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보훈처가 지난 4월 35대 회장으로 선출된 재향군인회 조남풍 회장과 관련된 잇단 의혹에 대해 감사를 벌여 인사 전횡 등의 혐의를 확인하고 조치를 내렸지만, 금권 선거 의혹에 대해서는 한 발 비켜가는 모습을 보여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3일 재향군인회에 따르면 최근 국가보훈처는 조남풍 회장을 향해 제기된 잇단 의혹들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국가보훈처는 발표를 통해 “조남풍 신임 향군회장에 대한 내부직원의 진정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가 6월 26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특별 감사를 벌인 끝에 확인한 조남풍 회장의 혐의는 주로 인사와 관련된 부분이다.
감사 결과 조남풍 회장은 회장 선거에 도움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모 씨를 지난달 경영본부장 자리에 앉히고, 나이제한 규정을 무시하거나 공채를 거치지 않고 임직원 12명을 채용하고 산하업체 임직원 13명을 자리에 앉힌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부분은 조남풍 회장의 선거캠프에서 일한 사람들로 알려졌다.
국가보훈처는 “재향군인회가 인사 규정을 위반하고 채용한 25명의 임용을 전원 취소하고 인사책임자 2명을 징계토록 처분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향군인회가 본회 사무실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향군법 등의 규정을 무시하고 특정 건물에 대한 5년치 장기 임차계약을 추진한 사실도 드러났다.
◆규정 무시한 임용 25건 모두 취소
특히 국가보훈처가 특별 감사를 통해 조남풍 회장과 가까운 사이인 조모 씨의 경영본부장 임명이 부당함을 확인한 것은 노조 측이 그간 꾸준히 의혹을 제기해 온 데 따른 것이다.
이미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6일 중간발표에서 조남풍 회장이 공개채용 규정을 어겨 조모 씨를 경영본부장으로 특별채용하고 보훈처 승인 없이 재정예산실장(1급) 직을 신설하는 등 수 건의 규정 위반을 적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논란이 불거지자 조모 씨는 지난달 9일 경영본부장 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조남풍 회장은 지난 4월 회장에 당선된 후 재향군인회에 800억원 가까이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모 씨 회사에서 사내이사로 재직 중인 조모 씨를 지난 6월 경영본부장으로 임명해 논란을 자초했다. 조모 씨는 최모 씨의 친척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조모 씨가 채용되는 과정에서도 내부 절차가 무시됐고, 조모 씨는 재향군인회에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최모 씨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도록 피해금액을 줄이는 등 소송 서류까지 꾸민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최모 씨는 2011년 당시 재향군인회 유케어사업단장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재직 중 4개 회사에서 발행하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대해 재향군인회 명의로 지급을 보증해 모두 790억원의 손실을 끼쳤다.
이 중 214억원을 회수한 재향군인회는 아직 회수하지 못한 576억원을 두고 최모 씨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최모 씨는 1심에서 32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인정돼 3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2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번에 경영본부장으로 임명된 조모 씨는 임명되자마자 회수한 금액을 45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부풀려 피해 금액을 축소한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해 최모 씨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도록 시도했다.
이 같은 사실을 접한 노조 측은 조남풍 회장에 대한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최모 씨가 스스로의 구명을 위해 조남풍 회장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하고 측근인 조모 씨를 재향군인회에 보낸것 아니냐는 얘기다. 최모 노조 측에 따르면 지난 5월 27일 최모 씨의 형이 조남풍 회장을 면담한 직후 조모 씨의 경영본부장 임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재력가인 최모 씨가 재향군인회장 선거에서 조남풍 회장에게 막대한 자금을 대고 이 같은 지원을 얻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조남풍 회장은 지난달 7일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자금 상태가 고갈돼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았고 최모 씨 등 여러 명에게 돈을 빌린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금권 선거 부실 감사 논란
게다가 이 자금은 조남풍 회장이 선거 과정에서 사용했다고 밝힌 만큼 다른 증거들과 맞물려 금권 선거 의혹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착 보훈처는 이번 특별 감사에서 선거 관련 의혹은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밝혀 부실 감사 논란은 물론이거니와 면죄부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한겨레>에 따르면 노조 측은 조남풍 회장 후보 캠프 사람들이 재향군인회 산하 기업 사장 인사 청탁 명목으로 수 천만원의 돈을 받고 투표권을 지닌 대의원들에게 수 백만원 씩의 돈을 뿌린 정황이 기록된 문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에는 ‘1인 500만원’이라는 내용과 함께 날짜별로 장소와 시간, 전화 번호 등이 적혀 있다. 노조 측은 이를 두고 대의원이 속한 지부명, 금품 전달 장소, 시간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서에는 ‘최초 208명 계획, 230~240명 살표’라는 표현도 기재돼 있고, 끝에는 ‘특이사항 : 전달 후 권모 비서실장에게 업무 완료 (문자) 결과 보고’라는 내용도 있다. 조남풍 회장 후보 캠프의 권모 비서실장은 현재 재향군인회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상조회 사장 인사건’이라는 소제목 아래에는 ‘5월 초-5천만’, ‘6월 12일 오후 5시30분 교대역 커피숍’, ‘충주호(관광선)’, ‘통일전망대’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노조 측은 이를 종합, 조남풍 회장 측이 재향군인회 산하기업인 상조회 등 산하기업들의 인사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고 이를 대의원들에게 나눠준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고 있다.
따라서 정황 증거도 확보된 마당에 한 달여 간 국가보훈처가 특별 감사를 진행하면서 금권 선거 의혹 부분을 감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금품 살포에 대한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녹취파일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아예 살펴보지도 않은 것은 보훈처의 ‘몸 사리기’ 아니냐는 얘기다.
국가보훈처 측은 현재 이에 대해 “수사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논란이 불거지자 “감사의 범주 안에는 행정과 인사, 예산 부분은 들어 있지만, 선거와 관련된 것들은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계좌추적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얘기다.
◆면죄부 부여 논란까지
하지만 재향군인회 노조 측은 “이번 감사에서 향군 회장 선거 과정 비리 의혹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조남풍 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반발, 청와대에 진정을 넣고 향후 직접 검찰에 조남풍 회장을 고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특별 감사 결과가 오히려 더 큰 태풍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장성현 향군 노조위원장은 “조남풍 회장이 선거 때 최모 씨측으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받아 전국 각지의 대의원 200여명에게 돈봉투를 돌리는 불법적인 매수행위로 당선됐다는 의혹이 있는데 이번 감사에서는 이 부분이 빠졌다”고 비판했다.
보훈처의 눈치보기로 부실 감사가 이뤄졌다는 주장인 셈이다. 의혹이 제기된 만큼 향군을 관리·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는 보훈처가 조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부실 감사론의 골자다.
이에 따라 결국 공은 검찰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가보훈처 측은 검찰 고발이나 수사 의뢰 가능성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감사결과 발표가 끝이 아니다”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향군 정상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뭐가 좋을지를 판단해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재향군인회 내부적인 의견들을 듣고 직무정지나 검찰 수사 의뢰 등 가작 효과적인 단계에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향군인회 노조 측은 “회장 금권 선거 의혹이 빠진 것은 본질을 외면한 부실 감사”라며 “청와대에 진정성을 제출하고, 다음 주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감사원의 감사도 요청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여기저기서 엄정 처벌 한 목소리
부실감사 논란이 확산되자 국가보훈처를 향한 질타는 세를 더하는 모양새다. 재향군인회 노조는 “국가보훈처는 내부 직원들의 진정서를 지난 6월 11일 접수했음에도 감사에 착수한 것은 26일로 15일이나 지난 후”라고 비판했다.
언론의 질타도 이어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국가보훈처의 특별감사 결과 조남풍 회장의 비리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법 선거 운동 의혹에 관해서는 밝히지 않아 조남풍 회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취지로 국가보훈처를 질타했다.
감사 결과에 따른 처분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조남풍 회장은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부당 임용자들의 임용 취소와 담당자의 징계로 마무리된 것이 보여주기식에 그친다는 얘기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국가보훈처의 재향군인회 감사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는 상식의 궤를 한참 벗어났다”면서 “이럴 바에야 무엇 하러 감사를 했느냐는 비판과 함께 구조적인 유착 의혹도 피해가기 어렵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국민일보>는 “국가보훈처는 마땅히 조남풍 회장을 직무정지토록 하고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면서 “국내 최대 안보단체의 장으로서의 자격이 없고, 선거 비리와 매관매직 의혹이 불거진 이상 보훈처와 수사기관이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엄정처벌을 촉구했다.
특히 육사 18기인 조남풍 회장이 육사 27기인 박승훈 국가보훈처장의 선배인 점이 국가보훈처의 미온적인 태도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이를 지적한 한 언론 역시 “전형적 선거 비리, 인사 비리가 드러난 만큼 형사고발과 직무 정지 등 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향군인회의 한 직원은 “부패의 악순환을 뿌리뽑지 않는 한 향군의 미래는 없다”며 “강력한 법적 조치로 부패와 비리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