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농협·롯데카드, 개인정보유출 소송 지연 ‘눈총’
KB·농협·롯데카드, 개인정보유출 소송 지연 ‘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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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 발생 1년 반 지났지만 지지부진…‘부메랑’ 될 수도
▲ 지난해 초 신용카드 정보 등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돼 파문의 중심에 섰던 KB국민카드·NH농협카드·롯데카드 3사에 대한 민·형사 재판이 사건 발생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지난해 1월 KB국민카드·NH농협카드·롯데카드 3사에서 1억4000만 건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돼 전국이 들썩인 지 1년 반이 흘렀지만, 아직도 피해 보상은 물론 소송마저도 카드사들의 시간 지연 전략으로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개인정보유출 사태의 중심에 있는 카드3사는 지난달 27일로 예정됐던 형사재판 첫 공판준비기일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해 결국 7월 1일로 한 달여 넘게 미뤄졌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카드3사 측 변호인 일부가 기일에 임박해 선임돼 공소사실 등에 대한 검토시간 확보차 법원에 연기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월 28일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 부장검사)는 고객 정보를 유출한 카드사 3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해 지난달 27일로 공판준비기일이 예정된 바 있다.

카드3사는 각자 또는 공동으로 현재 수십여 건의 민사 재판을 진행 중이지만, 검찰의 기소에 따른 형사재판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이 쏠려 왔다.

하지만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민사 소송의 현황, 기소까지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 등에 대한 비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번 공판준비기일 연기까지 맞물리자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카드사들의 ‘시간지연 전략’이 다시 뭇매를 맞을 태세다.

◆수 만명 손배소 제기에도 진행 더뎌
현재 카드3사는 각자 또는 공동으로 수십여 건의 손해배상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원고수 4만5000여명으로 가장 큰 규모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국민변호인단, 2500명을 데리고 1·2차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을 포함, 총 20만명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된 소송만 90여건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손해배상소송들의 소송가액만 총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8일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알려진 지 1년 반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대부분의 민사 재판에서는 그간 변론이 몇 차례 열린 것 외에는 별 다른 진척 사항이 없는 실정이다.

국민변호인단과 법무법인 바른 등은 카드사들이 원고의 변호사 소송위임에 대한 입증자료를 요구하면서 1년 반 동안 변호사를 위임하기 위한 확인 근거를 마련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소송을 위임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카드사 홈페이지 내 개인정보 유출 현황 화면을 캡처해 제출하거나 주민등록증 사본을 내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 컴퓨터 활용에 익숙하지 않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이 작업만도 녹록치 않다.

국민변호인단은 이에 지난 4월 1일 NH농협카드를 상대로 한 소송의 1차 변론에서도 이 같은 어려움을 전하며 입금내역으로 대신할 수 없는지를 문의했지만, 재판부는 캡처본을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를 거부했다.

국민변호인단에 따르면 워낙 큰 단체소송이다보니 원고 4만5000여명 중 아직 캡처본이 확보되지 않은 피해자들은 1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국민변호인단 박영주 변호사는 “카드사들이 국민변호인단에 변호인 자격으로 참가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피해자들이 변호인으로 추인했다는 위임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는 명백한 시간 끌기”라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바른도 2500여명 규모로 총 6건의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무법인 바른이 지난해 9월 제기한 1차 소송에서는 KB국민카드 812명, 농협은행 545명, 롯데카드 628명 등 총 1985명이 원고로 참가했고, 지난 4월 제기한 2차 소송에서는 KB국민카드 230명, 농협은행 142명, 롯데카드 152명 등 총 524명이 원고로 참가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바른의 1차 소송이 제기된 지 9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역시 진행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법무법인 바른 측에 따르면 카드사들은 이미 검찰과 금융감독원 조사를 통해 죄목이 명확히 밝혀진 보안 담당자들을 7월에 다시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요청했다. 이미 조사가 끝난 사람들을 민사 재판에 다시 부르는 행위에 대해 법무법인 바른 측은 “카드사의 의도적 재판 지연이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 국민변호인단, 법무법인 바른 등 수 만여 명의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변호인들은 카드사들이 위임 사실의 증명 등을 까다롭게 요구하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형사재판 공판준비기일마저 카드사들의 요구로 한 달여 연기됐다. 사진 / 홍금표 기자

◆카드사들,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완성 노리나
이처럼 카드사들의 재판 지연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은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3년에 불과해 재판이 지연될수록 추가 소송 제기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로 규정돼 있다. 손해배상청구권은 둘 중에 하나만 성립되도 소멸된다.

지난해 1월 8일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이날이 전 국민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손해배상을 받지 않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2017년 1월 8일까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카드사들 입장에서는 소송이 지연될수록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 시점이 가까워지게 되고, 추가로 소송을 제기당할 우려가 적어지는 효과가 있다.

당연하게도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 역시 소송 장기화로 인해 피해 보상이 미뤄진다. 1심에서 불리한 판결이라도 나올 경우 카드사들이 항소에 상고까지 진행할 것이 자명한 마당에 이미 사태 발생으로부터 1년 반이나 지났는데도 별다른 진척 사항이 없는 것을 감안해보면 최종 보상은 수 년이 지나서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바른 측은 지난달 1일 ‘2차 소송 제기 완료’라는 공지를 통해 “이번 사건은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의 유출과 8천만명 분의 시중 유통이 확인된 만큼 승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도 “1심 판결 선고에는 수 개월 내지 1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소송뿐 아니라 KB국민카드, 농협은행은 피해자들의 집단분쟁조정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국민변호인단은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집단분쟁조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피해자 5만여명을 대리하고 있는 원희룡 전 의원과 사법연수원 43기 변호사들은 “개인정보 집단분쟁조정은 법에서 명시적으로 두고 있는 개인정보유출 피해구제 제도”라며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집단분쟁조정절차에서 조정이 성립되면 집단분쟁조정절차에서 조정이 성립되면 조정위원회는 카드사 등에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계획 마련을 권고할 수 있어 보상의 효력이 전체에 미칠 수 있지만, KB국민카드와 농협은행은 이에 불응했다.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는 강제조정권이 없어 카드사가 응하지 않으면 조정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어 신청에 불응할 수 있다.

◆합수단 “카드사 과실 분명”…불구속 기소
한편 카드사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법적인 책임이 없고,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대치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4월 카드3사를 불구속 기소한 합수단은 신용평가업체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직원 박모 씨가 2012~2013년 KCB의 카드 도난·분실, 위·변조 탐지시스템(FDS)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해당 카드사 3곳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동안 고객 정보를 빼낸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씨는 이를 대출알선업자에게 넘겨 수 천만원을 챙겼으며, 박 씨와 대출알선업자 등은 지난해 10월 3년 이상의 실형이 이미 확정돼 복역하고 있다.

합수단에 따르면 박 씨는 보안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은 컴퓨터에 USB 저장장치로 개인 정보를 내려받았다. 합수단은 이 과정에서 카드사와 카드사 직원들이 고객들의 개인정보 파일을 적절히 관리·감독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암호화해놓지 않는 등 사고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KCB직원들이 사용한 컴퓨터에 USB를 통한 자료유출을 방지하는 프로그램이 없는데도 점검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나 유출된 개인정보 목록에는 다른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다르게 성명과 주민번호뿐 아니라 카드번호와 카드한도액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합수단은 카드사 3곳이 개인정보 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적·관리적 및 물리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고객 개인정보가 유출되도록 했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카드사들 “법적 책임 없다” 해명에 빈축

▲ 지난해 1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3개 카드사 대표가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병익 농협카드 부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현재 카드사들은 앞에서는 사과하고 뒤에서는 소송을 지연시킨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카드사들은 본인들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임을 호소하고 있어 향후 이 부분을 중심으로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제3자에 의한 정보유출 사건에서는 해당 회사도 피해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검찰의 기소가 1년 3개월이나 걸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카드사의 주장처럼 비밀번호나 본인인증코드(CVC)등은 유출되지 않아 직접적인 피해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다만 잇따라 징계 등의 철퇴를 맞은 카드사들이 시간을 끌면서 본인들이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사들은 3개월간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고 카드3사와 KCB 사장은 즉시 사퇴했다.

롯데카드에는 과징금 5000만원과 과태료 600만원 및 박상훈 전 대표의 해임 권고, NH농협카드에는 과태료 600만원과 손경익 전 분사장에 3개월 직무정지 내려졌다. 관련자 40여명도 중징계를 받았다. KB국민카드는 아직도 징계수위가 결정되지 않았다. 사태가 알려진 즉시 사장들은 국민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죄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카드사들에 대해 “금융당국의 잇단 징계에는 반발도 하지 않으면서 정작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조차 쉽게 해주지 않겠다는 심보가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한편 카드사들이 이번 형사재판에서 무죄 등 유리한 결과를 받아들면 지체되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민사 소송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이는 민사소송이 잇따라 지연되면서 법조계 등에서도 전망한 바 있다. 민사소송이 뒤로 미뤄질수록 형사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카드사들의 노림수가 형사재판을 통한 ‘뒤집기’라는 얘기마저 나온다.

반면 재판부가 합수단의 수사처럼 카드사의 관리의무 소홀을 인정해 책임 소재가 명확히 드러날 경우 피해자들의 개별 입증 과정이 한층 수월해 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경우 소송 지연 전략은 결국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셈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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