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하면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과정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번 거부권은 박 대통령이 임기 중 국회에서 통과한 법안 가운데 첫 행사다.
박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한 이유에 대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된다고 밝혔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의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압박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한 승부수라는 관측도 나온다. 집권 3년차 중반에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 최근 메르스 사태와 더불어 또다시 밀릴 경우, 국정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박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박계 지도부를 견제하고 공천에서 ‘친박 대학살’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레임덕 막기 승부수?
메르스 부실대응, 인사실패, 당·청 간 불통 등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까지 떨어져 여권 전체가 커다란 위기에 당면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취임 이후 ‘증세 없는 복지 반대’, ‘고고도사일방어체제 도입’, ‘법인세 인상론’ 등을 언급하며 청와대, 여당과 반대되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에 박 대통령은 물론, 당내 친박계 의원들도 시종 개인 정치를 해왔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당내 갈등으로 인해 여론의 관심도를 올려놔 일단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간 상태지만, 장기화될 경우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은 동반 추락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
대통령제에서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가운데, 당과의 균열이 계속 벌어지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레임덕 현상이 앞당겨질 수 있다.
특히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논란 이후,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두고 고조되고 있는 갈등이 결국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집권 여당에 대한 장악력을 타겟으로 둔 싸움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즉, 청와대와 친박계의 당장의 타겟은 유 원내대표지만 이후 김무성 대표가 최종 타겟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당내 선거에서 비박(비박근혜)계 진영이 확대됨에 따라 김무성 대표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또 유 원내대표도 ‘신보수’ 행보를 걸으면서 차기 대권 후보로 부각돼 청와대와 친박계가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와 관련해 어떠한 결론을 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당내 주도권을 어느 계파가 쥐느냐에 따라 내년 총선 공천에서 누가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계파는 당의 정체성은 물론 차기 대선 구도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초반에 유 원내대표를 향해 거센 공세를 펼쳤지만 유 원내대표가 사실상 버티기 모드에 들어가면서 기세가 약해졌다. 당내 친박계 의원수는 30여명으로 전체 새누리당 의석수 160석의 20%에 불과하다.
때문에 유 원내대표가 앞서 의원총회를 통해 재신임을 받은 만큼, 자진 사퇴가 아닌 이상 사퇴할 가능성은 낮다.
또한 국민 10명 중 6명 정도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내일신문이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1일 공개한 7월 정례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이에 동의한다는 의견은 40.0%,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50.9%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37.9%가 공감한 반면 ‘공감하지 못한다’는 56.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 동의 여부에는 ‘사퇴해야 한다’가 28.3%, ‘사퇴할 필요 없다’가 57.3%로 두 배 이상 격차를 보였다.
특히 박 대통령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도 ‘사퇴불가’가 54.8%로 ‘사퇴동의’ 31.6%보다 23.2%p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박 대통령의 주장대로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을 위배했냐는 질문에는 44.6%가 ‘위배안됨’이라고 답했으며 32.8%가 ‘위배된다’고 응답했다.
◆野 “朴대통령 발언, 선거법 위반 소지 있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야권에서는 일제히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라며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할 것이다”라고 여야 정치권을 압박했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1일 국회 브리핑에서 “우리 당은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중앙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질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내년 총선이 10여개월밖에 남지 않아 선거에 임박했고, 국무회의 발언으로 미리 예정되고 계획된 발언”이라며 “발언 원문에서 누군지 지칭은 되지 않았지만 이후 새누리당 의원총회, 보도 등을 보면 지목된 사람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라고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정치연합은 이같은 판단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판단한 2004년도 헌법재판소 결정을 참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재성 사무총장은 2일 오전 중앙선관위를 찾아 이 발언에 관한 유권해석 요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으로 활동 중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법적으로 탄핵 사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왜 이 점을 지적하지 않지.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 이건가”라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 제9조 1항에 따르면,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특정인에 대한 심판을 국민에게 요구하고 나선 것은 선거법 위반의 소지도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구별해 주시기 바란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박근혜 대통령께서 싸워야 할 대상은 메르스와 민생파탄이지 국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도 “조기 레임덕을 우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한 노회찬 전 의원은 “김무성·유승민 체제인 새누리당 내부 자체가 일종의 여소야대다. 지도부와 의원들 다수가 이제 비박인 사태에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소수파로 탈당 요구를 받을 가능성 조차 있는 상황”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특히 노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정말 충격적”이라며 “유승민 원내대표가 하극상을 한 것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 당시 대표가 이명박 정부와 세종시 문제로 부딪힌 걸 보면 배신의 정치와 자기 정치의 원조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야말로 자기 정치를 하고 대통령의 뜻과 달리 배신의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며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오만의 극치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다만 새정치연합 이상민 의원은 1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선거법 위반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 정치인의 발언을 가지고 말꼬리 잡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건 가능하면 피하는 게 좋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거의 한국 정치 미개함을 대통령께서 몸으로 보여주셨다, 말씀으로 보여주셨다”며 “새누리당의 소위 친박계 의원들이 조폭의 행동대원들처럼 달려들어서 보복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야말로 아주 추잡한, 저급한 조폭문화를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국회와 대통령은 견제와 균형관계”라면서 “대통령에서 국회를 제압하고 대통령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라고 하는 건 그거야말로 헌법에 반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사포커스 /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