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로 선임되면서 ‘롯데그룹 원톱체제’가 시작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아버지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입지가 복병으로 남았다. 게다가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한 주동 인물로 알려지면서 ‘적통성’ 또한 흔들리는 분위기다.

◆ 사실은 차남의 쿠데타?
애초 ‘아버지를 등에 업은 신동주 전 부회장의 쿠데타’로 보도됐던 사건의 일말을 살펴보면, 신 총괄회장은 지난 27일 신 전 부회장과 함께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롯데 본사로 갔다. 차남 신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하기 위한 의중으로 풀이된다. 실제 일본에 도착한 신 총괄회장은 이날 자신을 제외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에 대한 해임을 발표했다. 차남인 신 회장도 해임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신 회장의 빠른 진화로 상황은 역전됐다. 신 회장은 아버지가 해임을 지시하자마자 핵심 관계자 몇몇을 대동하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결정은 정식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 결정이라며 항변했다. 여기에 더해 아버지 신 총괄회장을 오히려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는 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실상은 차남의 ‘쿠데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업계는 신 총괄회장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신 전 부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의 모든 직책에서 해임시키는 등 신 회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돌연 장남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눈치다. 하지만 롯데그룹과 외신에 따르면 이번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은 예견될만한 것이었다.
당초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를 비롯 몇몇 계열사 이사직에서 해임한 것은 일시적인 기간에만 제한되는 결정이었다. ‘완전한 아웃’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형이 해임되자 마자 신 회장은 일본 롯데의 상징에 해당하는 지바 롯데마린스 구단을 방문하거나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롯데그룹의 식품 글로벌 전략회의에 참석해 ‘원 롯데, 원 리더’를 강조하는 등 아버지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포스트 신격호’ 체제에 쐐기를 박았다. 신 총괄회장은 이 같은 신 회장의 행동을 언짢아하던 중 국내에서 신동빈 회장의 원톱체제가 기정사실화 된 것처럼 보도되자 곧바로 일본행을 택했다. 차남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함이었다.
이번 사태는 신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가업 승계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 되면서 앞으로 롯데그룹 승계권을 가져오기 위한 롯데가 2세 장남-차남 간 파란이 예고됐다.
◆ 맏딸 신영자, 캐스팅보트 입지
신 전 부회장의 ‘신 회장 밀어내기’가 사실상 불발되면서 주목을 받는 사람은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다. 신 사장이 보유한 롯데 계열사 지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신 사장을 롯데그룹 승계의 ‘캐스팅 보트’를 쥔 인물로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신 사장은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에도 직접 관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이미 신 전 부회장 쪽에 섰을 것으로 관측된다.
신 총괄회장과 신 사장은 롯데그룹 내 주요 계열사인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신 총괄회장과 신 사장이 보유한 롯데제과 지분은 각각 6.85%, 2.52%다. 롯데쇼핑 지분의 경우 각각 0.93%, 0.74%를 가지고 있고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은 각각 13.45%, 13.46%로 비슷한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신 총괄회장과 신 사장이 각각 1.3%, 2.66%를 갖고 있다.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은 각각 2.83%, 5.71%를 보유했다. 이외 계열사들의 지분을 보면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은 롯데푸드의 지분을 1.96%로 똑같은 수준으로 보유했고, 롯데상사 8.04, 8.4%를, 롯데건설 0.37%, 0.59%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미세한 차이지만 신 회장이 각 계열사들의 지분을 조금씩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향후 신 총괄회장과 신 사장이 신 전 부회장에 지분을 몰아줄 경우 상황은 반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 사장은 신 총괄회장과 첫째 부인인 노순화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딸이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자리에 앉아 장학재단을 통해 그룹 계열사 지분을 쥐고 그룹 전반에 우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사실 롯데그룹 내에서도 입지가 두터운 신 사장의 은근한 신 전 부회장 밀어주기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신 전 부회장이 한국 내에서 입지가 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 전 부회장이 한-일 롯데를 통째로 경영하게 될 경우, 당분간 신 사장은 신 전 부회장과 한국 롯데 경영을 양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 정작 신 전 부회장이 이번 승계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신 사장은 신 회장 쪽으로부터 모종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향후 신 총괄회장과 셋째 부인 사이의 딸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까지 지분 경쟁에 뛰어들 경우, 롯데그룹의 승계전쟁은 더욱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 승계전쟁의 맹점, 광윤사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는 신격호, 신동주, 신동빈, 시게미쓰 하츠코(신격호 회장의 둘째 부인)를 비롯해 미도리상사, 임원지주회 그리고 ‘광윤사’로 구성돼 있다.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 가장 먼저 물 밑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바로 광윤사다. 광윤사는 1967년 설립된 비상장사로 자본금 규모는 2000만엔(한화 약 2억400만 원)에 직원수는 3명에 불과하다. 수익은 롯데, 롯데상사, 롯데아이스, 롯데물산과의 내부거래를 통해 올린다.
하지만 광윤사가 보유한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은 120만주나 된다. 이는 일본 롯데홀딩스 발행주식이 총 434만주임을 감안할 때 27.6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즉 ‘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한·일 롯데 계열사’라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작은 회사지만, 롯데그룹 전반을 관통하는 ‘노른자위’다.
비상장사이기 때문에 광윤사의 주주구성과 지분 비율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현재 광윤사의 지분 12%를 보유한 우리사주가 신 회장 세력으로 알려진 점, 광윤사 이사들이 신 회장쪽에 서기로 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판세가 신 회장 쪽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신 총괄 회장이 직접 우리사주와 이사회 설득에 나설 경우 상황이 역전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 신격호 한 마디에 달렸다
롯데그룹 장남과 차남의 승계전쟁을 바라보는 일본 외신의 관심도 뜨겁다. 2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미 1990년대부터 신 전 부회장은 일본을, 신 회장은 한국을 담당하며 분업을 해왔지만 신 전 부회장이 2013년부터 한국의 롯데제과 주식을 조금씩 매입하고 나서면서 형제간 갈등이 불거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향후 승계전쟁이 정점에 달할 시점은 주주총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주주총회 개최 일정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번 이사회 결정에 반발했던 신 전 부회장 측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열린 임시이사회 결의에 따라 롯데상사 대표이사, 롯데 이사,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해임됐었다. 이날 산케이 신문은 신동주 전 부회장의 해임에 대해 ‘창업자 장남, 경영진에서 추방됐다’는 내용을 골자로 보도했다.
이에 재계는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차기 대권을 잡는 것 아니냐는 예측을 내놓았지만, 지난 1월24일 신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왕양 중국 부총리 초청 오찬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롯데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고 한국 롯데 경영만 맡게 될 것”이라면서 “일본 롯데는 전문경영인인 쓰쿠다 다카유키 롯데홀딩스 사장이 계속 맡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결국 지난 15일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 참석한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으로 그동안 업계 내외에서 신 회장이 후계 적격자로 인정받았다는 소문은 일축되게 됐다. 다만 신 총괄회장이 94살의 고령인데다 지병으로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승계전쟁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장남을 향한 신 사장의 ‘보태주기’에다 신 총괄회장의 ‘몰아주기’까지 가세할 경우 신동빈號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시사포커스 / 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