를 기대가 유찰로 인해 물거품이 됐다.
박삼구 회장을 향한 세간의 비난 여론은 매각 방침과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때부터 박삼구 회장을 괴롭히고 있다. 누리꾼들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 자금 3조원을 들여 위기를 겪던 그룹을 살려놨더니 1조원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한 때 재계 7위에까지 오른 그룹을 되찾겠다는 것이냐”며 지속적으로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일각에서는 호남 지역에 대한 특혜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호반건설을 응원하던 움직임도 있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에 대출금을 출자전환한 금액만 3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금호산업이 사실 1조원에 팔린다 해도 2조원의 손실을 기록한다. 그런데 호반건설이 6000억원대를 제시했기 때문에 사실상 박삼구 회장과 수의계약이 진행된다고 해도 1조원대에 못 미칠 것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호반건설이 사실상 박삼구 회장의 백기사 노릇을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보내며 짜여진 수순이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유찰 자체만 놓고 보면 이 역시 박삼구 회장이 썩 반길만한 상황은 아니다. 금호고속 뿐 아니라 금호타이어도 향후 되찾아와야 하는 박삼구 회장은 이번에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더라면 호반건설이 제시한 제안가인 1주당 3만1000원 가량을 기준으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해 5200억원 정도로 50%+1주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본입찰 유찰로 인해 수의계약으로 전환되면서 최소한 이 이상의 금액은 더 써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재무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