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일감 몰아주기 규제 ‘첫 사례’ 되나
현대그룹, 일감 몰아주기 규제 ‘첫 사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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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HTS·현대로지스틱스 등 정황 담은 심사보고서 발송
▲ 현대그룹이 지난해 시행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첫 타깃이 될 것이 유력해지면서 또 하나의 악재를 만나게 될 전망이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이 지난해 시행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첫 타깃이 될 것이 유력해지면서 또 하나의 악재를 만나게 될 전망이다.
 
22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현대그룹이 총수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포착하고 제재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14일 본격적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1년 1개월여 만이다.
 
공정위는 전날 현대증권 및 현대로지스틱스에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내용이 담긴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기소장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제재 절차에 착수한 셈이다.
 
현대그룹은 이후 법무법인을 통해 심사보고서를 확인하고 공정위에 소명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후 공정위는 전원회의에서 제재 여부 및 수위에 대해 결론을 내게 된다. 통상적으로 심사보고서 발송부터 전원회의가 열리기까지 1~2개월 가량 소요된다는 점에서 빠르면 내달 중 제재 여부와 내용 등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 소유 회사에 통행세 지불, 고가 매입 등 혐의
현재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계열사는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 등으로 모두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매제 변모 씨와 공통적으로 얽혀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증권은 지점용 복사기를 임차 거래할 때 별 다른 역할이 없던 현대그룹 계열사 에이치에스티를 거래 단계에 추가, 수수료 명목으로 통행세를 몰아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컴퓨터 주변기기 판매 업체인 에이치에스티는 변 씨가 지분 80%를 보유한 회사로 오너 일가 지분이 총 95%에 달해 사실상 총수 일가 회사나 다름없다.
 
지난 2014년 기준 에이치에스티 매출액 99억5600만원 중 현대엘리베이터·현대유엔아이·현대증권 등 현대그룹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액은 69억8800만원(70.18%)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롯데그룹으로 편입된 물류업체 현대로지스틱스 역시 매각 이전 변 씨 등이 소유한 택배송장용지 납품업체 쓰리비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쓰리비 역시 변 씨를 포함한 오너 일가 지분 보유율이 100%에 달하는 회사다.
 
특히 현대로지스틱스는 타 경쟁사들이 택배송장용지를 매입할 때 지불하는 금액에 비해 높은 가격을 쓰리비에 지급, 오너 일가 소유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쓰리비는 2014년 기준 매출액 34억8900만원 중 현대로지스틱스와의 내부거래액이 32억8300만원(94.09%)에 달했다.
 
▲ 현재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계열사는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 등으로 모두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매제 변모 씨와 얽혀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현대그룹, 첫 사례 불명예 안을까
만약 이번에 일감 몰아주기 제재가 확정될 경우 현대그룹은 첫 제재 사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업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많은 관심이 모아진 사안이니만큼 제재 수위에 대한 예상이 갈릴 망정 제재가 내려질 가능성 자체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 그룹에서 총수(오너) 일가의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상장 계열사(비상장 계열사는 20%)는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연 매출의 12%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의 일감 몰아주기는 ‘기업이 특수관계인이 일정 지분을 보유한 회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나 상당한 규모로 거래를 하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규정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오너에 대한 제재까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해당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공정위는 정도에 따라 시정명령 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검찰 고발까지도 가능하다. 이 경우 오너는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고 3년 평균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도 있다. 기존에는 해당 계열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 또는 시정명령 등으로 마무리 돼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내부거래 기준이 충족된다고 해서 무조건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예외 사유도 존재한다. 정상가격과의 차이가 7% 미만이고 연간 거래액이 50억원 미만(상품·용역은 200억원)인 경우, 계열사가 사업기회 수행능력이 없거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사업기회를 제공한 경우, 상품·용역의 연간 거래총액이 거래상대방 매출액의 12% 미만이고 200억원 미만인 경우, 비용절감 등 효율성 증대, 기술유출 등 보안, 경기급변·금융위기·천재지변 등 긴급한 경우 등은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에 공정위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대기업에 대해 예외 사유 해당 여부 등을 따져가며 꼼꼼한 조사를 벌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앞서 “첫 법 적용이고 자세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 조사에 시일이 소요된 부분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조만간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비춰볼 때 일단 에이치에스티와 쓰리비 등은 오너 일가의 지분 소유 현황에 대해서는 제재 대상이 된다. 또한 거래액 면에서는 200억원을 초과하지 않지만 연매출의 12%를 둘 다 초과해 역시 제재 대상이다.
 
다만 예외 사유 해당 여부에 대한 판단은 추후 소명과 전원회의 등을 거치면서 확정된다. 하지만 예외 규정이 대부분 명확하지 않아 재계는 그간 공정위 해석에 따라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해 왔다.
 
이에 첫 사례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이번 사안에 공정위가 법적 규정을 근거로 제재 시행을 밀어 붙일 확률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그간 거래관행을 꾸준히 개선해 온 만큼 제재 수위 자체는 크게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그룹 측은 “공정위 심사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해 잘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정당성 놓고 설전도
한편 공정위는 최근 한국경제연구소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일감 몰아주기가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로 이어지는 상관관계가 낮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는 민간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기업과 거래할 경우 오히려 수익성이 증대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경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2012~2014년까지 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상품 및 용역 거래를 분석한 결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과 거래한 계열사는 총자산이익률(ROA)이 평균 2.23%로 나타나 그러지 않은 기업보다 2.33%p 높았다고 분석했다.
 
또 계열사 중 총수 일가의 소유 지분이 가장 높은 기업과의 내부거래 비중을 10%p 늘릴 때마다 ROA가 0.38%p씩 증가한다는 주장도 담겼다. 즉, 총수 일가의 지분이 높은 기업과 내부거래를 하면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효율성이 오히려 증대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공정위는 즉시 한국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반박했다. 총수 일가 지분이 높은 기업과의 모든 내부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 대상 기업의 부당한 내부 거래만 제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률적 규제로 효율적인 내부거래가 오히려 위축된다는 주장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라는 해명이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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