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책임 면피 논란 재점화…소액주주 “항소할 것”

17일 법원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민사2부(부장판사 김광섭)은 최근 KT 소액주주 35명이 지난 2013년 당시 회장이었던 이석채 전 회장, 이용경 전 사장, 남중수 전 사장 등 3명의 전·현직 경영진을 대상으로 제기했던 손해배상 소송에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최고경영자가 회사 및 임직원들의 불법행위를 방치하다 규제기관에 적발돼 회사가 과징금이나 벌금 등의 처분을 받고 금전적 손실과 이미지 실추 등을 겪을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의 여부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소송 결과에 따라 현 황창규 회장에게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어 초미의 관심사가 된 바 있다.
재판부가 일방적으로 경영진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향후 지속되는 회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CEO의 책임에 대한 공방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한 편에서는 CEO가 직접 지시하지 않은 행위로 인한 피해까지 배상 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하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의사결정권자인 경영진이 지속적인 불법 행위에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묵인이자 방조나 다름없어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감독 책임 = 손해배상 책임 아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이사가 회사에 대해 전반적인 감독 책임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개별적인 법령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법령위반행위에 관여하였거나 이사의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음에도 이를 방치하였다는 구체적인 임무 해태 사실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재판부는 소가 제기된 모든 사안에 대해 손실 여부나 경영진의 임무 해태 여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KT가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 과징금을 부과받은 건에 대해서는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 등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근절되지 않던 관행이라 KT도 지급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KT가 매출감소·시장점유율 방어 등의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회사가 실제 과징금 상당의 손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경영진들이 이 건에 대해 관여했다거나 위법한 행위임을 알았음에도 방치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가입자들의 동의 없이 맞춤형 정액제에 몰래 가입시켜 파장이 일었던 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경영진이 위법 행위임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하나로텔레콤과의 짬짜미 의혹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았던 건에 대해서 재판부는 “정보통신부가 시내전화 요금 및 시장점유율 이관 등의 합의안을 제시하는 등 행정지도를 했고 KT는 이 기간 과징금을 뛰어넘는 이익을 취해 손실을 봤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판단하고 마찬가지로 경영진들의 묵인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건에 대해서도 KT가 불기소처분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경영진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인권적 인력퇴출프로그램으로 인한 이미지 훼손에 대해서는 “법령위반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니고 KT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증거도 없으며 따라서 이미지 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입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7년간 과징금만 1천억대…法 “경영진 책임 인정 안 돼”
이 소송은 주주대표소송으로 제기됐으며 주주들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주주들이 승소할 경우 손해배상금액은 주주들이 아닌 회사로 귀속된다. 총 발행주식 0.01% 이상을 6개월 넘게 보유한 주주들이 제기를 할 수 있고 당시 소를 제기한 소액주주들은 KT 총 주식수인 2억6000여주의 0.01%를 넘는 3만2000여주를 6개월 이상 보유해 소 제기 요건을 갖췄다. 이들은 KT가 직접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KT가 이행하지 않아 직접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했다.
소액주주들에 따르면 민영화 이후 KT가 당시까지 받은 과징금은 모두 7건으로 총 1180억원에 달했다. 대표적으로 과거 시내전화에서 후발 사업자였던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과의 협의로 시내전화 요금을 비싸게 유지하다가 적발돼 949억6000만원을 받은 사례가 꼽힌다.
또한 맞춤형 정액제에 이용자 동의 없이 몰래 가입하게 함으로써 요금을 더 받은 건으로 104억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거나,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들과의 협의로 공급가 및 출고가를 높게 책정한 건으로도 53억6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례도 있다.
소액주주들은 거액의 과징금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 외에도 반인권적인 인력퇴출 프로그램 운영으로 회사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는 등 경영진의 방치 속에 회사는 물론 주주들까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해 왔다.
전·현직 경영진 측은 불법행위를 직접 하지 않았고 불법행위를 지시한 적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소액주주들은 임직원들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줬다는 것만으로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1심 법원은 회사 및 임직원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경영자에게 회사 및 주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
◆“재판부, 경영진들에게 면죄부 준 것”
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대해 회사의 불법행위로 회사나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을 경우에도 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성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수 년에 걸친 반복적인 불법행위에도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이 면피된다면 앞으로도 이 같은 불법행위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불만도 감지되고 있다.
소액주주로서 소송을 주도했던 KT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임원은 이날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재판부가 형식논리에만 치우쳐 경영진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으로 본다”면서 “늦어도 다음 주 까지는 항소장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청구취지는 KT가 그간 불법 영업을 지속적으로 해 와 방통위나 공정위로부터 계속 과징금을 부과 받았고 이에 대해 대표이사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진이 KT 및 임직원들의 불법 영업을 방기하면서 회사가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과 이미지 실추를 겪었기 때문에 대표이사들이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태욱 집행임원은 “특히 맞춤형 정액제 건 같은 경우는 막대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면서 “KT가 수 백만 명의 가입자들을 동의 없이 맞춤형 정액제에 가입시켜 이득을 챙긴 것이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받고 KBS 소비자고발 등 많은 언론에 보도가 돼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는데 이 문제가 2002년부터 2010년도까지 계속 불거졌음에도 경영진들은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송에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주주들로서는 주가 하락의 피해도 직간접적으로 입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하고 “반복되는 불법 영업과 경영진들의 불투명한 경영 등의 이유들 때문에 주가가 상승은커녕 지속적으로 하락, 상장 당시에 비해 현재 반토막이 난 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4월 기준 KT는 8.22%를 보유한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마땅한 대주주가 없고, 1% 미만 보유 소액주주 지분이 60%를 훌쩍 넘는 구조다. 2002년 공모가 5만4000원으로 상장된 KT 주가는 2000년대 중반까지 3~4만원대를 오가다가 2007년 5만7000원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고 이후 다시 3~4만원대를 오갔다. 소 제기 시점이던 2013년 11월 KT 주가는 3만원대 초중반을 헤매고 있었다. 현재 KT 주가는 역대 최저 수준인 2만원대로 내려 앉은 상황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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