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고강도 사정에 나선 정부가 칼 끝을 포스코에 이어 재계 전반으로 돌리면서 재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검찰이 재계 부패와 이명박 정권 실세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는 분석에 따라 다음 대상이 누가 될지 검찰의 의중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19일 롯데쇼핑의 비자금 의혹이 새롭게 거론되면서, 지난 12일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패와의 전쟁 방침 이후 포스코, SK건설에 이어 신세계, 동부그룹, 금호아시아나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새로운 수사대상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사실상 포스코그룹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더구나 검찰이 차례차례 타깃을 옮겨가는 식이 아니라 한꺼번에 후속타를 다발적으로 터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미처 준비할 시간조차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재계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태다.
◆檢, 부패 척결 선포 전후 발빠른 행보
검찰이 내사 단계에 머물러 있던 첩보들을 한꺼번에 터뜨리면서 재계는 다음 차례가 누가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포스코건설로부터 시작된 수사가 포스코 전체로 확대되더니 이후 SK건설과 신세계, 동부그룹, 금호아시아나 등의 뇌관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김진태 검찰총장은 1996년 고발요청권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SK건설을 고발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SK건설은 2009년 한국농어촌공사가 공고한 새만금방조제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을 주도하고 낙찰받은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지난 4일 22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12개 건설사에 총 26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된 사건이 각각 수십억원 대의 과징금 부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가 되자 공정위가 또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는 의견이 들끓었다. 여기에 검찰이 갑자기 고발요청권을 행사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SK건설 내부는 순식간에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분위기로 변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날 하루 동안 공정위는 검찰에 SK건설을 고발했고 방산 비리에 연루된 일광그룹 이광규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이광규 회장과 SK C&C 권 모 상무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리고 다음 날 포스코건설 송도 본사에 검찰이 들이닥쳤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의 건의에 따라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시점은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기 이틀 전이다. 2013년 CJ그룹 수사 이후 본격적인 기업 수사가 끊긴 상황에서 검찰이 대국민 담화문 발표 전후로 밟고 있는 일련의 행보는 정권과 사전에 교감이 있었음을 추측케 한다.

◆신세계·동부·금호·롯데, 일제히 수사선상 올라
검찰은 포스코의 M&A 특혜 의혹과 계열사 매출 부풀리기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신세계와 동부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대기업 집단으로 눈을 돌렸다. 포스코를 제외한 대부분 대기업들에 대한 수사는 대부분 이미 내사 단계였거나 첩보가 예전부터 접수돼 있던 사안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는 모양새를 보면 상당한 준비를 거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계는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법인 계좌에서 발행된 수표를 물품 거래 디신 현금화해 총수일가 계좌로 일부 입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주주가 법인 재산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다.
이 같은 신세계의 자금 흐름은 이미 지난해 5월 금융당국이 포착해 검찰에 통보했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살리기’ 기조 속에 최근까지 내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최근 수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신세계 측은 정상적인 비용처리였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현금화된 돈이 총수 일가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부그룹 역시 비슷한 시기에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계열사들로부터 비자금을 조성, 수백억 원이 김준기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과 딸 김주원 씨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자금의 흐름을 확인 중이다. 여기에 김준기 회장의 동서인 윤대근 동부CNI 회장도 10억원 안팎의 회삿돈을 뺴돌린 정황에 대해서도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요즘같은 세상에 비자금 조성은 말도 안된다”며 “경영권 승계가 이미 오래 전에 마무리 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비자금을 조성할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구조조정 막바지에 접어든 동부그룹이 검찰의 수사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당분간 동부그룹에 때 아닌 한파가 불어닥칠 전망이다.
그룹 재건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도 다시 검찰의 타깃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계열사간 내부 거래를 통해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9월 박삼구 회장이 계열사 간 납품 단가를 부풀려 거래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첩보를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이 첩보를 바탕으로 다시 사정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역시 미국 법인을 통해 약 1000만달러(약110억원)을 미국으로 빼돌렸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동국제강이 해외에서 고철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현지 업체로 받은 대금을 실제 가격보다 부풀려 차액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당진제철소 건립 과정에서 건설비를 과다 계상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그룹도 검찰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검찰은 롯데쇼핑 본사에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시네마의 사업본부로 사용처가 불분명한 거액의 자금이 흘러간 사실을 확인, 비자금 조성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모두 현금으로 인출된 문제의 자금은 현재까지 수십억 원대로 알려졌다. 하지만 롯데쇼핑은 이미 검찰에 충분히 해명했고 인출 사실도 사실이 아니라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동아원은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망에 올랐다. 검찰은 2010~2011년 동아원이 자사주를 성공적으로 매각하기 위해 브로커를 동원, 주가를 조작한 혐의에 주목하고 있다. 시세조종 전력이 있는 이 브로커는 동아원으로부터 자금을 전달받아 고가매수·허위매수 등 다각적 방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동아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전재만씨의 장인인 이희상 회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MB정권 노리나…관련자 줄소환 예고
재계 전반의 부패와 더불어 검찰은 이명박 정권의 실세에도 칼 끝을 들이대고 있는 상태다. 특히 포스코가 이명박 정부 시절 특혜 의혹을 받았던 정준양 전 회장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집중 폭격을 당하고 있는 데 이어 이명박 정부와 관련된 기업들도 속속들이 수사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검찰의 포스코에 대한 수사는 가히 이명박 정부와의 전쟁으로 불릴 만하다. 출발은 포스코건설 베트남 법인의 비자금 의혹이었지만 현재는 정준양 전 회장과 그 주변을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의 줄소환이 예고돼 있다.
검찰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밀어붙여 취임한 정준양 전 회장 임기 당시의 비리들을 집중적으로 캐내고 있다. 부실 규모가 천문학적이던 성진지오텍을 인수하는 등 총 30여건이 넘는 M&A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과정이 주요 수사 대상이다.
M&A관련 의혹으로는 발전·에너지설비업체 성진지오텍 인수, 삼창기업의 원자력사업부문, 가스전 개발을 추진한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등이 있다. M&A가 이뤄진 많은 기업들은 정준양 전 회장 시절 이해할 수 없는 높은 금액으로 포스코에 인수됐고 이 기업들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에 적극 동원됐다.
포스코건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과도 얽혀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2000여평의 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 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1985년 16억원에 매입했다. 1995년 포스코개발(현 포스코건설)은 이 땅을 263억원에 사들였지만 2007년 대선 즈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에 휩싸였다.
우선적으로 출국금지를 당한 정준양 전 회장은 이르면 이번 주 내로 소환될 예정이다.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은 베트남·인도네시아 비자금 의혹, 친인척 특혜 의혹 등 다수의 의혹에 휩싸여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다. 검찰 수사에 따라 해외 사업과 재무 쪽의 전·현직 임직원들도 줄줄이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박영준 전 차관과 이상득 전 한나라당 의원도 검찰의 주목 대상이다. 수사가 강도를 높여갈수록 MB정권의 실세 모두와 연루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메가톤급 후폭풍이 예상된다.

◆檢, 자원외교·방산비리도 집중 수사
검찰은 이명박 정부의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 중 하나인 방산 비리에 대한 수사로 다음 포문을 열었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과 예비역 준장인 권모 SK C&C 전 상무 등이 2009년 EWTS사업을 중개하면서 5100만 달러 규모의 계약금액을 두 배 가량 부풀려 차액 4500만 달러(약 500억원)을 챙긴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규태 회장은 매출 축소로 2000억원대의 탈세 혐의와 자금 세탁 혐의도 받고 있고 이규태 회장의 장남·차남의 계열사들은 EWTS 사업을 재하청 받는 과정에서의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 검찰은 국고 손실 논란을 빚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사업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경남기업 본사와 울산에 있는 한국석유공사가 비슷한 시간에 전격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새누리당 의원 출신인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택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진은 압수를 통해 한국석유공사와 경남기업의 러시아 유전 사업 관련 경영자료와 회계장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 석유공사·경남기업 등이 참여한 한국컨소시엄이 2009년부터 2009년까지 러시아 캄차카 석유 광구 탐사에 300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가 실익을 거두지 못하게 된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광구의 기대수익률이 매우 낮을 것으로 전망되면서도 한국컨소시엄이 사업을 끌고 간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경남기업은 성공불융자(위험성이 높은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고 실패하면 융자금 전액을 감면) 제도 등을 통해 총 1524만5000달러(약174억원)를 빌렸으나 2088달러를 갚고 나머지는 모두 면제받았다. 이 과정에서 회계 장부를 조작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남기업은 미국·멕시코만 사업에 참여하면서 1606만달러를 빌렸는데 이 사업까지 실패하면 총 300억원 가량의 정부 자금이 경남기업에 흘러간다. 성완종 회장에 대한 수사는 정·관계 로비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난데 없는 사정 정국에 ‘초비상’
재계는 검찰이 재계 부패와 이명박 정부 시절의 사자방을 동시에 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자 다음 타깃이 어디가 될지를 놓고 추측이 분분하다.
우선적으로 사자방 중 이미 개시한 자원외교와 방산 비리 수사를 강화하는 동시에 건설업계의 4대강 살리기 담합 및 특혜의혹을 전면 재조사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은 이미 SK건설에 칼을 빼든 마당이고 상당수 건설사들이 4대강 담합으로 재판을 거쳤거나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특히 공정위가 2012년 이후 4대강 담합과 관련된 과징금을 모두 1600억원 이상 부과하면서도 검찰 고발을 하지 않아 문제가 제기된 바 있어 과징금을 부과받았던 기업들에 대한 전면 재조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녹색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4대강 담합 건설사들이 거둔 부당이익은 1조239원에 달한다.
이미 지난 2013년 검찰은 관련 건설사들의 압수수색을 실시한 바 있다. 4대강 사업 입찰 담합과 관련됐던 건설사들은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삼성물산(건설부문), SK건설,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금호산업, 쌍용건설, 한화건설, 한진중공업, 코오롱글로벌, 경남기업, 계룡건설, 삼환기업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오랜 만에 분양시장 호황을 맞은 건설사들은 자칫 폭탄을 맞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이명박 정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친MB 기업들도 수사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 대표적인 친MB 기업으로 불리던 포스코에 이어 자원외교에 적극 협조해온 SK그룹과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 등 이명박 특혜그룹으로 분류되온 롯데쇼핑마저 수사선상에 오르자 재계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우선적으로 성공불융자제도로 605억원을 감면 받은 SK이노베이션을 비롯, LG상사(152억원)와 삼성물산(147억원)과 GS칼텍스, 에쓰오일, SK가스 등이 거론된다. 자원외교 수사가 본격화되면 함께 참여한 금호석유화학, 현대중공업, 대우인터내셔널, STX 등도 검토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의 배임 의혹도 잇따라 제기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의 연관성이 크게 없더라도 비리 의혹에 자주 노출됐던 기업들도 불안에 떨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신세계와 동부그룹 등의 총수 일가가 검찰에 노출되면서 현재 총수가 재판을 진행 중인 그룹들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현재 전·현직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곳으로는 CJ·효성·동양·STX 등이 있다. [ 시사포커스 / 김종백 기자 ]