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임형ISA 은행 허용 방침에 은행권·증권업계 희비 엇갈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국민재산을 늘리기 위한 ISA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은행권에 허용하지 않던 투자일임업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소위 ‘만능 통장’이라고 불리는 ISA가 내달 14일 출범이 예정된 가운데 증권업계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은행권은 환호하는 모습이다. 특히 앞서 양 업계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황영기 회장과 하영구 회장이 설전을 벌였던 점을 감안하면 결국 ‘검투사’로 불리는 황영기 회장이 완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ISA는 계좌 하나로 예·적금, 펀드, 환매조건부채권(RP)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고 여기에 정부가 세제혜택을 부여하기로 하면서 새 수익 모델 찾기에 여념이 없는 금융권에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ISA는 금융사가 포트폴리오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일임형과, 고객이 직접 포트폴리오를 지정하고 금융사는 대행만 하는 신탁형으로 구분돼 있다. 이에 현재 투자일임업을 영위할 수 없는 은행은 신탁형ISA만 취급이 가능, 투자일임업 허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
투자일임업 시장의 규모는 560조원에 달하고 ISA의 경우만 봐도 5년 후 15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난달 말 하영구 회장이 “은행도 투자일임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파장이 크게 확산된 바 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투자일임업이 당연히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의 고유업무이고 은행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발했다. 황영기 회장은 이달 초 하영구 회장의 발언에 대해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은 국내 금융업 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은행에는 전문 인력도 없고 고객들이 주로 안정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고위험·고수익 상품을 취급하는 것은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업황 부진의 파고를 겪고 있는 증권업계로서는 ‘은행은 예대마진, 증권사는 고위험·고수익 투자에 대한 수수료’라는 기본적인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고객 수와 지점 수에서 압도적으로 뒤져 있는 증권사로서는 투자일임업이 은행에 허용될 경우 밥그릇을 뺏겨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결국 금융당국은 ISA에 한해 은행이 일임형 상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방침을 수정했고 황영기 회장은 같은 날 “ISA 활성화를 위해 은행에 ISA의 일임형 취급을 수용하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랩어카운트 등 모델 포트폴리오 구성과 상황대처 능력 면에서 증권사들이 은행에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덧붙였다.
다만 대체적으로 은행의 일임형ISA 취급 허용 방침은 은행권에 날개를 달아주는 조치라는 평가다. 특히 한국형ISA는 고객들에게 친숙한 예·적금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짜일 확률이 높은 만큼 증권사보다는 은행이 훨씬 고객을 쉽게 유치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5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지점수 차이를 만회할 수 있는 카드로 ‘비대면 계약 허용’을 얻어내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황영기 회장에 대한 불만도 감지된다. 은행이 전면적으로 투자일임업에 진출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증권업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특히 황영기 회장이 지난해 초 치러진 회장 선거에서 뒤늦게 후보로 뛰어들었음에도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던 이유가 ‘검투사’라는 별명답게 증권업계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결과는 실망스럽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ISA에 한정된 조치라고는 하지만 은행이 투자일임형을 다루는 것은 증권사가 예대마진을 취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면서 “ISA는 앞으로도 확산 가능성이 높은데 솔직히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