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의 교통대금 지불을 맡고 있는 ‘티머니’ 카드로 널리 알려진 한국스마트카드(KSCC)의 1대 주주 서울시와 2대 주주 LG CNS가 새 사장 선임을 놓고 수 달 째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주총에서 최대성 현 대표의 연임 여부를 두고 마찰을 빚었던 서울시와 LG CNS의 입장 차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성 대표는 지난 주총에서 연임이 무산돼 현재 직무대행 신분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서울시는 한국스마트카드 지분 36.15%을 보유하고 있는 1대 주주이고 LG CNS는 32.91%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다. 당초 한국스마트카드는 지난 3월 31일 주총에서 최대성 대표를 재선임할 예정이었지만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해 이 같은 계획이 무산됐다. 서울시와 LG CNS를 제외한 솔루션사와 신용카드사 지분은 모두 30.93%다.
대표 선임을 두고 양측이 갈등을 빚은 배경은 서울시 측이 시에서 추천하는 인사로 새 대표를 선임하겠다고 하면서부터다. 서울시와 LG CNS 측은 이를 두고 협의나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딱히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부터 서울시 측은 최대성 대표의 임기를 3년이 아닌 1년만 연장하되 그 이후부터는 서울시가 추천한 인사를 선임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후에는 서울시와 LG CNS가 대표를 번갈아 임명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주총 직전 실무진에서는 임기 3년 연장의 물밑 합의가 이뤄졌다가 서울시의 윗선의 요구로 타협이 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최대 7인까지 임명할 수 있도록 한 이사 중에서 서울시 몫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LG CNS 측은 이미 서울시가 1대 주주로서 어느 정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공공성도 확보돼 독점 경영의 우려도 없다며 대표 선임과 관해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정관 변경을 통해 서울시가 상임이사 1인을 더 추천할 수 있게 되면서 이사회가 양측의 2명씩으로 이뤄져 있고 감사도 2010년부터 서울시에서 선임하고 있는 등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시,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강공 드라이브
대표 선임을 두고 갈등이 표면화된 모양새지만 사실 양측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부터 서울시는 교통카드시스템이 공적인 업무 분야이기 때문에 공공의 관여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 LG CNS 측은 2007년부터 영업이익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권을 쉽사리 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서울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2004년 새로운 교통카드사업의 운영기관으로 LG CNS 컨소시엄이 주도한 특수목적법인(SPC) 한국스마트카드를 선정하고 사업권을 이양했다. 컨소시엄은 사업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한국스마트카드 지분 35%를 서울시에 기부채납 형식으로 무상 양도했고, 서울시는 추가 지분 1.16%를 확보해 1대 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대주주는 서울시지만 그간은 사실상 민간회사로 운영돼 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에 공공의 영역인 대중교통카드 사업이 민자사업으로 추진돼 민자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우려와 논란을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민들의 교통 복지를 책임져야 할 교통카드사업이 대기업의 독점을 보장하는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 정산 데이터의 불투명성, 충전선수금과 이자금의 불투명한 처리 의혹 등이 있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여론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공공부문 민영화 폐해라며 공영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이에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후 2012년부터 서울시는 ‘서울 교통카드사업 혁신 계획’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LG CNS 측에 독립성 강화, 서울시의 경영개입 확대, 장기 미사용 충전 선수금의 잔액 및 충전 선수금 이자의 사회 환원, 교통카드 정산 투명성 제고, 정산 업무를 제외한 교통카드 사업의 경쟁체제 도입 등의 방안을 요구했다.

◆불만스러운 서울시 “공공 관여 확대해야”
2기 사업이 개시된 2013년부터 3개 사업 분야별 경쟁체제가 도입되고 미사용 충전금의 사용권을 서울시나 시가 지정하는 제3자에게 귀속되도록 규정이 변화했다. 2014년에는 상임 및 비상임이사 2명을 서울시가 추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러 변화에도 아직까지 서울시 측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서울시는 LG CNS 측에 한국스마트카드의 경영에 있어서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전임 서울시장들이 너무 효율성 측면에서 접근한 면이 있다”면서 서울시 내부에서 시민들을 위해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전했다. 시 추천 인사의 대표선임 요구도 이 같은 방침의 연장선상이라는 얘기다.
실제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2004년 한국스마트카드와 서울시가 맺은 사업시행 합의서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민주통합당 변재일 의원은 “서울시가 회사 경영에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아 대표이사와 이사, 감사 등 14명 임원의 대부분에 LG 출신이 선임됐다”고 지적하고 “독점적 지위 보장 및 지적 재산권의 소유 포기 등 LG CNS에 유리한 내용만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LG CNS 등에게 부당 이익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사업자 선정 당시에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의 사위가 LG가 3세인 구 LG투자벤처(현 LB인베스트먼트) 구본천 사장이라는 점 때문에 LG CNS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지하철 수집단말기 공모사업과 관련해서는 한국스마트카드가 한화CNC와 법적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이 직위해제 되는 등의 잡음도 있었다.
또한 계약만료 2개월 전까지 상호합의하고 재계약이 합의되지 않으면 서울시의 결정에 따르기로 돼 있다는 내용도 문제가 됐다. 현실적으로 막대한 시스템 구축 비용과 수 개월이 걸리는 인수 기간을 감안하면 2개월 전이 지나면 계약을 파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영구적인 운영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상의 한국스마트카드 감사보고서(연결 기준 요약손익계산서)에 따르면 한국스마트카드는 설립 초기인 2004년 매출 96억원에 영업손실 120억, 당기순손실 114억을 기록하는 등 2006년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2007년 매출 655억원, 영업이익 67억원, 당기순이익 12억으로 흑자전환하기 시작했다.
이후 매출은 꾸준히 늘어 2011년 1829억원으로 고점을 찍었다가 지난해까지 17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2010년 110억원으로 처음으로 100억원대를 돌파하고 이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50억원으로 전해의 107억원에 비해 반토막났다. 당기순이익도 마찬가지로 2010년 139억원으로 고점을 찍었다가 서서히 내리막을 걷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79억원이었다.
사업 초기 비용 등을 감안해 설립 초반은 제외하더라도 2007년 흑자 전환한 시기와 지난해를 비교해보면 매출은 3배 가량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7배 가까이 증가했다. LG CNS가 공공의 영역을 독점 운영함으로써 큰 이득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교통카드시스템은 공적인 업무 분야로 공공(서울시)의 관여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서울시 추천 인사를 통해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LG CNS “이미 공공성 담보되고 있다”
반면 LG CNS 측은 자신들의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마련한 교통카드 통합 시스템 구축 아이디어로 선정돼 수 년여 간의 노력 끝에 사업을 안착시켰는데 이제와서 서울시가 영향력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며 허탈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 CNS 측의 근거는 전문성과 경영 효율성을 위해 민간 경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핀테크 시장에 대응하고 해외 시장 개척 등을 위해서는 현 경영진의 안정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얘기다. 최대성 현 대표는 LG CNS 금융사업부 상무 출신으로, LG CNS는 조만간 티머니택시 앱도 론칭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LG CNS는 특히 지난 2003년 서울시가 내놓은 제안 안내서에 보장됐던 ‘경영 불간섭’ 규정이 2013년 2기 계약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를 지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1기 계약서에는 “서울시가 민간사업자에게 대표이사 선임과 이사회 과반수 유지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제안서에 따르면 서울시는 시민과 교통운영기관의 부담이 증가하거나 공익에 현저하게 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운영법인의 일반적인 경영 및 이윤추구 행위에 대해 간여(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LG CNS는 지난해 말 대형 로펌에 자문을 한 결과 이 규정이 2기 계약에서도 유효하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LG CNS 측은 서울시로부터 예산 지원도 받지 않면서도 이미 800억 규모의 기부채납을 하는 등 어느 정도의 공공성도 담보되고 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한국스마트카드는 “2013년 교통카드업계 최초로 스마트교통복지재단을 설립해 장기 미사용 충전 선수금 및 충전 선수금 발생 이자를 재단에 기부했다”며 공익성을 강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한국스마트카드 측은 “한국스마트카드에서 발생하는 대중교통 관련 모든 공공정보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서울시 등 해당 운송기관에 정기적으로 공유되고 있고, 지하철 9호선과는 다르게 이윤을 보장받은 적도 없다”면서 “시민편의 및 대중교통 혁신의 세계적 사례로 인정받아 해외에 수출되는 등 민관합작의 우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