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사장, 항명 사태에도 서비스 선택제 시행 강행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투자증권은 시행을 예고해 왔던 ‘서비스 선택제’에 대한 반발을 무릅쓰고 이날부터 제도 시행에 들어갔다.
서비스 선택제란 고객의 주식 위탁 계좌를 온라인 전용 계좌인 다이렉트 계좌와 전담 PB의 상담을 제공 받는 컨설팅 계좌 등 비상담·상담 계좌로 나누고 각각 수수료를 달리 부과하는 제도다. PB의 상담과 관리를 원하는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의 수수료를 차별화하겠다는 얘기다.
소액 투자자 이탈을 우려한 임직원들이 곳곳에서 반기를 들면서 제도 시행이 2주간 유예됐지만, 결국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주말 전산 작업을 마치고 이날부터 제도 시행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지점장 50여명이 지점장 협의체를 발족하는가 하면, 변동환 재경2지역사업부장과 최덕호 영남지역사업부장은 집단적 항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대기 발령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본사 팀장 30여명과 PB들도 잇따라 지지 성명을 내면서 내분이 심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임직원들, 취임 후 첫 집단 행동 나서
증권가에서 취임 이후 파격적 행보를 거듭해 온 주진형 사장은 안팎으로 숱한 비판에 직면하면서 수 차례 도전을 받아 왔다. 사내 편집국 신설을 둘러싼 내부의 차가운 시선이나 투자권유대행인들과의 재계약 조건 변경에 대한 국회의 질책 등이 그것이다. 일각에서는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공식적으로 지점장들이 협의체를 발족하거나 임직원들의 항명 사태가 가시화되는 것은 주진형 사장 취임 후 처음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주 대기발령 통보에 앞서 지난달 중순에도 지점장 두 명이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서비스 선택제는 주진형 사장이 과당 매매를 유도하는 증권사의 관행, 일명 ‘뺑뺑이’를 뿌리뽑겠다며 시행한 개혁 조치의 일환이다. 주진형 사장은 취임 후 지속적으로 수수료만을 노리고 소액 매매를 촉발시키는 행위의 폐단을 지적해 온 바 있다. 거래 횟수를 줄이자는 취지다.
주진형 사장은 “회사의 오프라인 주식 영업수익 80%가 연간 회전율 600% 이상인 고객 4000명 남짓에게서 나온다”면서 고객 신뢰와 이미지 회복, 관행 타파 등을 위해 이를 막기 위한 각종 장치를 꾸준히 도입해 왔다.
이 같은 취지의 서비스 선택제의 시행으로 이날부터 소액 투자자들의 비중이 높은 다이렉트 계좌의 수수료는 금액에 상관 없이 건당 6950원이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고객이 HTS(홈트레이딩시스템)을 통해 1000만원을 투자할 경우를 비교해 보면, 컨설팅 계좌를 선택할 경우 컨설팅 계좌 온라인 거래 수수료율인 0.195%를 적용받아 1만9500원을 내야 한다. 반면 다이렉트 계좌를 선택하면 1000만원을 투자할 경우 6950원을 낸다. 1억원을 투자해도 6950원이다. 소액 투자자 비중이 높은 온라인 계좌 고객 중 상담을 요하지 않는 고객을 별도로 다이렉트 계좌로 구분해 거래 대금이 많아질수록 수수료가 절감되는 구조를 짠 셈이다.
기존 HTS 이용 고객은 1000만원을 거래할 경우 거래 대금에 0.1%를 곱한 금액에 1950원을 더한 1만1950원을 내야 했다. 컨설팅 계좌를 선택하면 1만9500원으로 수수료가 늘지만 다이렉트 계좌를 선택하면 6950원으로 수수료가 줄어든다. 거래대금이 늘수록 다이렉트 계좌에서의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반면 거래 대금이 적어지면 다이렉트 계좌를 선택한 고객들의 수수료 부담은 상대적으로 늘어난다. 100만원을 투자해도, 50만원을 투자해도 수수료는 동일하게 6950원이다. 반면 컨설팅 계좌를 선택한 고객은 100만원을 투자하면 1950원만을 내고 50만원을 투자하면 975원만 내면 된다. 다이렉트 계좌와 컨설팅 계좌의 수수료 차이가 투자 금액에 따라 널뛰기 양상을 띄게 된다.
◆고객이탈·수익감소 우려에 반발 거세

문제는 임직원들의 반발이 상상 이상으로 거세지고 있고, 주진형 사장은 귀를 막아버렸다는 점이다. 한화투자증권이 제도 시행을 강행하면서 사실상 내년 초 퇴임이 확정된 주진형 사장의 레임덕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임직원들은 우선적으로 서비스 선택제가 시행되면 소액을 분할매수하는 투자자들이 건 마다 수수료를 내야 하거나 소액 투자자들의 수수료 부담이 늘어 소액 투자자들이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대부분 증권사들은 리테일 고객 확보를 위해 수수료 무료 등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고객을 상담과 비상담으로 구분하면 시장 상황이 악화될 경우 회사가 관리할 여지가 줄어들어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임직원들이 서비스 선택제에 대해 잇따라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은 수수료 수익 감소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주진형 사장은 이번 서비스 선택제 제도 도입의 배경을 “온라인 고객에게서 나오는 온라인 수수료 수익 전액을 직원의 실적으로 잡는 것은 모순”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증권가에서는 증권사 창구 직원 연봉의 20~30% 가량이 고객의 거래수수료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당장 밥그릇을 빼앗기게 된 직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대다수 고객이 비상담 계좌를 선택하는 상황이라면 리테일 직원의 인센티브가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상담을 선택한 고객의 비중은 1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이 대부분 기본급을 줄이고 영업에 따른 인센티브를 실질임금처럼 지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현장 직원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다.
지점장 50여명은 지난달 25일 성명을 내고 “고객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고객들과 영업 사원이 연쇄 이탈해 영업 기반의 심각한 손실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수료 수익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게 될 영업사원들의 이탈 우려는 심각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귀 막은 주진형 사장…사태 일파만파
여기에 주진형 사장의 일방통행식 의사과정이 겹쳐지면서 내분은 급기야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발족한 지점장 협의체는 피켓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향후 서비스 선택제 시행에 따른 대응과 수습 방안을 논의키로 했고, 사내 인트라넷에는 서비스 선택제 반대 움직임을 지지하는 성명이 잇따랐다.
하지만 한화투자증권은 반발이 확산되자 사내 인트라넷과 직원 이메일 계정을 막는 등 내부 소통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진형 사장은 지난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수수료 수익 감소를 우려하는 직원들을 “기득권을 놓기 싫어하는 직원”이라고 가차 없이 비판의 날을 세웠다.
더욱이 징벌성 조치를 차치하고서라도 주진형 사장은 이 게시글에서 최근 사실상 내년 3월 임기 만료가 굳어진 상황을 거론하며 “지도자 교체기간 중 기회주의적 출세주의가 기승을 떨게 돼 있다”는 언급을 남겼다. 임직원들의 단체 행동 등의 반발을 향후 새 체제가 들어설 때를 위한 포석으로 치부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서비스 선택제를 논의하던 임원 회의에서 주진형 사장이 “서비스 선택제를 하지 않으면 직원 100명을 자르면 된다”는 언급을 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이에 지난달 말 성명을 낸 본사 팀장들은 주진형 사장을 향해 “임직원의 생존을 담보로 협박하는 것”이라며 “더는 직원과 고객을 대상으로 리테일의 붕괴를 가져올 무책임한 실험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고객지향성 여부도 도마 위…고객 불안 가중

과연 고객 지향이라는 취지에 맞는 제도인지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여전하다. 이미 한화투자증권 내부에서는 서비스 선택제가 고객 신뢰 회복이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수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 주진형 대표가 시행한 조치인 리서치센터 야간 업무 확대나 매도 리포트 확대, 투자권유대행인 재계약 약관 변경 등은 내부 직원들의 반발에도 고객 지향성이 뚜렷했지만 서비스 선택제 도입은 일부 고객들의 수수료 부담 상향을 동반하는 만큼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내부에서는 서비스 선택제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다이렉트 계좌를 선택하는 고객들 비중이 많은 만큼 갑작스러운 새 제도 도입에 불안해하는 고객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수수료 부담이 늘어나게 될 고객들은 증권사를 옮겨갈지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지만, 가뜩이나 주진형 사장의 임기 만료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내홍에 따른 직원들의 이탈이 가시화될 경우 제도가 철회될 가능성도 존재하고 후속 보완 조치도 제대로 나온 게 없어 이마저도 갈피를 잡기 힘든 상황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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