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만여 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동양 사태’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던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5년 감형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피해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최재형)는 22일 현재현 전 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사기 혐의 중 일부만이 인정된다”면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날 417호 대법정에는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150석 규모의 좌석을 모두 채웠다.
재판부는 “현재현 전 회장이 사기성 회사채와 CP를 발행한 것은 맞지만, 부도가 날 것을 알면서 발행한 2013년 8월 중순 이후 부분에만 사기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현재현 회장이 동양그룹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한 자산매각이 불가능해진 2013년 8월에서야 기업의 부도를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전의 판매는 사기의 고의가 없었다고 본 셈이다.
1심에서는 2013년 2월22일부터 9월 17일까지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에서 발행한 회사채와 CP 1조3000억원어치를 4만여명의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한 것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한 바 있다.
재판부는 “재무적 한계에 이른 기업의 구조조정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해서 기업의 오너에게 곧바로 사기죄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상환능력이 없음을 인식하고 판매한 경우에만 사기죄를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재판부는 “현재현 전 회장이 부실 CP 발행으로 비자금 등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고, 이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된 점을 고려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CP를 발행하고 판매하는 데 적극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정진석 전 동양증권 사장도 징역 2년6월로 감형받았다. 1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던 이상화 전 동양인터내셔널 대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나게 됐다.
한편 재판부가 현재현 전 회장에 대해 감형을 선고하자 법정을 가득 채운 피해 투자자들의 불만 섞인 고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이들은 “유전무죄 무전 유죄”, “내 돈 물어내라”, “완전 사기”라며 재판부를 향해 소리쳤다. 일부는 욕설을 하는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이날 동양그룹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 김대성 운영위원장 겸 수석대표는 “1심에서는 사기 시점을 2013년 2월 22일로 판단했는데 항소심은 8월 20일로 판단했다”며 “현재현 회장이 한 달 전에야 법정관리를 알았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격분했다.
김대성 대표는 “사기 시점을 이렇게 늦추면 피해액은 2000억원도 안될 것이고 민사소송에서도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며 “오늘 판결을 보고 진짜 대한민국이 법치주의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다른 한 피해자 역시 “2013년 3월에서 8월초까지가 가장 판매가 많이 이뤄진 기간”이라며 “이 기간이 사기로 인정되지 않아 현재현 전 회장에게 크게 유리해졌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