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세점 사업이 유통업계의 노른자위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면세점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롯데가 제주 시내 사업권을 따내면서 독점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앞서 인천공항 내에서도 총 8개 구역 중 4구역이나 따냈던 롯데다. 상대적으로 호텔신라는 아쉬운 상황이어서 양대 산맥인 롯데와 신라 측의 표정이 대조되고 있다.
관세청은 서울본부세관에서 ‘2015년 제1차 보세판매장 특허심사위원회’를 열고 서귀포 롯데면세점의 후속 사업자로 롯데면세점을 재선정했다.
현재 제주시와 서귀포에는 면세점이 1개씩, 각각 호텔신라와 롯데면세점이 운영하고 있다. 이중 서귀포 롯데면세점의 경우 21일 특허가 만료된다. 이에 따라 관세청은 지난해 9월말 이후 새로운 제주도 시내 면세점 특허 절차를 진행했고, 참여 의사를 밝힌 롯데면세점·호텔신라·부영그룹 세 곳 가운데 롯데가 최종적으로 영업권을 받은 것.
롯데면세점은 ▲경영 능력 ▲경제·사회 발전 공헌도 ▲주변 환경 요소 ▲기업이익 사회환원 정도 ▲중견기업 상생노력 등 심의 항목에서 경쟁사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제주 시내 면세점 선정과 관련해 “이번 제주시 면세점 특허 획득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크루즈 여행객과 관련해 제주도 관광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이라면서 “계열사 간 협력을 통해 제주 관광 산업 발전 및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광 만족도를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면세점은 관세청의 허가를 받는 대로 기존 사업장인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서 제주시에 위치한 롯데시티제주 1∼3층 영업장으로 이전한다는 방침이다. 영업 면적도 기존(2613㎡)보다 2.4배(6270㎡) 확장해 불과 500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신라면세점과 정면승부에 나선다. 입점 브랜드 수도 150개에서 320여개로 크게 불어날 전망이며 향후 5년간 운영하게 된다.
한편, 앞서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도 대기업에 배정된 전체 8개 중 화장품·향수, 주류·담배, 피혁·패션, 전 품목 등 네 권역을 낙찰 받은 바 있다.

◆승리자 롯데, 독과점 우려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 가운데 하나는 롯데의 독주와 독과점을 들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면세점 시장의 과반(매출기준 약 52%)을 차지하고 있다. 관세청은 대기업 독점 등을 막기 위해 지난해부터 기존 사업자가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특허권을 이어받는 자동갱신 관행을 바꿔 5년마다 경쟁입찰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롯데가 제주시내 사업권을 따내면서 독점 양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롯데는 이를 인식한 듯 꾸준히 “제주도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면세점 수익을 온전히 제주 지역사회에 돌려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제주시에 면세점 하나가 더 들어가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다’라는 것도 롯데의 논리다.
이 같은 상황에서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서울 소공점의 면적을 기존 2개층(9~10층)에서 3개층(9~11층)으로 10% 가량 늘렸고, 서울 잠실점도 기존 잠실 롯데백화점 1개층(10층)에서 제2롯데월드 2개층(에비뉴엘 7~8층)으로 80% 이상 확장했다. 부산점도 기존 1개층(8층)과 부산롯데호텔 1개층(7층)을 연결해 20%가량 매장을 넓혔다. 여기에 올초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롯데가 8개권역 가운데 절반인 4개권역을 쓸어가 인천공항 면세점 규모도 기존보다 50%이상 커졌다.
일각에서는 올해 롯데의 시장 점유율이 60%를 넘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면세점 2위 업체인 신라의 점유율인 30.1%를 더하면 올해 두 업체의 매출이 전체 면세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훌쩍 넘어 90%에 육박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중소면세점협의회 관계자는 “대기업 면세점들이 중국 현지 여행사와 과도한 금액의 사전 송객 계약과 리베이트 지급으로 지방 경유 단체까지도 싹쓸이해가고 있다”며 “정부는 당초 약속한 대로 대기업 면세점 독점 해소 및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같은 독점 논란에 대해 롯데면세점측은 “지난해 김해공항과 제주공항에서 롯데면세점이 철수해 오히려 전국 지점 수는 9개에서 7개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35년 간의 영업을 통해 얻은 면세점 경영 노하우가 점유율로 나타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하나는 이번 선정이 ‘제주특별자치도내 지역 간 균형발전을 고려’한다는 심의 조건을 제대로 반영했는가에 대한 불만이다. 관세청 심의 조건은 기존에 서귀포시에서 운영중인 롯데가 사업지를 제주시로 옮기겠다고 밝히자 관광위축 등 지역경제에 미칠 불균형을 우려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신라도 롯데가 제주시로 면세점을 옮길 경우 지역간 균형발전에 어긋난다며 경계감을 나타내기도 했으나 관세청은 결국 롯데 손을 들어줬다. 심의조건인 지역균형발전이 헛구호가 아니었나 하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주시를 차지하고 있던 호텔신라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라는 “기존 사업자가 유지된 결과이고 관세청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기업 균형 발전이라는 조항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반영이 안 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1조원대가 넘는 제주도내 면세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된다. 면세점 업계의 싸움이 치열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도민들 사이에서는 수익의 대부분을 면세점 업계가 차지하는데다, 지역상권에 별 도움이 안된다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이에 제주지역 상생협력 실천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관세청의 특허심사 결과 발표를 앞둔 지난 1월부터 서귀포시관광협의회, 제주도소상공인연합회, 중소기업지원센터 등 도내 기관·단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상생 협력을 약속했다.
도내 관광업계 관계자는 “제주지역 면세점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선 만큼 롯데면세점은 면세 수익 도외 유출 논란을 잠재우고 지역과 동반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업무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생협력 방안으로 꼽히는 것은 △제주지역 '별도 법인' 설립 설립과 △제주시 면세점내 '국내 최대 규모' 중소중견기업 전용 매장 설치 등이다. 롯데는 중소기업들에게 자사의 유통 노하우를 제공키로 하고 브랜드·판로 개척 지원을 약속하는가 하면 앞서 지난 1월에는 산남의 우려를 의식해 서귀포시 관광 활성화를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호텔신라, 성장전략 바뀌나?
서귀포 면세점 만료에 따른 신규 사업자로 롯데가 선정되면서 호텔신라의 성장성과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마케팅 경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박종대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2일 “호텔신라 제주 시내면세점의 단기적인 성장성ㆍ수익성 저하가 불가피해보인다”며 “일정한 시장점유율(MS) 확보를 위한 마케팅 경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중장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으로 점쳤다. 중국 인바운드가 여전히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면세점 시장 성장 여력이 크고 제주 시내면세점 시장이 호텔신라와 롯데 두 업체로 양분돼 있어 일정한 MS 재조정 후에는 경쟁적인 비용 증가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신라면세점 매출 규모는 3960억원(전체 면세점 매출의 15% 비중)으로 전년동기 대비 40% 내외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9월 영업면적을 70% 확대해 약 5940㎡(1800평) 규모로 늘렸으며, 지난 1월 그랜드 오픈했다. 중문단지에 위치한 롯데면세점은 전년도 매출 2040억원으로 신라의 절반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제주도 중국 인바운드는 286만명(전년동기 58%)까지 증가했다. 전체 외국 인바운드의 86%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크루즈가 중국 인바운드를 견인하고 있는데, 2014년 연 242회 운행으로 59만명, 올해는 320회 65만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실어 나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 연구원은 “특히, 제주항은 제주 시내 면세점은 밀접해 있어 시내 면세점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인천공항면세점 전쟁의 실질적인 승자는 롯데에 1개 권역이 뒤진 세 권역을 낙찰받은 신라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우증권은 4일 호텔신라에 대해 인천공항 입찰에 따른 실리적 승리자는 호텔신라라고 밝혔다. 함승희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번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호텔신라는 총 세 개의 구역을 취득했다”며 “전체 면적 대비 비중은 20.1%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롯데는 50.9%지만 최저수용금액으로 신라가 차지한 구역의 비중은 31.4%로 상대적으로 매출 효율성이 높은 구역을 점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최저수용금액과 대비해 롯데는 +107% 높은 임대료를 제시했고, 신라는 +18%의 합리적인 가격 수준에서 입찰을 마무리했다는 설명이다.
함 연구원은 “결과적으로 신라는 주요 사업권 취득에 성공한 동시에 안정적 수익성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황금알 낳는 거위’ 면세점
면세점 사업은 유통업계 노른자위로 급부상했다. 한국면세점협회 통계에 따르면 2009년 3조8523억원이던 국내 면세점 총매출액(잠정치)은 2010년 4조5260억원, 2011년 5조3730억원, 2012년 6조3293억원, 2013년 6조8323억원, 지난해 8조3077억원으로 해마다 두자릿수 안팎의 성장세를 잇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의 매출액은 전 세계 1700여개 공항 면세점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2조10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유럽·북미 지역의 대형 공항들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2013년 연매출액(1조9000억원)에 비해서도 10%이상 증가한 수치다.
서울 시내 면세점·김포공항 출국장 면세점 등 서울지역 면세점 9곳이 올린 지난해 매출액은 4조 3천억원에 이른다.
글로벌시장에서 브랜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한국관광의 관문인 면세점을 통해 상품인지도를 높임과 동시에 글로벌기업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해외 공항 면세점 입찰 참여 때, 면세점 경영 경험이 주요 평가항목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미래 전망도 상당히 밝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55년 이후 59년 만에 1400만명을 넘어섰다. 이중 중국인 방문객이 600만명을 돌파했다. 관광수입은 20조원에 이른다. 2013년에 비해 16%이상 급증한 수치다.
이제 업계의 관심은 6월 예정된 서울시내 면세점 전쟁으로 모이고 있다.
호텔신라 측은 “아직 입찰마감까지 시일이 많이 남아 있다”며 신중한 모양새지만, 업계에서는 이부진 사장이 롯데와의 경쟁에서 연이어 자존심을 구긴 터라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롯데는 현재 서울 시내 면세점 6곳 중 소공점, 월드타워점, 코엑스점 등 3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추가 수주와 관련해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롯데의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로 볼 때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 시사포커스 / 정주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